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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건숙 Jul 16. 2022

여행작가를 여행하다

서울 사는 한 청년은 퇴근 후 서울의 다른 도시로 떠났다가 늦은 밤에 되돌아오곤 했다. 낯선 동네에서 몇 시간 보내고 오면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다음 날을 이어갈 수 있었다. 멀지 않은 곳으로의 여행이라니 신선한 발상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

  

내게도 그런 기회가 왔다. 그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멀지 않은 서울에서 하룻밤 보낼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람은 우리나라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알리고 여행과 걷기 붐을 일으킨 여행 작가이다. 그이가 에어비앤비를 시작했다는 정보를 얻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작가의 삶과 문장을 좋아했다. 사십 대엔 작가처럼 산티아고 순례길도 걷고 국토종단도 하고 싶다는 꿈을 뜨겁게 꾸기도 했다.

  

마침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큰딸에게 그 여행 작가의 집에서 하룻밤 같이 보내는 것을 선물해 달라고 했다. 물론 숙박료까지 포함해서이다. 딸에게도 좋은 경험을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딸과 함께 작가의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예약했다는 말을 듣고부터 내 심장이 얼마나 뛰었는지 모른다.

  

스스로를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라고 공표했기에 가기 전부터 조심스러웠다. 먼저 입실 시간인 오후 2시를 정확히 맞추려고 했다. 일찍 가는 것은 시간을 뺏는 것 같아서, 늦으면 신경 쓰게 할 것 같아 모두 실례라 생각했다. 좀 일찍 가면 주위를 배회하다 맞출 수 있지만 늦으면 도리가 없으니 여유롭게 가기로 했다. 검색해 보니 넉넉하게 2시간 전에 나서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전화 한 통이 오는 바람에 20여 분 늦게 나갔다. 그래도 시간 상 늦지 않을 듯했다. 그러나 일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왔다. 두 전철역 홈에서 시위가 있어 정차를 하는 바람에 시간이 자꾸만 흘러갔다.


버스 타기 위해 숙대입구 역에서 내렸을 때는 출구에서 아무리 걸어 내려가도 정거장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가다가 역 쪽으로 되돌아와서 보니 출구 바로 앞에서 신호등만 건너면 되는 도로 중간에 있었다. 얼마나 허탈했는지 모른다. 늦었다는 생각에 경주마처럼 앞만 보며 빠르게 걸은 탓이었다. 첩첩산중이라고(이때의 내 마음을 생각하면 이 표현이 과장이 아님)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중에 타야 할 버스가 떠나가는 것이 보였다. 다음 버스 배차는 15분 후였다.

  

속이 탔다. 늦는다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읽고서 답이 없었다. 카탈스런 그녀가 골을 내고 있는 건 아닌지 마음이 쓰였다. 한참 후에야 잘 오라는 답장이 왔다. 길까지 막혀 결국 한 시간 가까이 늦어버렸다.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시작부터 그랬으니 이미 난 무례한 손님이 되어 있었다.

  

숨 가쁘게 언덕을 올라 초인종을 누르자 작가가 문을 열어주었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시차는 적응하셨나요?”라고 물었다. 8명의 여행자들을 이끌고 산티아고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차는 적응됐는데 컨디션이 안 좋아서요.”

  

라고 힘없이 말했다. 그리고 방 안내를 해 주었다.

  

복층으로 되어 있는 아담한 공간이었다.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와 깔끔한 방 그리고 너른 욕실이 있는 아래층이 우리가 하룻밤 묵을 곳이었다. 위에서 클래식 음악이 흘러 내려오고 있었다. 작가는 따뜻한 차를 가져오겠다면서 위로 총총히 사라졌다.

  


서재에 꼼짝 않고 앉아 작가가 오기를 기다렸다. 어두운 갈색의 원목 테이블 위에는 흰색 줄무늬가 새겨져 있는 도자기 꽃병이 놓여 있었고, 거기에 분홍 장미꽃이 꽂혀 있었다. 서가를 눈으로 쭉 둘러보니 곳곳에 내 책장에 있는 책들이 많이 보였다. 여행, 걷기, 나무에 관한 책들과 시집, 그리고 김훈 소설집 등에서 독서 취향이 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끌림이 있어 거기까지 찾아간 것이리라. 오래전부터 좋아한 작가의 서재에 와 있다는 사실 때문에 설렘과 긴장이 주는 떨림이 있었다.

