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 산을 다녀왔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미술관이라고 해서 언젠가 다녀오고 싶었던 곳이다. 횡성 산골에서 하루 묵고 아침 식사할 때 갈만한 장소를 물어보았다. 주인장 입에서 뮤지엄 산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분명 내 눈에선 광채가 번쩍였을 것이다. 그곳에서 가까운 곳인 줄 알았다면 당연히 행선지에 추가해 놓았을 터이다. 게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있다니 그건 횡재였다.
그러고 보니 ‘횡재’라는 말은 안도 다다오와의 인연과 깊다. 2012년에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란 책을 처음 만났을 때도 ‘횡재했다’라고 했다. 그 때는 날마다 책을 한 권씩 읽고 블로그에 리뷰하는 독서프로젝트를 혼자서 하고 있을 때였다. 평소엔 사서 읽지만 날마다 한 권씩 사서 읽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기간 동안은 집 근처 도서관의 신세를 적잖이 지고 있었다. 한참 사진을 배울 때이기도 해서 일본의 천재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라는 책을 찾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다 읽고 나서는 그냥 횡재가 아닌 ‘완전히 횡재했다’고 했을 정도로 안도 다다오라는 인물에 많은 매력을 느꼈다. 그가 설계한 독특한 건축물 자체보다 그가 걸어온 삶과 남 다른 건축관에 더 많은 호기심과 흥미를 가졌다. 그는 건축가이기 전에 철학자였다.
눈을 크게 뜨고 앞을 응시하는 젊은 안도 다다오의 얼굴이 표지 전면을 차지하다시피 했다. ‘빛의 건축가’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을까? 사선으로 긋고 있는 빛이 오른쪽 눈에만 닿게 해서 그의 두 눈을 강하게 대비시키고 있었다.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란 제목은 어떤가? 자신감과 단호함이 차돌 같은 힘으로 뻗어 나오는 듯 했다. 강렬한 눈빛과 선명한 대비에 아주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난 뛰어난 건축가야. 빛을 요리하는 건축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하는 프리츠커상을 비롯해 권위 있는 상들을 거머쥔 그가 원래는 권투 선수였다는 사실부터 흥미를 끌었다. 최종 학력이 공업고등학교 졸업이다. 건축가들의 필수 코스인 엘리트 교육을 거친 것이 아니라 독학으로 공부한 것이다. 안도는 오사카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는데 부모와 떨어져 외할머니 집에서 자랐다. 이런 점들만 보아도 그가 걸어온 길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요소들이 그에게 뛰어난 발상을 주고, 창의적인 건축물들을 탄생시키게 한 배경인지도 모른다.
내 삶에 강한 인상을 남긴 사람 가운데엔 야생 사진 작가 호시노 미치노가 있다. 그는 꿈에도 그리던 알래스카로 가 그토록 좋아하던 곰에게 습격당해 생을 마치기까지 16년 동안 그곳에 있었다. 그를 알래스카로 이끈 것은 십 대 때 헌책방에서 만난 한 권의 사진집이었다. 거기에 실린 알래스카의 풍경 사진 한 장이 드라마 같은 여정을 만들어냈다. 안도 다다오도 이와 비슷하다. 스무 살 시절 헌책방에서 운명 같은 책을 만난다. 현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책이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안도의 삶과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 역시 독학으로 기성체제와 싸우며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간 건축가였다.
안도는 사진과 스케치, 드로잉, 프랑스어 본문이 책 판형에 어울리게끔 아름답게 구성된 레이아웃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비싼 책을 살 만 한 여유가 없었다. 그리하여 책을 슬쩍 감추어두고 근처를 지날 때마다 들어가서 확인했다. 책 더미 밑에 숨겨 놓기를 수차례, 드디어 한 달 가까이 돈을 모아 손에 넣게 된다. 그 책은 그를 유럽 건축여행으로 이끌었고 ‘도시에 저항하는 게릴라’라는 그의 건축관도 만들어주었다.
그가 유럽을 돌아보고 오겠다는 결심을 말했을 때 외할머니는 “돈은 쌓아 두는 게 아니다. 제 몸을 위해 잘 써야 가치 있는 일이다.”라고 말하면서 흔쾌히 보내 주었다고 한다. 훌륭한 할머니다. 하지만 일을 대강 하는 손자였다면 그런 응원을 해 주지 않았을 것이다.
헌책방에서 사온 르 코르뷔지에의 책을 보면서 도면이나 드로잉을 얼마나 베꼈는지 도판을 다 기억해 버렸을 정도였다. 그는 잠을 줄여가며 책을 읽고 식비를 줄여서라도 해외도서나 해외잡지를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일본 일주에 나서는가 하면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자 북유럽으로 떠나 건축물들을 보며 원 없이 공부한다. 그가 그토록 존경하고 만나고 싶었던 르 코르뷔지에가 죽는 바람에 만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가혹한 자연 속에서 낭비를 철저히 배제한 소박한 건물들에 빛과 사람의 일상에 대한 배려가 잘 담겨 있음을 보았다.노출 콘크리트와 기하하적 형태 그리고 물 등은안도를 대표하는 건축 구성요소가 되었다.
