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지막 자리는 어디일까

6월 14일. 일

by 김건숙

숲 속 쉼터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물도 한 모금 마시고 한 숨 돌렸다. 그러고 난 뒤 책을 꺼내 읽다가, 블로그에 달린 댓글에 답글을 달다가, 새소리를 듣다가, 바람을 쏘다가 하였다. 딱 알맞게 시원한 숲에서 울려 퍼지는 새소리와 푸른 가지들이 한차례씩 흔들며 내는 소리와 모습에, 그리고 밤꽃 향기에 한 없이 붙잡혀 있었다.

숲을 벗어나기가 싫어 마냥 앉아 있었다. 곧 장마와 더위가 몰려오면 그처럼 상쾌하고 싱그러운 숲을 만나기는 힘들 것이기에 더 앉아 있었다. 그 평화롭고 기분 좋은 숲에서 조금 전에 읽은 조장 이야기가 떠올랐다. 충격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은 육신을 새에게 내어준다는 장례 '조장'을 들은 적은 있지만 이처럼 세세한 것은 아니었다. 그 충격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문화적 간극에서 왔을 것이다.

도보여행가 김남희는 티베트 여행에서 생생하게 지켜본 조장을 에세이집에 썼다. 그것은 그때까지 본 것 가운데 가장 평화로운 장례식이었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조장이란 허허벌판에 죽은 육신을 놓아두면 새들이 날아와 파먹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도 육신의 주인이 꼭 가까운 이가 아니더라도 놀라울 일이다. 하지만 김남희가 보고 전하는 조장은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장례식은 넓은 공터에서 이루어졌는데 그 주변에 어마어마하게 큰 독수리가 ‘문상객인 양 엄숙한 자태로 앉아 있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독수리들이 시신을 기다리는 중이라는 걸 뒤늦게 안 김남희는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긴 시간과 기도와 경 읊는 시간이 지나가고 조장을 집행하는 ‘돔덴’이 커다란 칼을 꺼내 들었다 한다. 돔덴은 시신의 몸을 덮은 천을 풀어헤치고 시신의 배를 십자로 갈랐다. 칼과 도끼로 빠르게 시신을 해체한 돔덴이 부서진 뼈들을 모아 놓고 독수리들을 부르자 독수리들이 살을 파먹었다는 것이다. 육신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데에는 채 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단다. 화장하는 시간보다 좀 길다. 가족들은 울음이나 곡소리도 없이 평온한 표정으로 앉아서 그 의식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시아버지가 땅속에 파묻히는 것도 보기 어려웠던 내가, 가족의 육신이 눈앞에서 칼과 도끼로 잘리고, 독수리에게 파 먹히는 모습을 본다면 어땠을까. 끔찍하였으리라.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 조장은 그 나라의 척박한 환경과 종교의식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장례문화이고, 오랜 시간 이어져온 풍습이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나니 내 장례식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하게 되었다. 화장하자고 남편과 가볍게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계획한 것은 없다. 시가 쪽에서 납골당을 만든다는 말을 들었으니 그쪽에 안치될 수도 있다. 미리 말해놓거나 유서를 써 놓지 않는다면, 그것은 남은 가족들의 손에 달린 일이다.

나무를 좋아하니 수목장은 어떨까? 그런데 나무가 죽어버리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혼자 몸이라면 화장해서 어느 골짜기에 뿌려지든, 아니면 그냥 땅속에 묻히든 그리 문제 될 것 없다. 삶이 끝나면 내 몸과 영혼도 바람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라 여기는 무신론자라서 거창한 것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남편이 있고 딸들이 있으니 생각이 달라진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고 자녀가 힘든 시간을 만났을 때, 찾아가 작은 위안이라도 얻는다면 납골당이든, 나무 아래든 한 장소를 지키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어 언제든 찾아올 존재지만, 가볍게 이야기 나눌 수 있었던 것도 멀리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일암 뜰 앞 후바나무 아래에 법정스님이 잠들어 계신다.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가볍지 않게 생각해둘 일이다. 자신의 거처이기도 했던 작은 암자 불일암 뜰에 고이 잠들어 계신 법정 스님은, 평소 당신이 좋아한 후박나무 아래가 마지막 안식처가 되었다.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겠다.

내 마지막 자리는 어디일까? 이 생각은 숲을 내려오는 길에도 나를 계속 따라왔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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