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즐기는 차는 커피였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커피는 차가 아니다. 잎으로 만든 것을 ‘차’라 한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그 정도로 차에 관해선 큰 관심도 없었고 즐기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무슨 바람이 불어 차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지금도 차 여행 중에 있다.
하루에 한 잔은 꼭 마셔야 하는 커피. 이건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아침은 간단히 먹고 있어서 점심 식사 후에 꼭 커피를 마셨다. 안 마시면 하루라는 시공간 어딘가에 구멍이 나 있는 기분이었다(과거형으로 쓴 것은 어제오늘 안 마시고 차를 마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밥은 서서 먹을지언정 커피는 후루룩 마시고 싶지 않았다. 제대로 앉아 여유를 갖고 마시고 싶었다. 그 시간에 맛을 음미하거나 명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커피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음료가 아니니 당연하다. 그래서 차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커피 향에 처음 매료된 곳은 일본이었다.어학연수의 기회가 생겨 도쿄에서 1년 7개월 머물렀다. 어학원 다니며 일본어에 입이 트이게 되었을 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두 번째 일한 곳은 이름도 근사한 ‘카페 드 모네’였다. 오후 수업이어서 오전 시간에 일했다. 일본어 실력이 나아진 후에는 주문받으며 커피 만드는 일을 맡았다. 90년 대 초였기에 우리나라에선 원두커피를 구경할 수 없을 때였다. 커피 기계 위에 원두 통이 있어서 버튼을 누르면 바로 커피콩이 갈리고 커피가 나왔다. 그때 흘러나오는 커피 향이 고소하고 달콤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맛을 들인 것은 커피가 아니라 녹차였다. 일본에서는 녹차가 일상 음료였다. 20대 청년이었던 내가 알고 있는 녹차는 씁쓸한 맛이었는데 일본 녹차는 부드럽고 단맛도 있었다. 중요한 건 어딜 가나 녹차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자주 마시다 보니 점점 그 맛에 길들여졌다. 중국이나 유럽에서 공부하고 온 이들이 차에 빠지는 것과 비슷하다. 한국에 나왔을 때 그 맛이 그립기도 해서 남편이 일본 출장 갈 때 사 오라 부탁했을 정도이다.
우리나라에서 녹차를 만날 기회란 티백 정도였다. 그러하니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이런 경험을 보면 무엇을 마시는 가는 습관의 산물이다. 지금은원두의 종류나 만드는 방법이 얼마나 다채로운가. 그래도 난 카페에 가면 거의 아메리카노를 외친다. 더울 때 아이스로 바뀔 뿐이다. 가끔은 라떼나 카푸치노를 시키는데 집에선 디카페인 커피를 마신다. 음료 마시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하루에 커피 한 잔이면 족했다. 나머진 눈 건강을 위한 메리골드 차나 잠에 빨리 들기 위한 허브차 정도였다.
그런 내가 차 여행이 하고 싶어졌다. 그걸 어떻게 알고 SNS에 차 여행 광고가 자꾸만 보였다. 보성으로 가야 하나, 하동으로 가야 하나 그러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광고에서 보여준 곳은 차의 고장이 아닌 횡성의 한 다원이었다. 게다가 횡성에 도착하면 픽업 서비스도 해 준다고 했다. 농촌진흥청과 연계되어 여행 내용은 풍성하고 비용은 착했다. 자연이 풍부한 산골의 한옥에서 풀벌레 소리 들으며 하룻밤 머물 수 있고, 식사도 두 끼나 포함되어 있었다. 차 연구가가 운영하고 있어서 다도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게 여행으로 이끈 가장 큰 이유였다.
어떻게 내 마음을 알고 맞춤 홍보가 눈에 띄었는지 놀랐지만 아마 포털 검색 창에 차 여행이라고 썼을 것이다. 알고리즘이 유익하기도 하지만 편집증 환자(?)로 만들기도 할 것 같다. 우물 안에 갇히지 않으려면 다른 검색어도 부지런히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그 덕분에 지금 나는 ‘차’라는 우물에 들어와 있다. 그곳에서 강을 만나고 바다를 지나 지구촌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차의 세계야말로 광활한 세계라는 걸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이젠 알고리즘 도움으로 편집증 환자가 되고 싶다. 우리 차를 깊이 알고 싶기 때문이다.