건축에 문외한이었던 내가 그의 책을 만나고 건축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첫 건축가를 제대로 만난 덕이지 않겠는가. 이 계기로 다른 건축가들의 책들을 읽고, 사진 찍는 데에도 도움을 받았다. 남편이 일하는 도쿄에 가면 안도가 설계한 도서관이나 미술관을 찾아가기도 했다. 제주여행 계획을 세울 때는 안도 다다오의 영화를 보고, 그가 설계한 건축물들을 계획에 넣기도 했다. 조금씩 건축에 눈을 떠가면서 건축가야말로 종합예술인이라는 인식과 함께 존경심이 일었다. 특히 건축가들이 어디에 중점을 두고 설계하느냐에 많은 관심이 갔다.
뮤지엄 산에 간 것은 6월 하순이었는데 전날부터 날이 궂었다. 갑작스레 비가 퍼붓다가 멈추기를 반복했고 미술관에 갈 때엔 흐렸다. 하지만 미술관을 에워싸고 있는 숲의 푸른빛들은 한창이었다. 역동적인 에너지로 찬란한 숲속으로 들어가는 그 길에서 흥분은 이미 시작됐다.
안도 다다오의 명성 때문인지, 건물의 아름다움 때문인지 평일인데도 미술관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코로나로 묶여 있던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열심히 다니고 있을 때이기도 했다.
뮤지엄 산의 설계도를 보면 칸딘스키의 그림이 떠오른다. 평면으로 펼쳐져 있다는 것이 다를 뿐 칸딘스키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음률과 역동성이 느껴진다. 미술관이 시작되는 웰컴 센터에서부터 마무리되는 제임스 터렐관까지 마치 강물이 흐르는 느낌이다. 웰컴 센터의 원형이 곡선으로 길게 펼쳐져 플라워 가든을 지나고, 워터 가든에서 다시 뭉쳐 삼각이나 사각이 된다. 스톤 가든에서 제임스 터렐관까지는 견고해보이던 그 도형들이 다시 실처럼 풀어져 이리저리 몸을 굴린다. 그 안에서는 무얼 해도 좋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계속적으로 바뀌는 우리의 마음이나 삶이 연상된다.
입장권을 들고 본관으로 나설 때부터 왠지 그 여정(?)이 단순하지 않을 것이란 예감이 온 것은 그의 건물들 대부분이 그러하기 때문이리라. 파주석으로 쌓았다는 담을 지나니 패랭이꽃이 가득한 뜰이 나왔다. 본관으로 가는 관문인 플라워 가든이다. 시선 끝에는 내가 좋아하는 자작나무 숲이 있었다. 자작나무 잎들이 바람을 흔들어대며 부딪는 소리가 귓속을 지나서 가슴으로 내려와 속을 메웠다. 미술관이라는 사실도 잊고 어딘가 다른 여행지로 떠나는 기분이었다.
산책로 같은 그 길을 걷고 있자니 안도가, 표를 끊은 이상 제 아무리 걷기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걸어서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단호히 말하는 듯 했다. 하지만 지루하지는 않을 거라고 속삭이는 것도 같았다. 전체 직선거리가 약 700미터란다. 그 안에 들어서면 모두가 안도 다다오의 손바닥 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이 평소 걷기 싫어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잊을 것이다. 그의 각본에 충실한 배우처럼 하나 둘 그 안의 풍경에 동화된다. 도시에 있는 대부분의 미술관에선 동선을 염려할 필요가 없지만 때로는 넓고 아름다운 풍광 속에 지어진 미술관에 가면 어느 건물로 먼저 갈지 고민할 때가 있다. 그런데 뮤지엄 산에선 전혀 그런 고민이 필요 없었다. 본관 건물 안은 제외지만 말이다.