  

잠시 후 작가가 차를 가지고 내려왔다.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유리 다관에 우린 차를 앙증맞은 꽃 모양의 유리잔에 따라 주었다. 손님 온다고 집 둘레 어딘가에서 꺾어왔을 찔레꽃 한 송이를 꽂은 작은 화병과 국산 과자가 작은 쟁반 안에 담겨 있었다. 이것들만으로도 물건 하나에 얼마나 정성을 들이고 섬세한 미적 감각을 지녔는지 알 수 있었다. “일상의 공간에 아름다운 물건을 들이고 그것들을 아껴 사용한다면 그것이 내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라는 작가의 말을 눈앞에서 실감하고 있었다. 어느 곳 하나 흐트러짐 없는 서가의 단정함이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힘이 아니었을까 생각되었다. 어디 서재뿐이랴. 방도 욕실도 군더더기 없고, 소품들은 공간을 아름답게 채워주고 있었다.

  

빈 잔 하나를 옆으로 치워 놓기에 “작가님은 안 드세요?” 했더니 그건 저녁에 올 딸 것이란다. 짧은 담화를 기대한 것은 큰 착각이었다. 손님과 숙소 주인으로 만난 것이지 독자와 작가로 만난 것이 아닌데 웬 김칫국이었나 생각하니 얼굴이 붉어지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작가는 코로나로 여행길이 막히자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되어 여행자들을 맞고 있다. 한 달에 열흘, 그리고 여성만 받는다.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혀 외국인들을 맞지는 못하고 있지만 오래전 자신이 소망한, 외국인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를 실제로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존경스러웠다. 지구촌 곳곳을 누비고 다녔으니 얼마나 많은 숙소 주인들을 만났겠는가. 그 경험들이 집약되어 있는 곳에 내가 있었다. 작가가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는 원칙을 자신의 책에 써 놓았다.     


"내가 여행에서 10만 원짜리 에어비앤비에 머문다면 원하는 것들을 손님에게 해 드리는 것. 셀프 체크인이 아닌 주인의 환대, 책이 가득한 거실, 얼룩 없이 깔끔한 화장실 세면대, 책상이 놓인 침실, 향 좋은 차와 뜨거운 물, 테이블 위의 작은 꽃병에 꽂힌 꽃, 유기농 면으로 된 깨끗한 이부자리, 친환경 세면용품이 갖춰진 화장실, 건강한 재료로 주인이 직접 만든 정갈한 아침 식사. 아침을 먹으며 주인과 나누는 소소한 이야기들. "    

  

작가는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래, 내일 아침이 있지.

  

나는 그제서 떨림을 내려놓고 일반 숙소에 온 손님처럼 차분해져 차를 마셨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일어섰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열쇠가 안 보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어디 갔지?’를 입에 달고 사는 나지만 방금 전 받은 열쇠를 잃어버리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테이블 주위를 살펴보고 가방을 몇 번씩 뒤져보고, 옷 주머니를 아무리 넣어 봐도 열쇠는 나오지 않았다. 이런 낭패가 없었다.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는데 그새 열쇠를 잃어버리는 나란 사람, 대체 누구란 말인가. 여행지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머릿속이 하얘졌다.

  

한참을 그리 찾다가 방으로 들어갔더니 세상에, 열쇠는 벽에 얌전히 걸려 있었다. 열쇠는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고, 나는 소개만 받았을 뿐이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나가기 전에 문자를 썼다. 컨디션이 안 좋은데 아침 준비 괜찮겠느냐고 쓰고 나서 전송을 누를까 하다가 그냥 지워버렸다. 이번 여행은 한 달 반 정도나 기다려서 온 것이고, 딸과 처음으로 단 둘이 하는 여행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아침 식사가 있기 때문에 간 것이었다. 나란히 앉아 작가와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딸에게도 좋은 경험으로 남을 것이었다. 따라서 아침 식사 시간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이 여행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작가의 컨디션과 여행의 목적을 두고 갈등하다 그냥 나왔다. 아침 식사는 여러 반찬을 해야 하는 일반 식단이 아닌 빵에 과일을 곁들인 간편 식사라는 것과, 작가가 힘들다면 먼저 양해를 구했을 것이라는 것과 ‘까탈스러운’ 성격이라 문자 보내는 것도 조심스럽다는 것이 복합적인 이유였다.

  

숙소 옆에 있는 백사실 계곡으로 걸어서 석파정과 석파정 서울미술관의 전시를 관람하고 다시 걸어서 되돌아왔다. 그리고 퇴근하고 온 딸과 근처 초밥집에서 만나 식사하고 들어왔다. 일을 하고 온 딸이나 많이 걸은 나는 적잖이 피곤했다. 딸이 먼저 잠자리에 들고 나도 서재에서 책들을 꺼내 보다가 다른 날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식사는 9시 반이라고 했다.

  

피곤했던 딸과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 씻었다. 내가 머리를 막 감았을 때 위에서 식사하러 올라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머리의 물기를 다 닦아내지도 못했다. 시간은 아직 10분 정도가 남아 있었는데 식는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했던가. 화장은 고사하고 머리라도 빗어야 하는데 빗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대강 정리하고 올라갔다.