기대 속에 떠난 횡성에서의 다도체험은 내 욕구를 만족시켜 주지 못했다. 주인이 텃밭에서 바로 채취해온 작물들로 차려준 건강밥상을 받고 여러 꽃차를 사 오고, 황토찜질방에서 찜질할 수 있었던 점은 좋았다. 그러나 체험은 체험일 뿐 차에 대한 기대감은 채울 수 없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차 마시는 법이나 차담 외에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겠는가.
하지만 60대 주인장이 들려준 차 여행 이야기는 새롭고 흥미로웠다. 차 연구가답게 해마다 차 여행을 떠나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녔다.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혼자서 이곳저곳 훨훨 다니는 모습이 눈에 훤히 그려졌다. 짐은 택배로 부치고 가볍게 돌아다닌다는 말이 유용했다. 주인은 내가 책방에 가면 꼭 책을 사 오듯 제다원을 다니면서 차를 샀다. 하지만 책은 한 권에 2만 원도 안 되는데 주인이 사 오는 차는 몇 배나 많은 금액이었다. 내게 내년 차 여행을 같이 가자고 했다. 과연 동행할 수 있을 런지 모르겠다.
어쨌든 횡성 여행은 차에 빨리 가 닿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집에서 하는 차 여행 >
횡성에 다녀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전에 본 일본 영화 ‘일일시호일’을 다시 본 것이었다. 개봉 당시 차에 관한 영화인 데다가 단아하고 기품 있는 여성의 모습에 이끌려서 보았다. 스무 살에 다도 수업을 시작한 주인공이 25년이 지나도록 같은 다인에게 다니면서 배우고 있었다. 소설이 아니라 실제 경험을 쓴 에세이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차 수건을 잡고 쓰는 방법까지도 엄격한 규칙을 정해져 놓았을 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다도였다. 공감하기 어려웠다. 주인공 노리코 역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영화를 보고 놀란 점은 다도를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을 때에야 스승이 남들을 가르쳐보라고 권유한 것이었다. 깊어지고 깊어질 때까지 나서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그 긴 시간 멈추지 않고 같은 걸 배우는 그 성실함과 끈기에 고개가 숙여졌다.
다음으로 이 영화의 원작 에세이집 《매일매일 좋은 날》을 펼쳤다. 이 책은 당시 영화를 보고 블로그에 리뷰를 올렸을 때 그걸 본 한 이웃이 선물해준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책이 싱거워 보여서 그냥 덮어두었다. 책도 발효가 된 것인지 이제야 글이 들어왔다.
나는 정원을 마주하고 있는 조용한 방에 들어가 다다미에 앉아 물을 끓이고, 차를 타고, 그 차를 마시며 오직 그것만을 되풀이한다.
- 모리시타 노리코, 『매일매일 좋은 날』
다도에서 하는 행위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지 묻는 노리코에게 스승은 일일이 알 필요가 없으며 몸으로 익히라고만 한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 왜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정해져 있는 거야? 말도 안 돼!”라고 했던 노리코는 차와 함께 긴 시간을 보내고 나자 계절의 감각을 세심하게 느끼고, 힘든 일도 잘 견디어 나간다. 나는 그 책 다음으로 출간된 다도 에세이집도 사서 읽었다. 내면적으로 더욱 성숙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다도를 시작하고 40년이 지난 후에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이미 그녀에게 다도는 삶과 한 몸이 되어 있었다.
일본 다도를 숨이 턱 막힐 것처럼 느낀 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독일의 영화감독 도리스 되리가 영화를 찍기 위해 일본의 한 사찰에 머물 때였다. 도리스는 새벽 세 시에 시작하는 명상이 끝나면 다도 의식이 있다는 알림을 받는다. 추운 사찰에서 뜨거운 차를 마실 기대감에 무척 기뻐하며 감독은 다도에참석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오죽하면 다다미 바닥에 몸을 던지며 세 살짜리 어린아이처럼 울고 싶었을까. 그 빌어먹을 차는 언제 나오는 거냐고요? 대체 그걸 언제 마실 거냐고요? 제발, 제발, 이 지옥 같은 고통은 이제 그만 끝내주세요! 이 대목에서 얼마나 생생하게 그 모습이 그려지던지 데굴데굴 구르며 웃고 싶을 정도였다. 나 역시 그렇게까지 까다로운 형식에 맞추어 차를 마시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판소리 수업을 가면 가끔 선생님이 건네는 차를 마셨다. 선생님에겐 특별한 인맥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엔 깊은 산골에서 야생차를 만들어 보내주는 이들도 있었다. 차 맛을 잘 몰라도 얼마나 부드럽고 맑은지는 알 수 있었다. 격식을 차리지 않고 편안하게 맛을 즐기며 마셔도 차에 집중하면서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그 정도가 좋은 차의 자리라 생각한다. 어느 정도는 격식을 갖추되 부담이 없는 분위기에서 사담 나누며 정을 쌓아가는 자리 말이다.