감동이 가시기 전에 담이 하나 나왔다. 그 안으로 들어서자 그만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붉은 알렉산더 리버만의 아치웨이 아래로 곧게 지르는 길 양쪽에 물이 가득한 워터 가든이다. 군더더기 없는 본관 건물과 나무들이 물 위에 고요히 떠서 신비감을 자아냈다. 방금 전 지나온 길도, 곧 가야 할 길도 잊고 오로지 그곳에만 집중하라는 듯 했다. 많은 방문객들이 그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기념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나 역시 반영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 바탕 사진을 찍고 비로소 본관에 들어서니 이젠 내부의 아름다움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안도 다다오의 대표 공법이라 할 수 있는 노출 콘크리트의 육중한 벽이 똘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명암의 대비로 아름다운 배경을 연출하는 복도에선 일행을 세우고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모노톤으로 바꾸면 작품 사진을 탄생시키는 선이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전시장에서 작품들을 보고 다른 전시 공간으로 이동하다가 문득 바라본 바깥 풍경에 넋을 놓게 되는 순간도 있었다. 그곳은 산속에 있는 미술관이니 말이다. 시선에 맞춰 수평으로 길게 난 창문이 경계를 허물고 있었다. 안도 다다오는 실내의 작품을 넘어 바깥 풍경까지도 하나의 작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전시품보다 복도에서 바라본 풍경들이 지금도 기억에 더 남는 이유이다. 아름다운 자연 만큼 뛰어난 예술품이 또 있겠는가.
몇 차례 길을 헤매기도 한 본관을 나오니 경주 고분을 떠올리게 한 스톤 가든으로 이어졌다. 밝은 톤의 돌로 쌓은 9개의 돌무덤이라니, 일상에서 만날 수 없는 특별한 시공간 속에 있었다. 거기에 사용된 돌은 인근에서 나온 자연석이다. “건축이라는 것은 추상적 공간 구조 안에 자연과 역사, 전통과 사회 등 현실 세계에서 명확하고 투명한 논리로 구성된 구체적인 요소들을 표현하는 작업”이라는 안도의 말을 떠올리게 했다. 곡선이 주는 안정감은 평온함과 함께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불러왔다. 우리 몸에 담겨진 원형의 그리움은 아니었을까.
예약된 시간 안에 제임스 터렐관에 도착했다. 비가 떨어져 대기실에서 기다리니 시간에 맞춰 해설사가 와서 안내했다. 날이 흐려 백남준관에서도, 터렐관에서도 하늘빛과 교감할 수는 없었지만 충분히 많은 체험을 하고 나왔다. 특히 터렐관에서는 신비로운 빛의 체험을 했다. 빛과 공간에 대한 고찰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선구자로 알려진 터렐의 작품은 사유와 명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낯설고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많은 생각을 안겨주는 체험이었다.
스카이스페이스와 호라이즌룸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변화하는 색감을 통해 고요히 머물 수 있었다. 독일어로 ‘완전한 영역’이라 해석되는 간츠펠트에선 착시 효과에 대한 빛의 체험을 했다. 어떤 색을 본 뒤에 다른 색을 보면 본래의 색이 아닌 다른 색으로 보인다. 해설사가 설명해 주지 않으면 알 수도 없다. 실제의 색과 다른 색을 보는 우리 눈이었다. 그렇다면 평소 내가 보고 있는 색들이 정녕 본래의 색이었는지 의문을 던져주었다. 더 나아가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나 확신하고 있는 신념들이 정말 옳은 것일까?’로 확장되었다. 때로는 어둡고 때로는 몽환적이기까지 한 빛의 공간이라 더욱 겸손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터넬관을 나오니 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미술관에 들어가면 비 맞을 일이 없는 일반 미술관과 다른 설계이다. 건물마다 우산이 비치되어 있어 빌려 준 우산을 쓰고 되돌아 나오는데 비는 어느 새 멈추었다. 터렐관의 빛 체험이 안겨준 여운을 안고 스톤 가든을 지나 본관으로 다시 흘러 들어왔다. 본관에서 또 길을 잃고 헤매다가 꽃의 정원을 걸어 나오는데 들어갈 때 보이지 못한 산이 보였다. 왼쪽으로 펼쳐진 완만한 능선이었다.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어깨동무로 선을 이루며 푹신한 질감으로 푸른 기운을 품고 있는 매력적인 모습이 사진으로는 담겨지지 않아 찍었다가 지워버렸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지금도 아름다운 무늬로 새겨져 있다.
뮤지엄 산은 다른 미술관과 다른 느낌을 안겨주었다. 대부분 작품에만 집중하고 왔다면 뮤지엄 산은 오히려 작품 관람보다 풍광 좋은 여행지에 다녀왔다는 느낌이 강하다. 종이박물관에서 만난 작품들이나 미술품들도 뛰어났음에도 자연과 하나 되는 순간을 누리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더 큰 만족감을 느꼈다.
안도 다다오는 ‘피리 부는 소년’이다. 미술관이 시작되기 전인 숲 입구에서부터 이미 피리소리가 홀리고 있었다. 웰컴 센터에서 입장권을 손에 쥔 순간 우리는 안도 다다오라는 소년의 뒤를 따라 동굴로 들어서게 된다(소년의 심성이기에 신비스런 건축물들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동굴의 마력에 빠져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다음을 기약한다.
가을에도 가야지, 아니 눈 쌓인 고분을 보고 싶어. 설산도 보고 싶어. 생동하는 봄기운도 당연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