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부터 22만원짜리 실내화 신고, 글을 쓴다

by 김건숙

툭 튀어나온 보도블럭을 반듯하게 재정비라도 하듯, 손과 팔로 틀어진 내 뼈들을 되돌리고 혈을 누르며 고문 같은 지압을 마친 원장님은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 두 가지를 알려주었다. 하나는 하늘을 쳐다보고 누운 다음 다리를 어깨만큼 벌린 뒤 상체를 들어 두 팔과 다리를 들어 뒤로 꺾었다, 앞으로 꺾었다 하는 것. 두 번째는 바닥을 향해 누운 다음 팔을 가슴 옆에 대고 상체와 두 발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이었다.


시범을 보여준 원장님은 자신의 발바닥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것은 경악 그 자체였다. 발바닥은 여러 군데가 갈라졌고, 심한 곳은 벌건 속이 다 보일 정도였다. 발가락은 아토피나 무좀 걸린 사람처럼 거무죽죽하고 여기저기 각질이 벗겨져 있었다. 한 마디로 갈라지고 짓무른 상처투성이었다. 그것은 발바닥뿐이 아니라 종아리 아래까지 이어졌고, 손목 주변도 그러하였다.

가렵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왜 안 가렵겠냐고 하였다. 가려운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밤이면 엄청난 통증에 시달리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원장님은 발바닥만 보면 어찌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침대에 오르기 위해 벗었던 신발을 보여주었다. 실내화라고 하지만 일반 구두와 다를 바 없어보였다. 원장님은 그 신발을 신고 있어서 가능하다고 했다. 처음 왔을 때 굽 있는 구두를 신고 있어서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아주 편하다고 했었다. 모두가 기능성 신발이기 때문이었다.

나보다 4살 많은 원장님은 중국 연변에서 17년 동안 은행에서 일했는데 젊을 때부터 몸이 안 좋았다고 한다. 뇌에도 혹이 있었고, 자궁에도 있었으며 몸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았다고 한다. 허리도 많이 아파 기(혈)치료를 받았고, 자신의 몸이 좋아지자 공부를 했다고 한다.


지압원에 들어서면 한쪽에 구두가 진열되어 있다. 기능성 신발이 대부분 그러하듯 디자인은 좀 떨어진다. 평소 몸이 안 좋은 원장님은 신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신발을 신으면서 몸으로 효과를 보았다. 그리하여 대리점까지 하게 된 것이다.



내가 이 발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신발이 없었으면 못했어요!


정말이지 그 발로는 그냥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보였다. 그렇다면 원장님에게 그 신발은 생명줄이고 돈줄(?). 미사여구나 과장 없이 담담하게 말하는 모습에서 신발에 믿음이 생겼다.

원장님은 내게도 하나 신어볼 것을 권유했다. 집에서 글을 쓸 때 그 실내화를 신고 쓰면 좋은 파장을 받아 좋은 문장들이 떠오를 것이라 했다. 글쎄 신발에서 파장이니, 에너지니 하는 것들이 나온다는 것을 대번에 믿을 수는 없었으나 가격을 물으니 22만원이란다. 일반 실내화 2~30켤레 값이다. 일반 구두라 해도 가장 비싸게 산 것이 10만 원 좀 넘는 정도인데 집안에서 신는 신발을 22만원에 산다?




하지만 나는 두 켤레를 사고 싶은 걸 일단 한 켤레만 샀다. 샌들처럼 생겨서 밖에서 신고 다녀도 괜찮은 생김새이지만 요즘엔 거의 집에서 지내니 집안에서 신어보기로 했다. 예전에 서울대입구역 근처의 한 매장에서도 기능성 신발을 파는 가게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20만원 대였다. 그래서 원래 기능성 신발 가격대는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운동 처방을 해주는 정형외과 주치의도 설거지 할 때나 책상에 앉아 있을 때 받침대에 발을 올려놓으란 말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죽도 괜찮아보였다.

원장님에게 신발의 효능을 자세히 들은 것도 아니고, 팜플렛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장기 이름이 인체와 발바닥에 표시된 그림이 붙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8년 동안 한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인데 사기 칠 리는 없을 것이다. 한편으론 효과가 없다손 치더라도 갖은 정성으로 내 몸을 관리해주고 있는 원장님에게 이익이 돌아갈 테니 그것으로도 이미 반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지금 이 명품 실내화를 신고 글을 쓰고 있으니, 명품 문장아, 마구 쏟아져 나와라, 그래서 내게도 돈줄이 되어주지 않으련?

(5월 28일)






코로나19로 집콕 생활 하면서 '오후 세 시'의 시간이 내게 가장 자유롭고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5월부터 이 시간대에 무엇을 했는지 기록해 보기로 했다. 새롭게 바뀐 내 일상이 나의 새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저장해 놓으려고 작업하고 있는 중에 전화가 걸려와 통화하다가, 실수로 발행을 눌러버려 오늘 두 편이나 올라가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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