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무엇을 하든 좀 빠르거나 좀 늦은 시간’ 어느 철학자도 한 말이다. ‘오후 세 시의 나를 기록하다’라는 주제로 날마다 글을 쓰고 있기에, 이 문장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올린 시간도 다른 날과는 달리 딱 오후 3시였다. 작정하고 올린 것이리라!
그 블로거는 탈진하는 그 시간에 마음에 드는 글을 찾아 읽으며 충전한다고 한다. 아마 오전부터 그 시간까지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일하는 사람일 것이다. ‘좀 빠르거나, 좀 늦은 시간’, 저녁으로 치면 빠르고, 오후로 치면 좀 늦은 시간이라는 말이겠다.
내 경우는 좀 다르다. 코로나로 집콕 생활하면서 ‘오후 세 시’는 내게 가장 자유롭고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해야 할 집안일이나 밥 먹는 것도 마치고, 비로소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하고 싶은 어떤 일을 해도 좋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지난달부터 오후 세 시 대의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기록하고 있다.
저녁 8시를 기록한다면 온통 뉴스 이야기일 뿐이고, 저녁 11시를 기록한다면 특정 요일에는 같은 프로그램 이야기가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오후 세 시라면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기록될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아무거나 해도 되는 시간이니까.
이 기록은 나에 대해 좀 더 알아갈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먹는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가르쳐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수 있다는 조르바의 말을 빌어 쓰면, 내가 오후 세 시대에 쓴 글로 무엇을 했는지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숲만 보였던 것에서 하나 둘 나무들이 보이며, 내가 꾸려나가는 삶의 지층들이 보일 것이다.
엊그제 된장찌개를 하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육수 낸 냄비에 된장을 풀고 재료들을 썰기 시작했다. 먼저 감자를 써는데 쓰윽쓰윽 소리가 났다. 호박은 뚝, 뚝, 뚝, 양파는 쓱쓱쓱 했다. 재료들의 성질에 따라 도마 위에서 나는 소리가 이렇게 다르다는 사실을 처음 인지한 것이다.
그 동안은 음식을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온갖 것들을 계산하고 있느라 들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중하지 않았던 것이다. 중심이 되어야 할 이 일을 내 삶의 변방으로 밀쳐놓고 있었다.
비단 이 일뿐이겠는가. 내게 중요하다고 정해놓은 것들, 그러니까 일이나 꿈, 명예 등에서 먼 곳에 있는 것들은 거추장스럽고 귀찮은 것들로 여긴 것이다. 실제로는 그것들과 자연스런 조화를 이뤄야 내 삶에 균형이 잡히고 건강할 터인데 말이다.
이 일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깨우쳐 주었다. 그리고 음악처럼 들려오는 칼질이 오감을 자극하여 행복으로 이어준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처럼 24시간의 시간 속에서 오후 세 시대의 시간을 들여다보면, 그 동안 보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한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26년 동안 수많은 된장찌개를 끓였으면서도 듣지 못한 재료들의 소리를 들은 것처럼, 내 내면 풍경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기대된다. 내게 집중하며 내 안의 무수한 내가 하나씩 드러날 때 그 또한 큰 행복이지 않겠는가.
오후 3시, 무엇을 하기에 애매하다고들 하는 시간, 그 시간에 나는 삶의 매크로렌즈로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