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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드모아젤 Jan 21. 2019

밀당 안 하면 안 될까?

우리, 다 사랑하기도 모자란 시간이잖아.

오랜만에 만난 친한 동생과의 자리.


최근에 결혼을 하고 꽤 안정적인 테두리 안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늘 건강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그녀와 우리 샵 근처의 잘한다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일을 마치고 뒤늦게 도착한 나를 보며 돌고래 소리로 반겨준 그녀와 레드 와인 한잔을 시작으로 못다 한 근황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우린 결혼과 사랑, 연애 이야기로 주제가 이어졌고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뒤 그녀가 말했다.


'언니, Y 가 연말 인사차 오랜만에 연락이 왔더라. 그 이후론 소식도 없더니'
'아, 그래? 그래.. 바빠도 연말 인사는 해야지. 한해의 끝인데'


라고 태연하게 대답했지만 결국 '잘 지내고 있데?'라는 궁금했던 질문은 입 밖으로 꺼내질 못했다.

그러자 그녀가 던지지 않은 질문을 눈치로 읽었다는 듯,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응~ 그러니까. 늘 그렇듯 뜬금없이 연락 와서 안부를 묻더라고, 신혼 생활은 달달하냐 어쩌냐 하면서 말이야.
그리곤.. 언니 이야기를 꺼내더라. 나도 놀랐어. 걔가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낼 줄은. 나도 모른 척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렇다.

Y. 그녀와 미국에서 함께 학창 시절을 보낸 동창이자 내게 몇 가지 트라우마를 남기고 떠난 사람.

소식을 들으니 머릿속을 하얗게 했던 이별의 마지막 신이 떠올라 마시던 와인이 목에 텁텁하게 걸릴 뻔했지만 뭐 이젠 그 이름, 아무렇지 않은 척 잔을 내려놓았다.



'언니와의 일은 안타깝게 되었다고 하면서 타이밍을 운운하긴 하던데, 하긴 자기도 나한테 연락하기 민망했을 거야. 그렇게 떠났으니 말이야.'


타이밍, 그것 때문이었을까 과연.

우린 사랑에 대한 경험치와 생각, 그리고 노력의 방식이 달랐을 뿐.




그녀가 주최한 어느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Y는 그녀의 오랜 친구라는 것, 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점, 조심스럽게 진중하게 다가오는 점이 나를 끌리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 웃었다. 그는.


파리에 살면서 (나와 잘 맞는) 한국인을 만나는 게 쉽지 않았을 무렵 자연스럽게 프랑스 남자들을 만날 기회가 더 많아졌고, 그 패턴에 지쳐 감성 따위를 운운하며 같은 '문화권'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때에 절묘하게 내 앞에 등장한 함정 같았던 남자.


장거리 썸이 시작되었다.

장거리 연애는 해봤어도, 썸이라니.


썸은 어떻게 타는 건지. 기억도 안 나는데.

이거 어쩌나. 쉽지 않겠다 싶었지만 그의 썸은 연애를 시작한 연인을 대하듯 적극적이었고

확신에 차 있는 듯 보였다. 마치 방해물은 그저 '거리' 뿐이라는 것처럼.


뭐  한국-프랑스처럼 열두 시간 비행기를 타야 하는 거리도 아니었고, 내가 '아직 안 자고 뭐해?' 하고 싶은 밤의 감성일 때 그는 출근 준비에 바빠 나의 밤 따윈 궁금하지 않은 아침 감성도 아닐 테고.

우린 같은 '타임 존(Time zone)'에 있는 거리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내 방식대로' 노력했다.

밀당 없이.


나란히 앉은 커플

20대 초반엔 나도 밀당이라는 걸 즐길 줄 아는, 나름의 그 연애하기 직전 설렘 설렘 하고 아슬아슬한 선을 즐겼던 것 같다.


좋아하면 스스럼없이 먼저 고백하기도 했고,

어쩔 땐 애타게도 해봤다가,

좋아도 조금 덜 좋아하는 척, 보고 싶어도 덜 보고 싶은 척.