노리코는 복잡한 형식 속에서 오히려 자신이 해야 할 일이나 여러 생각들을 잊어버리고 차 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 안에서 계절을 만나고, 날씨를 만나고 자신의 감정을 만났다. 다도는 복잡하면서 단순한 것임을 작가는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다도를 배우라고 한다면 고개를 젓겠다. 난 다른 방식으로 만날 것이다.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핸드드립 수업도 듣고 기구들을 다 사놓았지만 결국은 바로 타는 것이나 드립 커피처럼 손쉽게 내려 먹는 나를 보면서 역시나 복잡한 것들은 내 취향과 맞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차와 함께 생활해 오신 지허 스님도 까다로운 다도 형식을 꼬집는다. 그리고 우리의 다도라면 딱 세 가지라고 말한다. 정성 들여 만들고, 좋은 기술로 저장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마시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우리 차를 잘 알기 위해 품절된, 지허 스님이 쓴 차에 관한 책을 중고서점에 주문해 놓고 설렘 속에 기다리고 있다.
<영상으로 하는 차 여행 >
내친김에 순창의 시골 책방에서 구독 서비스로 받은 차 입문서 격인 책을 열심히 읽으며 여러 차의 세계를 만났다. 그러고 나자 자연스럽게 예전에 단 한 권 읽은 차에 관한 책을 꺼내 펼쳐 보았다. 이제는 차의 이름도, 그에 관한 내용도 눈에 제법 들어왔다.
다음은 인터넷으로 차에 관한 영상을 찾아보았다. 처음엔 일반인이 올린 것을 보았으나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프로그램들을 찾아서 보고 있다. 한중일 차 삼국지에 관한 것에서부터 차밭에서 차를 따서 만드는 제다 과정에 관한 이야기나 차의 연원 등이 볼수록 흥미롭다.
유명하다는 외국의 산지에서 만들어진 홍차를 몇 번 마셔보았으나 강한 향 때문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따라서 난 점점 우리 차에 관심이 기울어진다. 영역도 점차 좁혀지면서 우리나라 차밭에 대한 것들을 가려보고 있다. 영상은 중국차에 대한 것들이 많이 보이고 우리 차에 대한 것이 적어 안타깝다.
차 여행을 구상하고 있을 때 먼저 떠오른 것은 당연히 보성과 하동이었다. 물론 유튜브에서도 이 두 곳이 월등히 많다. 하지만 이번에 공부하면서 처음 들어본 차들이 있다. 김해 장군차와 장흥 청태전 차이다.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장군차’의 유래는 대마도 정벌군이 김해 금강사에 주둔하고 있을 때 고려 충렬왕이 군사들을 서열하기 위해 김해에 들렀다가 자생하고 있는 산차 나무의 맛을 보고 ‘장군’이라는 칭호를 내렸다고 한다. 김해시에서 발굴하여 1999년부터 농가 재배를 시작했다고 한다.
청태전차 역시 야생 발효 차이다. 신라시대부터 보림사에서 처음 재배하여 전해오는 우리 고유의 야생 수제차인데 만들기도 까다롭고 조선시대 불교탄압으로 사라질 뻔했다. 다행히 장흥군에서 복원하였다. 파래가 낀 엽전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청태전은 덖지 않고 수증기에 찐 다음 절구에 찧어서 떡처럼 뭉쳐 항아리에 1년 이상 발효시킨다. 유기농 야생차라는 점에 더욱 호감 간다. 청태전차는 세계 차 대회에서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금상을 수상한 적이 몇 차례 있을 만큼 맛도 좋고 성분도 좋다.
장군차는 쓴맛이 적고 담백한데다가 노화 방지 및 당뇨 예방, 노인성 치매 및 암 예방과 심장 질환 등에 탁월하다고 한다. 청태전은 어떤가? 약이 귀하던 옛날에는 이를 엽전으로 꿰어 가지고 다니며 상비약으로 썼다. 급체와 감기에도 좋고 눈을 밝게 해 준다고 하니 나이 든 사람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눈을 혹사시키는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차가 아닐까 싶다. 변비도 예방되고 항산화 능력이 뛰어나며 콜레스테롤을 낮추어준다. 이런 잎차를 하루에 1~3잔을 마시면 암세포를 꼼짝 못 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하니 발효차로 더 많은 영양 성분이 들어 있는 청태전차를 가까이해야겠다.
