상록오색길을 걷기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다. 아침 7시대에 나간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쿨 소재 옷을 입어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주로 정오 전후에 나갔고, 지난번 걸은 것이 한 달 전이었기에 날씨 감각도 모르고 있었다. 7시 대도 내겐 버거운 일이지만 어젯밤만 해도 6시경에 나서려고 했다. 이렇게 일찍 나갔어도 차림은 그야말로 완전무장이었다.
나서기 전에 얼굴과 손, 팔에 선크림을 꼼꼼히 발랐다. 자외선 차단을 해 주는 기능성 옷을 입고 햇빛가리개로 얼굴을 가리고 장갑을 꼈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도 암막 양산을 썼다. 이렇게까지 한 것은 급격히 심해진 햇빛 알레르기 때문이었다. 나로선 증명해낼 방법은 없지만 코로나 백신의 부작용임이 확실해 보였다. 이 정도로는 명함도 못 내미는 거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심한 후유증들을 앓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둘째를 출산하고 햇빛 알레르기가 생겼지만 증상은 미미했다. 햇빛이 강해지는 봄과 여름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지고, 발진은 팔과 목에 약간 있었다. 그것도 밤에 나타났다가 아침이 되면 없어졌다. 자외선 차단 지수가 높지 않아도 선크림을 바르면 괜찮았다. 그래서 많은 신경이 쓰이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20일 전 오후 햇살과 마주하며 2시간 30분 정도 운전하고 난 밤에 생긴 발진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발진 부위는 얼굴과 손등에서 팔꿈치, 그리고 목 안쪽은 물론 뒤까지로 늘어나고 넓어졌다. 증상도 심해져 부위가 벌겋고 많이 가렵다.
처음부터 백신을 의심한 것은 아니었다. 환경이 얼마나 더 많이 파괴되었기에 이리 자외선이 강해졌나, 몸의 면역력이 얼마나 떨어졌기에 심해졌나 했다. 그런데 원인을 검색하다 보니 일부 약제의 성분이나 여러 화학물질 등에 의해 햇빛에 민감한 피부가 되어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뉴스에서도 코로나 후유증으로 전신염증증후군이 생기기도 한다는 내용을 전했다. 그러하니 4차까지 맞은 백신 접종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1차를 맞았을 때 별 증상이 없었기에 맞으라고 할 때마다 바로 신청해서 맞았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미처 몰랐다. 맞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부작용은 가장 약한 곳으로 오고, 1년 후에 많이 나타난다는 말도 들었다. 백신 덕분인지 주위 사람들까지 코로나에 걸릴 정도로 정점을 찍어도 나는 아직까지 괜찮다. 그런데 이런 큰 불편을 겪을 줄이야.
내가 박쥐나 올빼미가 아닌 이상 햇빛에 노출을 안 할 수는 없기에 한 번 생긴 발진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집에 있는 알로에 농축 크림도 바르고, 허브 오일을 발라보기도 했지만 약간의 변화 외에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한 쇼핑 사이트에 들어가 햇빛 알레르기라고 검색해 쿨 제품으로 된 얼굴 가리개, 토시, 장갑, 망토 등을 주문했다. 골프도 치지 않는 사람이 골프 칠 때 사용하는 용품들을 여러 개 샀다. 선크림도 차단지수가 가장 높은 것으로 다시 사고 암막 양산까지 장만해야 했다. 날마다 알로에 팩도 한다. 다리까지 햇빛 알레르기가 심한 어느 블로거가 추천한 편백 미스트를 사서 뿌려주니 많이 좋아졌다. 그리고 지인의 말을 듣고 어제부터 알로에 진액을 먹으면서 부위에 발라보았더니 발진이 바로 작아졌다.
흐린 날 한 시간 정도 운전하는데 팔을 걷었다가 여지없이 발진이 돋은 일이 있었다. 따라서 비가 오지 않는 한 햇빛 차단 용품 챙기는 일이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근본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몸속에 있는 약제 성분을 빼내는 것이겠다. 그래서 뒷산 숲을 맨발로 열심히 걷고 있다. 일찍 못 일어나는 내가 평소보다 2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 자동적으로 숲으로 간다. 물론 숲에서도 양산을 쓴다.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된 요즘이다.
