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괄량이 삐삐를 다시 만나다

by 김건숙

건강관리원에 갔더니 두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다 끝났는지 몇 분 있다가 훈증실을 나갔다. 누군가 있으면 TV를 틀거나 같이 온 사람들끼리 수다를 떠는 경우들이 많은데 오롯이 혼자 있게 되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을 읽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 TV에서 방영해준 <말괄량이 삐삐>를 재밌게 보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원작이 무엇인지, 작가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우연히 SNS에서 누가 올린 표지를 보고 마음에 끌려 산 책이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이었다.


사고 보니 어린이 책이었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말괄량이 삐삐’의 원작을 쓴 작가였다. 얼마 전 백희나 작가가 수상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이 그 작가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상이며, 아동문학의 노벨상이라도 말한다. 이 책을 쓴 유은실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작가의 책 40권이 보물 1호라 한다.


주인공 비읍이는 자기 생일에 엄마, 이모와 함께 노래방에 간다. 거기에서 엄마가 부른 ‘말괄량이 삐삐’를 처음 듣고 삐삐의 존재를 알게 된다. 노래를 부른 당사자인 엄마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작가가 누구인지 모른다. 작가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고, 원작이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이라는 사실도 모른다.


그것이 꼭 내 모습 같았다.(우리 세대의 많은 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책은 아스트리드 작가를 좋아하는 주인공 비읍이와 헌책방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 사이의 이야기를 감성적으로 잘 풀어놓아 흥미롭게 읽었다.

얼마 전, 전기로 나온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읽고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을 다시 읽었는데 역시 재미있었다. 그러고 나서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을 사서 읽는 중이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읽을 때는 아스트리드 작가가 삐삐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를 읽으면서는 삐삐와 빨강 머리 앤이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삐삐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작가, 빨간 머리 앤이 서로 닮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셋이 내 머리에서 섞이고 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읽기 전에 영화 ‘빨간 머리앤 시즈3’에 빠져서 보고난 다음 완역서도 사서 읽고 있는 중이라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말괄량이 삐삐의 주인공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에서 삐삐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삐삐의 모습은 이랬다. 홍당무처럼 빨간 머리카락은 두 갈래로 야무지게 땋아져 옆으로 쫙 뻗어 있었다. 감자같이 생긴 조그만 코는 주근깨 투성이었다. 그 코밑에는 커다른 입이 있었는데, 튼튼하고 새하얀 이가 엿보였다.


앤 역시 빨간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았고, 삐삐처럼 비쩍 마르고 주근깨 투성이다. 말이 많고, 거침없는 행동 하며, 똑똑하고 상상력이 뛰어나다. 대범함을 가지고 있으며 기존의 규범에 저항하고, 자유분방하다. 이것들이 앤의 모습이고, 삐삐의 모습이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모습이다. 이러하니 섞이고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복고문화가 유행한다더니 삐삐와 앤도 내게 다시 오고 있다. EBS에서도 말괄량이 삐삐를 방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빨간 머리 앤 전시회도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어린 시절 즐겼던 문화가 내 앞으로 다시 오고 있으니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설렌다.


그나저나 다른 사람들은 삐삐의 이름이 뭔지 알기나 할까?

삐삐로타 델리카테사 윈도셰이드 맥크렐민트 에프레임즈 도우터 롱스타킹


외우기는 고사하고 보고 읽기도 힘들다. 외우는 것은 포기하고 주근깨투성이 말괄량이 삐삐만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면 됐지, 뭘 더 바라겠는가! 어떤 어려운 일도 대범하고 시원하게 해 치우고 마는 우리의 영웅, 삐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솟구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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