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이 핑크뮬리를 낳았다

by 김건숙

밀키를 데리고 산책을 먼저 시작했다. ‘먼저’라고 한 것은 산책하면서, 밀키 컨디션을 살펴보고 동물병원에 가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일하러 나간 작은 딸에게서 병원에 갔느냐는 문자가 왔었다. 처음에는 내 어깨 때문에 정형외과 다녀왔는지 묻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문자 위에 밀키라는 말이 있는 걸 나중에 보았다.


어제 밤 작은 딸과 밀키 패드를 보면서 ‘내일 병원에 가 봐야겠다.’고 한 말이 그제야 생각났다. 밀키가 붉은 오줌을 누었기 때문이다. 피오줌인가 했다. 처음 본 오줌색이라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요즘 건망증이 부쩍 늘기는 했지만 밀키 상태가 전과 다름없었기에 병원 간다고 한 걸 잊고 있었나 보다.

밀키는 밤새 오줌 한 번 누지 않았고, 오전 시간이 다 흘러가도 패드는 깨끗했다. 소변을 못 본다는 것은 큰 문제다. 나도 수술을 하거나 아이를 낳았을 때 오줌을 누었는지 열심히 체크 당했다. 그러니 한편으론 걱정이 되었다.


병원에 갔느냐는 문자가 가족 단톡방에 올라 와서, 떨어져 사는 큰 딸도 놀래 어디 아픈지 물었다. 그런데 원인을 알 것 같아 하루 정도 관찰한 다음 오줌색이 원래대로 돌아오면 안 가도 될 것 같았다.


어제는 비트밥을 처음 했다. 비트가 몸에 좋다고 해서 한 봉지 사다놓기는 했는데 평소 잘 안 먹는 식재료여서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하나가 남아 있었다. 마침 이웃 블로그에서 비트밥 한 것을 보고 치워버리기로 했다. 특별한 방법 없이 썰어서 씻은 쌀 위에 얹어 취사 버튼만 누르면 되었다.


밀키는 냉장고에서 식재료를 꺼내 칼질을 할 때도, 내가 밥을 먹을 때도, 쪼르르 달려 와 내가 잘 보이는 곳에 척하고 앉아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어제도 밥을 푸려고 할 때 쪼르르 달려왔다. 할 수 없이 아점에는 작은 조각 한 개, 저녁에는 두 개를 밥 조금과 함께 주었다. 다른 날과 다른 것은 그뿐이었다. 그래서 붉은 오줌을 누었을 것이라는 의심이 생겼다.

밀키가 눈 오줌


사람은 비트 먹었다고 비트색 오줌을 누는 건 아니지만, 강아지는 구조나 소화력이 달라 그럴 수도 있을 거란 추측만 했다. 왜냐 하면 오줌색이 붉다기 보다는 핑크색이었고, 비트색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색이나 모양이 핑크뮬리여서 이것이 판타지라면, 우리 밀키 같이 귀여운 아이가 그런 예쁜 오줌을 누는 건 하나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 비트 때문이란 생각이 들기는 해도 완전히 마음 놓을 일이 아니었다.




큰 아이가 동물병원에 전화해 보라 해서 했더니 점잖고 낮은 목소리의 수의사가 바로, 비트는 금기 식품이라고 했다. 심장이 덜컥 했다. 한번 데리고 와서 진료를 받아보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인터넷에 검색해보았지만 비트가 금기 식품이라는 말은 없었다. 초콜릿, 브로콜리, 양파, 마늘, 아보카드, 포도, 맥주(강아지에게 술 먹이는 사람도 있나?), 과자, 건어물, 우유, 기름진 음식 등만 나와 있었다.


쓰레기통에서 핑크뮬리가 새겨져 있는 패드를 꺼내들고 산책을 나갔다. 그러면서 상태를 살펴보자 한 것이다. 밀키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안심은 됐으나 산책을 마치고 병원에 갔다. 수의사에게 비트는 금기 식품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자 자신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면서 밀키를 살펴보았다.


젊은 수의사는 밀키 안색이 안 좋고, 소화가 안 되고 있다고도 했다. 털로 덮여 있는 얼굴에서 상태를 알아내고, 소화가 안 되는 것도 바로 알아내니 능력 있는 수의사란 생각을 했다. 비록 비트를 금기 식품으로 착각은 했지만 말이다.



밀키는 태어난 지 10년이 되었으니 나와 비슷한 나이일 것이다. 나도 작년부터 여기저기 아픈 곳들이 나타나기 시작해 돈과 시간을 몸 관리하는데 많이 들이고 있다. 그래서 동변상련이 느껴진다. 살짝 어떤 변화가 보이면 긴장이 된다. 그래서 종종 자고 있는 밀키를 쓰다듬으면서 아프지 말고 건강하라고 말한다.


밀키에게 아토피가 있어 다른 병원의 노련한 수의사에게 치료를 받았을 때, 사람 음식 중에 그래도 밥이 괜찮다고 해서 조금씩 주었다. 밥 먹는 앞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간절한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는 눈빛을 모른 척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러나 이제는 거기에서 지면 안 된다. 과감하게 습관을 들여야 한다. 밥 조금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음식만 보면 끊임없이 달라고 졸라댄다. 나 또한 밥 조금으로 끝나지 않고, 파프리카는 괜찮겠지, 토마토는 괜찮겠지 하면서 조금씩 주다가 양도, 종류도 늘어만 갔다.


어느 날은 카펫 위에 젤리 같은 붉은 분비물이 나와 있었다. 무엇인지 살펴보다가 똥꼬를 보니 거기에도 묻어 있었다. 장에 큰 문제가 있나 생각하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핑크뮬리 오줌도, 이 일과 다른 안 좋은 일들도 밤에 잘 일어났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 일은, 그 날 채소로 만들어진 액체 상태의 간식을 주었는데 그것이 소화되지 않고 그대로 배설된 것 같았다.


이번 일을 겪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매정해지자, 단호해지자고. 밀키 입장에선 마른하늘에 웬 날벼락이냐며 억울해하겠지만, 그래도 약해지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코로나19로 집콕 생활 하면서 '오후 세 시'의 시간이 내게 가장 자유롭고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대기 때문이다. 그래서 5월부터 무엇을 했는지 기록해 나가고 있다. 새롭게 바뀐 내 일상이 나의 새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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