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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안 Feb 15. 2017

'와인 미라클'
보틀쇼크(Bottle Shock)

'샤토 몬텔레나 1973'년 샤르도네



무궁무진한 영화 주제, 그 다양한 소재 중에서도 기획이 쉽지 않은 와인 이야기를 다룬 감독이 있다. 와인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영화 '와인 미라클'을 통해 프랑스와 미국 와이너리에 관해 더 다가가 볼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되어 이채롭다. '와인 미라클' 원제 '보틀 쇼크'는 와인의 탄생 과정과 더불어 병입 전후 등 운반까지의 민감성을 표현하는 어이다. 와인은 보관하는 온도뿐 아니라 진동 또한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화물로 운반된 와인보다 기내를 통해 개인 가방으로 반입된 와인이 조금 더 비싼 값으로 책정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의 원제목 '보틀 쇼크(Bottle Shock)'이다.


사실 줄거리보다는 그들의 포도밭을 내심 기대했다. 영화의 시작은 아이스 와인처럼 달콤한 음악과 함께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의 광활한 포도밭 풍광을 연이어 보여준다. 스크린 가득 넓디넓은 포도밭 향연이 펼쳐지며 포도밭의 푸르름과 석양에 물든 광경에 젖게 한다. 잔잔한 미국 영화지만 전 세계 와인 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실화 '파리의 심판'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많은 종류의 와인을 보게 될 기회라고 들떠 있었으나 등장하는 와인 종류는 많지 않다. 조금 지루했다, 빠른 전개에 익숙해  있다면 그리고 와인에 관해 관심이 전혀 없다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켜 앉아 있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개봉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관람시간 9시, 그  넓은 홀에 달랑 여덟 명뿐이었다. 세상 모든 것의 출발은 잘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승부에서 외면당할 거라는 걸 예감하고 시작하는 분야도 있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와인 미라클을 제작한 '랜덜 밀러' 감독은 큰 흥행을 기대하기보다 자신의 소신을 기획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의 정통성과 명성을 제치고, 고집스럽게 생산한 미국 와인이 선정되면서 쓰레기 매립장으로 버려질 뻔한 와인을 다시 찾는 과정은 전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서적으로만 알고 있던 와인에 대한 프랑스 인들의 자부심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알게 해 준다.


와인의 상표를 가리고 시음하는 '블라인드 테이스팅' 장면에서, 프랑스 측은 미국 와인을 프랑스 와인으로 철석같이 믿고 높은 점수를 주었다가 결과가 발표되자 경악한다. 그럴 리 없다고, 우리 프랑스 와인이 미국 와인에 질 리 없다며 대회 결과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혹자는 미국의 포도밭은 프랑스와는 달리 수확하는 철에 비가 오면 포도밭에 비닐을 씌운다는 이유로 프랑스의 정통성과 명성에 더 기대는 견해들도 있다. 선입견이란 적중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사람을 난감하게 한다.  


세상엔 우리가 모르는 외로운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주변 사람들은 그들을 미쳤다고 한다. 그럼에도 외롭고 험난한 길을 그들은 간다. 운영에 허덕이는 포도밭의 부채와 노동의 부담을 주인공 '짐'은 어떻게든 꾸려가려 한다. 와인이 변색되었음을 알게 된 짐이 대단히 좌절한 모습으로, 숙성을 마친 와인을 바닥에 뿌리면서 분노할 때 그의 모든 것이 끝난 줄로 알았다. 그러나 영화의 반전은 어느 곳에나 있다. 원칙을 지켜 고집스럽고 정직하게 와인을 만들면 빛깔이 변색되고 며칠 후 원래의 색이 다시 돌아와 본래의 훌륭한 맛을 낸다는 놀라운 사실을 기쁘게 알려 준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변색된 와인이 어떻게 원색을 되찾는단 말인가.


'샤토 몬텔레나 1973'년 산 샤르도네, 화이트 와인은 미국 독립 이백 주년을 기념해 와인의 상표를 가리고 시음하는 '블라인드 테이스팅' 대회에서 최고의 와인으로 선정된다. 짐은 시종일관 경계를 놓지 않는다. 파산 직전의 포도밭을 지키려 추진력을 보이는 아들 보에게도 항상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아무리 뛰어난 와인을 만들어내도 그들은 우리에게 그 자리를 내주지 않을 거다." 오랜 명성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독점성을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주인공 역 '짐'에 캐스팅된 '빌 폴먼'의 굳게 다문 얼굴 표정이 나파 밸리의 고집스러운 포도밭 작업 과정과 잘 맞아떨어진다. 여기에 와인업자 스티븐 역의 '알란 릭맨'의 와인 선정을 두고 늘 고심하는 표정 연기가 한몫한다. 대회에 출품할 와인을 공항에 들고 간 스티븐. 항공기내 반출은 오로지 한 병만이 허용된다는 뜻하지 않은 난관에 부딪혔을 때, 공항에 줄 서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예스! 예스! 나도 한 병, 나도 동참하겠소, 이렇게 외친다. 만약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나 또한 동참했을 것이다. 짐 못지않은 스티븐, 그의 열정에 어느 누군들 동참해 주지 않겠는가. 대회가 끝나고 보도가 나가자 '샤토 몬텔레나 1973' 빈티지는 와인 가게와 레스토랑에서 동이 난다. 나파 밸리의 새로운 출발이었다. 그들의 힘겨운 인생 역경에 축배를 든다.



개봉 : 2008. 11. 13

감독 : 랜덜 밀러


2008. 11. 16. 유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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