이런 사정으로 상록오색길에도 가장 이른 시간에 나섰다. 그리하여 느티나무 어르신도 가장 이른 시간에 만날 수 있었다. 무성해진 가지 사이로 언뜻 들어온 햇살에 반짝이던 어르신, 자신이 얼마나 멋진 풍채를 지녔는지 알고나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찍은 사진을 어르신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푸르러진 잎들은 싱싱하고 강한 에너지를 듬뿍 뿜어내고 있었다. 한쪽 가지가 흔들리고 있어도 다른 가지는 고요한 것을 보니 마치 몇 개의 존재가 함께 하는 것 같았다. 몸 일부에 생긴 발진으로 갖은 호들갑을 떨고 있는 나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소인배와 대인배의 대비이다.
하지만 어르신에게도 내가 햇빛 알레르기로 힘들어하는 것처럼 크고 작은 일들을 많이 만났을 것이다. 가지가 부러지거나 다른 생물의 공격으로 상처가 생겨 거기에 곰팡이 습격을 받는 일들을 적지 않게 받았을 것이다. 400년도 넘는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겠는가. 몸통만 봐도 나이 많은 사람처럼 축 늘어져 있고,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다. 수피에는 상처가 굳어 생긴 옹이가 많이 박혀 있다. 그러함에도 딱 벌어진 가지에 푸르른 잎사귀들을 촘촘히 달고 멋진 자태로 감동을 주고 있지 않는가.
덥지 않은 날에도 무의식 중에 그늘을 먼저 찾게 된 나는 ‘빛살무늬’라는 블로그 닉네임이 무색해졌다. 햇빛은 희망, 축복, 생명, 기쁨 등의 또 다른 이름이다. 세상에 햇빛이 없다면 모든 생물체는 살아갈 수 없다. 긍정적이고 밝은 정서도 햇빛에서 얻는다. 나 역시 내가 가진 긍정적 요소를 남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 ‘빛살’이라는 닉네임을 만들었다. 그런데 햇빛이 기피 대상 1호가 될 줄이야.
그 닉네임의 가치를 되찾기 위해 난 열심히 걸어야 한다.
나는 오늘도 또 그림을 그려요.
내일도 그릴 거예요.
내년에도 그리고 싶어요.
- 김두엽,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니다』, 북로그컴퍼티
83세에 혼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화가가 되어 96세가 된 김두엽 할머니가 그림이 좋아서 날마다 그림을 그리듯 나는 걷고 걸어야 한다.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좋아하는 걷기가 방해받아선 안 된다.
난 월, 화, 수, 목, 금, 토, 일이라는 글자가 영어로 하나씩 새겨져 있는 커피 잔이 세로로 탑을 쌓고 있는 그림엽서에 위의 문장을 써 가지고 나갔다. 날마다 커피 마시 듯 날마다 걷겠다는 의지를 그 그림에 담고 싶었다. 발진이 나고 가려울수록 더 많이 걸어서 강한 피부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했다.
느티나무 어르신을 만나고 난 뒤 다른 날처럼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물론 얼굴도 손도 가리고 양산까지 잘 받치고 말이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물도 한 모금 안 마시고, 3시간 가까이 걷고 어르신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숲에서 맨발로 걷다가 생긴 상처에 붙인 대일밴드가 떨어지고 통증이 남아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었다.
그렇게 피부는 햇빛에 닿지 않도록 꽁꽁 싸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갔건만 볼은 벌써 붉어져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팔도 붉어지고 가렵기 시작했다. 발바닥은 얼얼하고 하품도 났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았을 때 가슴속을 차고 오르는 기분을 이길 순 없었다.
그림을 배워본 적도 없는 김두엽 할머니가 어느 날 심심해서 사과 그림을 그렸다가 화가인 아들에게 칭찬을 들은 뒤 신이 나서 날마다 그렸다. 그리하여 전시도 하고, 방송에도 나오고, 책도 나오고, 갤러리도 생겼다. 박태환 선수는 어릴 때 기관지가 약해 수영을 시작했다가 뛰어난 체격은 물론 월드 스타로 성장했다.
나도 날마다 걸을 것이다. 어제도 걸었고, 오늘도 걸었으며 내일도 걸을 것이다. 오늘은 손가락과 발등에도 발진이 생겼다. 하지만 그런 방해는 오히려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결핍은 의지를 불태우기 마련이다.
햇빛 알레르기여, 나와 한 판 승부를 뜨자. 내가 피부 강자로 거듭날 지 어떻게 알겠니?
(이런 노력 덕분인지 현재 나는 정말로 피부가 강해져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맨발 걷기와 알로에 덕이 가장 크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빨리 피부 강자가 될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