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 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간

by 김건숙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우리네 사는 세상이다. 다른 날도 아니고, 바로 어제 나는, 오후 세 시야말로 가장 여유롭고 자유로운 시간이라 말했다. 많은 이들이 무언가를 하기에 어중간한 시간이라지만, 내게는 뭘 해도 좋은 자유로운 시간이라고 말이다. 적어도 외부 활동을 못하고 있는 요즘에 있어서는 그러하다.

그러나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꿔야 했다. 오늘 오후 세 시부터 그야말로 나는 맥을 못 췄다. 책을 읽을 힘은 고사하고, 영화나 tv를 볼 힘도 없었다. 이런 일에도 기본적인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오고 몸도 가라앉았다. 읽는 것을 아무리 좋아한다 해도 그러한 상태에서는 종이 한 장 넘기기도 어려웠다. 그저 빨리 눕고 싶었다. 하필 이런 일이 오늘에 있을 줄이야!

팥찜질팩을 전자렌지에 돌려 어깨 위에 올려놓고 그대로 소파에 누웠다. 한 시간 가까이 잠을 자며 쉬었지만 바로 회복된 것도 아니었다. 따끈한 물을 받아 몸을 푹 담그고 나서야 조금씩 살아나는 듯 했다. 왜 이리 몸이 처졌는지 되짚어 보았다.

전 날 마늘 10통 깐 일

6시 55분에 일어난 일

정기 검진 받기 위해 대학병원에 다녀온 일

비가 와서 우산을 받치고 다닌 일(병원 주차장으로 갈 때 어느 어르신에게 우산을

씌워드린 일)

세무서 간 일

생협에 가서 장을 봐 온 일

운전

방울토마토와 오이장아찌 담근 일

무슨 벽돌을 이고 건축현장을 오른 것도 아니고, 높은 산을 올라갔거나 마라톤을 한 것도 아닌데 이 무슨 난리인가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거의 반 년 가까이 석회성 건염으로 어깨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가벼운 집안 일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컨디션에 따라 통증의 강도는 날마다 다르다. 신경이 꼬이는 듯한 통증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무슨 일을 했느냐에 따라 그 날 그 날의 상태가 다르다. 같은 자세로 있는 것, 반복 행동, 힘을 주는 일, 약간의 무게가 있는 것이라도 짐을 드는 것 등은 통증을 가중시킨다.

그러므로 오전에 운전하며 돌아다닌 것과 우산을 쓰고 이동한 것, 세무서나 생협 등에서 무거운(내게는) 문을 연 것, 장 본 것을 든 것, 칼 질, 마늘이나 방울토마토 깐 일 등이 모두 어깨에 무리를 준 것이다. 특별한 힘이 들어가지 않는 이 일상적인 일들이 내게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거기에다 요즘 워드로 글을 제법 쓰고 있고, 모바일로 블로그 글이나 sns를 한 것도 큰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어깨 부분에 있는 신경에 돌처럼 딱딱한 이물질이 앉아 있는 상태인데, 작은 무리가 가도 통증과 함께 몸 안의 기를 막아 버린다. 그래서 피로감이 몰려오고 통증으로 쓰러질 것 같았던 것이다. 날까지 궂어 어깨가 많이 아렸다. 마치 소금 인형이라도 되어 빗물에 녹는 느낌이었다.

단 하루 만에 오후 세 시는, 무얼 해도 좋을 시간이 아니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날’이 되어 버렸다. 그 나마 어제 말한 것 가운데 하나 맞힌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말이다. 오늘의 오후 세 시를 복기하자면, 에너지로 충만한 날이 많았다 해도, 때로는 종이 한 장 넘기기도 힘든 날이 있다는 것을 알라는 사실이다.


우리 삶도 그러하다. 늘 맑은 것도, 늘 흐린 것도 아니다. 그래서 오래 살다보면 일희일비하지 않는 지혜를 얻는 것이리라.(6월 2일)




코로나19로 집콕 생활 하면서 '오후 세 시'의 시간이 내게 가장 자유롭고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5월부터 이 시간대에 무엇을 했는지 기록해 보기로 했다. 새롭게 바뀐 내 일상이 나의 새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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