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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nui Jul 26. 2021

오한기가 되었다고 가정IF하기

《가정법》을 읽고 끄적인 서평 아닌 서평

오한기가 되었다고 가정IF하기

《가정법》을 읽고 끄적인 서평 아닌 서평

 




데이브 그롤과 크리스 코넬.



BGM

음악은 푸파이터스의 ‘The Pretender’가 좋겠다. 잠깐, 조금만 더 생각해 봐. 부글거리고 그르렁대는 데이브 그롤의 보컬과 마구 내달리는 사운드는 《가정법》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이 아니야. 게다가 데이브 그롤은 지져스 크라이스트처럼 장발에 팔 근육이 빵빵한 코카시안 알파 메일­이라고. 씨발,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인데? 넌 예전부터 항상 선곡 센스가 없었어. 데이브 그롤: 미국 마초 / 오한기: 한국인을 통칭하는 이 소설의 표현대로라면 “뚱한 표정의 퉁퉁한 황인종”. 이전 소설들에서 묘사된 오한기는 멀쩡한 인간조차 되지 못하는 인간 이외의 존재지. 에일리언이란 말이야. 알파 메일과 성별 불명의 에일리언. LA와 서울의 직선거리만큼이나 거리가 멀지. 그럼 ‘Be Yourself’는 어때? 누구 노래지? 물론 오디오슬레이브지. 크리스 코넬은 데이브 그롤 같은 장발에 데이브 그롤만큼 거칠긴 하지만 데이브 그롤보다 훨씬 무기력하고 가냘프고 우중충하고 멜랑꼴리하다고. 이제야 갈피를 잡았군. 그래 오한기 소설에 대한 글엔 오한기스러운 비지엠을 깔아야지. 근데 노래 제목이 마음에 안 들어. 왜 자꾸 “너 자신이 되라”는 거야? 난 뭐가 될 수 있지? 뭐가 되어야 하는데? 너는 아니? 어딜 가든 자꾸 “너 자신이 되라”고 한단 말이지. 씨발 지가 뭔 소크라테스 아들내미라도 돼? 나랑 안면도 없는 새끼들이 이것저것 팔아먹으려고 하는 소리는 지겨워. 〈서점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문구 탑 5〉 같은 앙케트를 실시하면 무조건 3위 안엔 들걸. 뭐, 그래도 가사는 꼭 그렇지만도 않아. 게다가 크리스 코넬은 “너 자신이 되라”는 코러스를 구슬프게 부른다고. 얼핏 들으면 서편제 같다니까. 가만. 임권택이랑 크리스 코넬이 아는 사이던가? 뭐. 아무렴 어때. 벌써 쓸데없는 얘기로 지면을 잔뜩 잡아먹었군. 어차피 요즘 사람들은 남이 틀어주는 노래가 아니라 자기가 듣고 싶은 노래만 줄창 듣는데 말이지. (유튜브가 불러 주는 노래가 아니고?)



자기부정

내가 되려면 먼저 나를 지워야 된다. 지운 다음엔 백지 같은 나에다가 다른 것들을 비로소 써넣을 수 있다. 부정은 알지 못해도 할 수 있다. 오히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부정할 수 있다. 내가 누군지 몰라도 나는 나를 부정할 수 있다. 근데 어떻게? (손목을 그어 수면제를 한 움큼 쥐어 삼켜 물을 마셔 숨이 막힐 때까지 멈추지 마 아니면 아파트 옥상 위로 올라가서 떨어지든가) 극단적이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우리는 사람이란 말이야. 그것도 픽션을 읽는 사람이란 말이야. 이야기를 소비하는 사람이란 말이야. 사람은 상상을 할 수 있단 말이야. 상상을 하면 연기도 할 수 있단 말이야. 믿을 수 없는 걸 믿을 수도 있고 The Pretender가 될 수 있단 말이야. 역시. 이 노래를 틀었어야 했어.



자기암시

암시가 뭐지?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이지. 자기암시가 없이는 우리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단 말씀이지. 오한기를 봐봐. 오한기는 《의인법》이라는 소설집을 썼지. 오한기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고전적 픽션을 욕보였지. 하지만 더없이 멋진 방식으로 되살려냈어. 이건 자기암시의 긍정적 효과야. 현실과 환상의 괴리. 그건 뭘로든 메꿔야 하거든. 서부의 사나이를 흉내 내거나 하얀 사과가 되기로 하거나.


자기암시를 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없어?



