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 저음 듣는 능력이 떨어진다

by 김건숙

영화 서비스 사이트로 들어 가 검색하다가 <비포 썬셋>이 보여 재생을 눌렀다. 책을 읽다가 이 영화를 몇 번 마주쳐서 꼭 보겠다고 메모해 놓은 게 언제였던가. 무려 최재천 박사님도 어느 책에선가 꼭 보라고 추천을 한 영화이다.





소나기 같은 두 청춘의 만남과 애틋한 이별이 아름다운 수채화처럼 펼쳐지고 있었지만 나는 멀찍이 시선을 던져주는 정도였다. 그들의 나이 대의 풋풋한 사랑과는 한참 멀어져 있는 나이여서인가.


그러나 귀에 쏙 들어오는 말이 있어 얼른 메모했다.

"나이 들면 남자는 고음 듣는 능력이 떨어지고, 여자는 저음 듣는 능력이 떨어진다."

여성은 청력에 약하고, 남성은 분위기에 약하다는 말은 익히 들었다. 특히 여성은 남성의 저음에 큰 매력을 느낀다. 저음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말이 빠르지 않다. 여유 있고 낮은 남성의 목소리에 매력을 느껴 결혼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바로 나다.


물론 그것이 첫 번째 매력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톤이 좀 높고 빠른 내 음성과 대조적인 남편의 저음이 좋았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 음성을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느끼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말수가 적고 점잖은 사람보다 밝고 유머 있는 사람에게 더 끌린다. 그것도 그 예이지 싶다.

사람은 중년이 되면 호르몬이 바뀐다. 남성은 남성 호르몬의 양이 줄어들고 여성 호르몬이 증가한다. 여성은 그 반대다. 그래서 남성은 나긋나긋해지고, 여성은 좀 세지는 경향이 있다.


전업주부로만 살아온 이가 중년이 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공간을 마련하거나 비즈니스 시장으로 뛰어드는 것을 종종 봤다. 반면에 중년이 된 남성들이 잔소리가 많아지고 드라마를 즐겨보면서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음성 취향도 그래서 바뀌는 것이겠다.


남성이 여성화 되면서 고음보다는 저음을 좋아하고, 남성화된 여성은 저음보다 고음을 좋아하다 보니 예전의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겠다. 아니, 바뀌는 것일 것이다.

어디 음성뿐이랴. 얼굴 형태도 변한다. 어르신들이 TV에 나올 때 보면 굳이 신경 써서 보지 않아도 느끼게 된다. 더 나이 들수록 할아버지는 할머니처럼 보이고, 할머니는 할아버지처럼 보인다. 부부가 나란히 나올 때 보면 할아버지는 영략 없는 할머니이고, 할머니 역시 영락없는 할아버지다.


어디 그것 뿐이랴. 젊은 시절엔 남편이 앞서고 여성들이 뒤를 쫓아가는 모습이었다면, 나이 들어서는 할머니 뒤를 쫓아가는 할아버지들을 많이 보았다. 할머니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것도 말이다.


우리 부부의 미래 모습도 그러할 것이다. 나는 할 아버지가 되고 남편은 할머니가 될 것이다. 젊은 시절엔 부모님이 물려주신 성 그대로 살고, 후반 인생에선 반대의 성이 되어 살아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재미있고 신기한 일인가. 20센티 정도나 더 큰 할머니가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닐 생각을 하니 자꾸 웃음이 나온다. 나이 들어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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