  


미리 올라간 딸이 작가와 마주 앉아 있었다. 커다란 테이블 위에는 꽃처럼 아름다운 아침이 차려져 있었다. 실제로 수레국화와 삼색제비꽃이 음식 옆에 놓여 있거나 음식 위에 앉아 있었다. 건강이 듬뿍 들어 있는 정갈한 차림이었다. 접시와 음식의 색이 화려했다. 호밀빵과 직접 만들었다는 잼과 소스, 푸딩과 과일, 그리고 핸드드립 커피 등의 빛깔이 도자기 그릇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일본의 고급 온천에서 받는 밥상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차마 입에 넣기 아까운 밥상이었다.

  

“컨디션도 안 좋은데 이렇게 멋진 상을 차리셨네요.”

  

작가와 내가 둘이서 대화를 이어갔다. 딸은 작가를 모르고, 나는 작가의 문장들을 좋아하니 자연스레 그리 되었다. 짐스러워서 사인받을 책은 단 한 권 《길 위에서 읽는 시》를 가져갔다. 이 책에 나온 이야기를 《비로소 나를 만나다》에 인용한 까닭도 있었다. 그리하여 감사의 의미로 책방에세이집과 함께 《비로소 나를 만나다》를 선물로 주었다.

  

오래전 합정동에서 여성학자 어머니의 칠순 기념회에 초대받아 갔을 때 거기에서 작가를 보았다. 난 반가워서 작가의 책을 좋아한다는 말을 건넸다.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수줍게 인사를 받던 그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건너왔는지 작가의 머리도 희끗했다. 최근에야 작가가 나보다 5살 어린 걸 알았는데 그동안 나는 언니인 줄 알고 있었다. 여자 혼자서 국토종단을 하고, 대부분 산티아고 순례길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시절에 혼자서 다녀온 당찬 모습 때문에 착각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자신에게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란 수식어를 붙이고 그런 사람이 혼자 떠났다고 했기에 많은 여성들이 용기를 얻고 도전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소심하고 겁이 많고 까탈스럽다면 내놓고 그 말을 할까 싶었다. 아니면 그러함에도 당당하기 때문에 다 뒤집어서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작가는 우리가 그 예쁜 음식을 먹는 동안 드립 커피만을 마셨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아직 컨디션 회복이 되지 않았는데 너무 오래 앉아 있었다. 단아한 고가구와 창을 타고 올라가는 아름다운 식물과 숲이 보이는 2층으로의 초대는 여행의 화룡점정이었다.

  

내가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섬세한 감각과 뛰어난 문학적 감성이 문장들 속에 고즈넉하게 들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그 고즈넉함 때문에 작가의 서재에 들었는지 모른다. 머리가 아닌 발로 디디고 눈으로 보고 온 것들을 관조하고 사색한 다음 자신의 삶에 덧대어 놓곤 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길 위에서 만난 것들은 작가의 몸과 마음에 응축되고, 집에 돌아와 그것들을 어루만질 때는 자신의 삶의 철학으로 부드럽고도 강건하게 풀어냈다. 그래서 문장들은 단단하고 풍성하고 부드럽다.

  

딸과 나는 이날 꽃밥으로 힘을 얻어 화정박물관으로, 길상사로, 간송미술관으로 다녔다. 30여 분을 대기해야 하는 식당에서 맛있는 밥도 먹었다. 엄마와 시간을 보낸다고 귀한 휴무를 낸 딸이 작가의 집에서 무얼 담아왔는지 모르지만 살다가 힘이 들 때 이런 방식으로도 풀어나갈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했다. 어릴 때는 밥상머리 교육이 필요하겠지만 성인이 된 자녀와는 친구처럼 다니며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좋은 추억을 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멀지 않은 도시로 떠나 딸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고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을 수 있었던 경험은 작가에게서 파생된 여행의 덤이었다.

  

딸과 헤어져 돌아오면서 나는 딸이 작가의 집에서 무얼 경험하기 바랐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작가가 책에도 쓴 ‘세상에 길들지 않는 영혼’의 주인으로 사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 작가에게 선물로 보낼 그림책 세 권을 준비했다. 여행단을 이끌고 떠난 작가가 조지아에서 돌아올 즈음 부칠 것이다. 길들지 않는 영혼으로 나답게 사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100만 번 산 고양이》와 무섭지만 세상 밖으로 나가 자기의 세상으로 떠나는 《뛰어라 메뚜기》, 그리고 박완서 작가의 문장을 그림책으로 만든 《시를 읽는다》이다. 하나는 작가가 살고 싶어 하는 내용이 담긴 그림책이고, 하나는 작가를 닮은 그림책이며, 마지막 책은 시를 좋아하는 작가에게 주고 싶은 그림책이다. 모두 내가 애정 하는 그림책이니 나 역시 그런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고 딸도 그러하기를 바라는 것일 테다.

  

조지아의 어느 하늘 아래에 서 있을 작가의 몸에는 또 어떤 문장들이 들어오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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