#주의 사항

1: 자각을 해야 돼. 그게 무슨 소리야? 니가 지금 뭔지, 뭐가 되고 싶은 건지, 왜 그게 되고 싶은 건지, 그게 될 만한 가치가 있긴 한 건지, 그게 아니면 안 되는지, 그게 안 돼도 되는데 왜 그게 되어야 하는지,

2: 경우에 따라 바꿀 수도 있어야 돼. 오한기를 봐봐. 오한기는 소나기도 되고 형광등 불빛도 되고 블루홀도 되고 병든 소도 되고 나무도 되고 거울도 되고… 하여튼 인생을 살려면 유연함이 있어야 돼.

3: 경우에 따라 줏대도 있어야 돼. 이것저것 주워 먹다가는 정말로 배탈 난다고. 왠지 앞의 말이랑 모순되는 것 같군. 기분 탓인가? 아니. 인생이 원래 모순 덩어리라는 거 몰랐어? 이제 오디오슬레이브의 노래를 다시 들어봐. 가사도 켜고.


Someone swears his true love until the end of time, Another runs away


여기서 썸원이랑 어나더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마. 사람은 원래 모순덩어리야.



루시드 드림

내가 꿈인가 나비가 꿈인가. 인생이 정말로 하룻밤 꿈이라면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건 럭키일까 언럭키일까? 인간이 된다는 건 뭐지? 작가가 된다는 건? 작가가 되면서 동시에 인간이 되는 게 가능한가? 예술을 하면서 멀쩡한 사람이 될 수 있어? 글을 쓰면서?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이미 불치병에 걸렸단 증거 아니야? 예술가는 운이 좀 좋은 정신질환자 아니야? (운이 나쁜 건가?) 범죄자라고 해도 얼추 맞아떨어지겠군. 왜, 금정연도 오한기를 범죄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라고 했잖아.


“사람이라는 존재는 완벽할 수 없으니까 완벽하지 않은 나는 역설적으로 완벽한 사람이다” _《가정법》 中


난 예전부터 나비가 싫었어. 대신 벌이 되고 싶었지. 벌은 붕붕거리면서 날아다니는 게 귀엽거든. 줄무늬도 있고. 아니면 곰도 좋아. 곰은 벌집을 뜯어먹잖아. 그래도 곰도 좋고 벌도 좋아. 꿀만 먹을 수 있다면 뭐가 되든 상관없어. 비겁해. 비겁한 방식이야. 벌집이 안락할 땐 벌이 되고 부서져 나갈 땐 곰이 된다고? 이봐, 내가 뭐랬어. 유연함이 필요하다고 했잖아. 그건 유연함이 아니라 비겁함이야. 오한기는 이럴 때 어떻게 하지? 글쎄. 벌집이 뜯어먹힐 때 벌이 되고 사냥꾼이 쫓아올 때 곰이 되려고 하지 않을까. 작가는 그런 마조히스트나 하는 직업이잖아. (작가: 인간을 경멸하면서 경멸하는 대상이 되려고 하는 사람 아닌 사람. 人간도 못 되는 인間. 대다수 멀쩡한 사람들의 눈에는 경멸의 대상. 결정 장애가 있는 판사.)



되기(being)

다른 존재라고 가정하기. 이건 극기야 도피야?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거, 글을 쓴다는 거, 연기를 한다는 거, 믿는 척한다는 거, 아무렇지 않은 체한다는 거. 그러니까 ‘가정IF’한다는 거. 근데, 도망 좀 치면 안 돼? 글쎄. 그건 니가 내릴 결정이지. 나라면 가끔씩은 도망쳐서 나쁠 건 없다고 말하겠어. 오한기는? 오한기는 뭐래? 그만 좀 캐물어. 마지막 질문이야. 오한기는 이렇게 쓰더군.


“병든 소, 나무와 동떨어진 채 글쓰기에만 몰입하다 보니, 완벽한 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어떤 존재도 아닌, 온전한 나. 생소한 기분이었다. 돌이켜보니 나를 주제 삼아 글을 쓴 적은 없는 것 같다. 죄다 다른 존재에 대해서만 썼을 뿐. 비로소 나는 내가 된 채 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쓰기 시작했다. 이 순간, 바로 지금, 오늘 나에 대해.”


그러니까, 글을 쓰란 말이지.





근데 이거 서평 맞아? 넌 너무 논리적인 게 탈이야. 따지기보단 그냥 받아들여. 서평이 아닌 것도 서평이라고 믿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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