밀당의 정의라는 게 정확한 수치로 표현될 수 없는 거겠지만 나름 연애 고수들이 전수해준다는 그런 식의 밀당을, 썸을 (그 당시엔 그런 단어도 없었지 아마) 친구들에게 침 튀기며 상담도 해주던 때가 있었노라.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러네.

썸이, 밀당이 연애의 한 부분이라고 믿었던 그런 때가 있었구나.


연애의 경험치가 올라갈수록 (혹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밀당의 횟수는 줄어들었다.

아니, 밀당은 내가 추구하는 연애 방식과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는 표현이 맞겠다.


대신, 나의 연애는 확신이 서야 그 레이스가 시작이 되었고 '출발' 하는 신호가 떨어지면 긴 레이스를 위한 준비를 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동시에 호감을 느끼는 그 고귀한 감정 앞에서 누가 덜 좋아하든, 더 좋아하든 그 타이밍이 동시에 왔다는 게 중요한 거지.

좋아하는 형태와 크기는 늘 상대방과 내가 같을 수 없는 건 어느 연애나 마찬가지인걸, 밀당이 아닌 노력으로 우리가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우리의 다름을 인정하고 맞추어갈 수 있는 배려를 가지려 했다.

때론 서로의 일상을 존중하며 그가 바쁠 때는 나는 한 발 물러서 기다렸다.


지나고 보니, 확신을 가지고 다가왔던 그는 그 속에서 나름의 계산과 밀당을 했던 게 아녔을까 싶다.


남자들이 다가올 땐 확신을 가장한 호기심이 먼저고, 그다음 썸에서 연애로 이어질지에 대한 문제는 여자의 반응에 따라 정복하고 싶은 욕구를 더 키우냐 마느냐에서 좌우된다는 이야기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걸.


어쩌면 나보다 한참 어린 그가 하는 연애 방식은 내 방식과 달랐고, 돌아보면 나도 그 나이 때에는 나름의 밀당에서 느끼는 설렘으로 썸을 즐기기도 했을 테니까 이해한다.

아니 이해한다고 머리로는 쿨하게 이별을 받아 들여놓고 시간이 지나니까 우스갯소리로 나이도 어린 녀석이 (뭐 이런 아메리칸 스타일로) 누나를 갖고 놀았냐며 괘씸죄를 적용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냥 우리 인연은 거기까지였던 거다. 심플하게.


같이 발맞추어 걷는 일, 평범하지만 사랑스러운 일
근데 썸으로 시작 안하는 연애가 어디있어.


나도 안다.

연애를 시작함에 있어, 이 사람이 정말 나랑 잘 맞을지, 내 마음만큼 그 사람도 두근 할지, 누군가를 알아가는 어느 정도의 ‘썸’ 이라는 보호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더군다나 30대의 연애에 ‘당신, 나랑 연애합시다. 썸 없이’ 라고 달려들 남자가 누가 있단 말인가.


적어도, 사랑을 주는 것만큼 받는 것도 고귀한 줄 아는, 밀당에 쓸 시간 조차 건강한 사랑으로 채우길 원하는 사람들의 연애였으면 하는거다.



내가 이 분과 피날레를 장식하며 파리를 떠나면 못 봐서 너무 아쉬울 거 같다고, 내심 설렘반 아쉬움 반으로 나보다 김칫국을 먹던 친한 동생들은 ‘아, 썸과 밀당을 통해야 하는 연애는 나는 이제 질렸다' 하고 두 손 두 발 다 들은 내 후일담을  듣곤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넨다.


'걔는 자기 복을 찼지 뭐, (원래 팔은 안으로 굽는다)아직 자기가 뭘 원하는지, 스스로도 잘 모른다고 했잖아. 잘 된 거야 어쩌면'


그리고 덧 붙인다.

‘ 언니는 딱 언니 같은 사람 만나야 해'


그래, 그랬으면 좋겠다.

다음 연애는, 다음 사람은.


나와 닮은 사람이면 참 좋겠다.

딱 더도 말고 덜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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