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까지 내가 본 게 얼마란 말이야?

by 김건숙

5.30. 토.


말괄량이 삐삐의 이웃집 친구 아니카와 토미가 하루는 서커스 구경 가자고 삐삐를 찾아왔다. 서커스가 무엇인지 모르는 삐삐에게 토미가, 말이랑 광대도 나오고 여자들이 줄타기도 하는 재밌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자기는 부자라서 서커스 같은 것은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삐삐. 토미는 서커스는 사는 게 아니라 돈을 내고 구경하는 거라고 다시 설명한다. 그 말을 들은 삐삐가 놀란다.


하느님, 맙소사!
그냥 보는데도 돈을 낸다고?
난 하루 종일 눈을 부릅뜨고 돌아다녔어.
세상에, 그럼 여태까지 내가 본 게 얼마란 말이야?



얼마나 순수하고 깜찍한 생각인가. 삐삐의 이런 천연덕스런 모습에 우리가 빠져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 말은 내게 착 달라붙어 밑줄 긋게 했다. ‘여태까지 내가 본 게 얼마란 말이야?’라는 말 때문이었다.


바로 뒷산이 떠올랐다. 그리고 거기에서 내가 만난 것들은 과연 얼마일지 그 값을 매겨보고 싶었다. 종이에 항목을 쭉 적어봤다.

겨울 숲의 고요

나무 사이의 여백

살짝 깔린 늦겨울의 눈

오솔길의 포근함

진달래

흐드러진 벚꽃

막 얼굴 내민 새순

우거진 초록 숲

아카시아

참꽃마리

별처럼 우수수 떨어져 있는 때죽나무꽃들

숲속 쉼터

새소리

이파리에 앉은 그림자

쓰려져 죽은 아카시아 기둥에서 자라고 있는 아기 아카시아

비탈길

길 위의 흙

싱그러운 공기누군가 틀고 지나가는 큰 노랫소리

‘안녕하세요?’ ‘뭘 찍으세요?’ '감사합니다‘

내 숨소리, 감탄, 미소

숲 냄새

상수리나무 아래

쓰레기들

쓰레기 줍던 아저씨

25개나 되었다. 3개월 동안 다니면서 오감으로 느낀 것들이다. 처음에는 좋은 것들만 적었는데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들도 떠올랐다. 이것들 가운데에서 높은 점수 순서대로 나열해보아야 할 텐데 쉽지 않을 것 같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기본 값 정하는 것도 어렵다. 오늘 당장 끝낼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기에 시간을 두고 머리와 가슴을 오르내리며 매겨보아야겠다.

삐삐의 말 한 마디에 그 동안 나를 행복한 시간으로 초대한 뒷산의 고마움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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