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원이다!

by 김건숙

며칠 전 만들어 놓은 목록을 펼쳐놓고, 가격을 매겨보기로 했다. 말괄량이 삐삐가, "난 하루 종일 눈을 부릅뜨고 돌아다녔어. 세상에, 그럼 여태까지 내가 본 게 얼마란 말이야?"라고 한 말을 보고, 그 동안 내가 뒷산에서 본 것들을 돈으로 환산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만큼 뒷산 오솔길은 내게 많은 것을 준 소중한 존재이다.



총 25개라서 일일이 값을 매겨 계산하기는 어려운 일이라 등급으로 나누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 값인데 첫 문부터 난관이었다. 사실 이 때문에 목록을 적어놓고 사흘을 보냈다. 과연 자연을 값으로 매길 수 있겠는가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도 해 보기로 했으니 기본값을 100만원으로 설정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징값이다. 그리고 총 5등급으로 나누어 내게 행복을 더 많이 준 것들을 1그룹으로 하고, 나머지는 순차적으로 했다. 목록 카드를 올렸다 내렸다 하기를 수 차례 하다.

1그룹(900만원) - 겨울 숲의 고요, 오솔길의 포근함, 막 얼굴 내민 새순, 쓰려져 죽은 아카시아 기둥에서 자라고 있는 아기 아카시아, 숲 냄새, 우거진 초록 숲, 쓰레기 줍던 아저씨(7) ₩6,3000,000


2그룹(600만원) - 싱그러운 공기, 나무 사이의 여백, 살짝 깔린 늦겨울의 눈, 흐드러진 벚꽃, 참꽃마리, 새소리, 상수리나무 아래, ‘안녕하세요? 뭘 찍으세요? ‘감사합니다’, ‘내 숨소리, 감탄, 미소’ (9) ₩54,000,000


3그룹(400만원) - 아카시아, 진달래, 별처럼 우수수 떨어져 있는 때죽나무꽃들, 숲속 쉼터, 이파리에 앉은 그림자, 비탈길, 길 위의 흙 (7) ₩28,000,000


4그룹(-5,500만원) - 누군가 틀고 지나가는 큰 노랫소리 (1) ₩-55,000,000


5그룹(-9000만원) - 쓰레기들 (1) ₩-90,000,000

금액은 별도의 계산 없이 감으로 매겼다. 그런데 계산 해보니 플러스로 계산되는 3그룹까지 1억 4천 5백만 원이 나왔고, 마이너스 그룹에서 1억 4천만 원이 나왔다. 처음엔 4그룹을 -5000만 원으로 해서 전체를 계산하니 500만원이 나왔다. 감으로 계산한 것치고 플러스와 마이너스 값이 아주 비슷하게 나와, 4그룹을 -5,500만원으로 수정해 0원으로 만들었다. 자연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무한대의 가치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자주 보았던 것들이 일억 사천 오백만 원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니 난 얼마나 부자인가. 그것을 다닌 날과 곱한다면 지금까지 본 것은 또 얼마인가.


사람이 버린 쓰레기나 크게 틀어놓은 노랫소리를 아주 낮은 금액으로 매겼다. 아름다운 풍경을 해치는 일이나, 다른 사람에게 큰 폐를 끼치는 일인데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이 도저히 용납이 안 된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건 말이나 인삿말은 2그룹에 넣었다. 길이 좁아 길을 비켜주었을 때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듣는 것은 참 어려웠다. 딱 한 사람 있었다. 그리고 쓰레기를 보았을 때 눈살이 찌푸려지면서, 내가 치우면 어떨까 하고 잠시 생각만 하고 모른 척 지나다니기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아저씨가 봉지를 들고 다니면서 치우는 것을 보고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 모습을 1그룹에 넣었다.

매겨 놓은 수치를 볼 때, 자연과 달리 사람의 일은 극과 극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최상위 그룹인 1그룹과 하위 그룹인 4,5그룹에만 있다. '사람'은 세상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건 어딜 가나 사라지지 않는 우리 인간들의 속성이다. 그래서 한편으론 다행이다. 추함만 있고 아름다움이 없다면, 온 천지가 상처투성이 아니겠는가. 아직 백신이 없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속속 무너지는 지금까지의 상황처럼! (6월 3일, 오후 세 시의 나를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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