횡성에서 돌아온 뒤 차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면서 나는 왜 차 여행을 떠나려고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궁극적으로는 ‘왜 차를 마시려고 하는가?’이다. 첫째는 건강이다. 살아 있는 동안 내가 내 몸을 스스로 돌보고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이 지금의 가장 큰 목표이다.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그 생각이 더 절실해진다.
그리고 또 하나, 나를 들여다보고 돌아보며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다. 명상이라 할 수 있겠다. 내 안에 들어온 티끌은 몰아내고 욕심은 내려놓으며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맑아지고 싶기 때문이다. 사고와 마음의 벽이 두꺼워져서 완고해지는 것을 경계하고도 싶다. 이제 읽기 시작한 책은 《차와 선의 세계》인데 차 공부한 지인에게 선물 받은 지 4년 차가 되었다. 《매일매일 좋은 날》을 이제야 읽은 것처럼 이 책도 그때는 흥미를 많이 자극하지 않았는데 때가 되니 잘 읽힌다. 이 책이야말로 내가 차로써 궁극적으로 닿고자 하는 지점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인 것 같다.
그런데 마음과 욕심을 비우려고 차를 마시려 한다면서 차 공부하다 보니 차와 다기에 대한 욕심이 생기려 한다. 아이러니다. 과하지 않게 꼭 필요한 정도로만 하자고 차 마시며 수시로 다독여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욕심만 커지는 게 아니라 차에 연결되어 있는 우리 문화와 예술, 역사를 함께 들여다보게 되니 차 공부가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지금은 영화와 책, 유튜브로 공부하고 있지만 더위가 지나가면 차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가고 싶은 곳도 정해졌다. 청태전의 고장 장흥과 순천 선암사의 다원, 구례의 다원 등이다. 정신과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차 공부는 차를 마시는 것만이 아니다. 가능할지 모르지만 푸른빛을 가득 머금고 있는 차밭을 바라보는 것도, 차나무 곁을 걸으며 차나무와 마음을 나누는 것도, 차나무가 올려다보고 있는 하늘을 같이 바라보고, 차밭에서 들리는 소리와 향 등을 몸으로 마시고 오는 것도 차 여행이다. 특히 10월부터 핀다는 차꽃을 보고 싶다. 신기하게도 그때에도 열매가 달려 있어서 한 나무에 열매와 꽃을 동시에 볼 수 있다고 한다. 어느 가을날, 그 푸르디푸른 차나무 곁에서 나도 푸르러지고 싶다.
요즘 나는 10여 년 전에 도예가 친구의 전시장에서 산 다구들을 비로소 꺼내 쓰고 있다. 다음 주에는 경기도 도자기전 보러 코엑스에 간다. 이 또한 차 여행 아닌 차 여행이다.
횡성으로 떠날 때만 해도 막연했다. 돌아와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횡성이 첫 삽이 되어 주었기에 헤매면서도 공부하고 있다. 혼자서 중구난방으로 하다 보니 체계도 없고 옥석을 가려낼 눈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시작하니 조금씩 안개가 걷히며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서툴러도 내가 가야 할 길이 어느 방향인지 길이 보이고 지도가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좀 더 많이 알고 나면 또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지만 난 우리 야생 잎차에 많이 기울어져 있다. 차는 향과 색과 맛이 중요한 척도인데 향은 중국, 색은 일본이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차는? 구수하고 깊으며 부드러운 게 특징이다. 지허 스님이 말씀하시길 그 세 가지를 다 갖춘 게 우리 차란다.
10년 전에 차 세계를 알았더라면, 아니 우리 차를 알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훈수 두기 좋아하는 분들이여, 제발 지금이 가장 빠른 때라고 말하지 마시라. 나는 두 해 지나면 60대를 맞이해야 한다. 그런데 차 공부를 하면 할수록 즐겁다. 오전에 주문한 청태전이 도착해 마주하고 있자니 얼마나 설레던지. 그래서 더 아쉬운 거다. 장군차 기다리는 지금의 마음도 보고 싶은 책이 하루빨리 도착하기를 기다릴 때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