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드모아젤 Oct 28. 2019

파리, 그 애증의 도시

마치 우린 오래된 연인 같아.

파리에 도착하고 1년 안에 알아버렸다.

파리는 내 마음에 첫사랑 같은 설렘으로 다가와 오래된 연인처럼 애증의 관계로 남을 거라고.



싸데뻥 (ça dépend)의 나라


프랑스, 봉쥬르 다음으로 처음 알게 된, 아니 알아야 할 단어라고 할 만큼 프랑스는 케바케가 많은 나라.

유학생이면 제일 먼저 하게 되는 각종 행정처리를 비롯하여 심지어 일반적인 업무나 레스토랑에서도 케바케가 적용되기도 한다. 그때 사용되는 불어가 싸데뻥(ça dépend)이다.


그러니 싫지만 '예외'라는 게 잠정적으로 인정된다.

'평균적으로 이 정도 노력과 시간을 들이면 된다'라고 알고 있는 행정처리는 더욱 심플하게 빠르게 진행되거나 더욱 까다롭게 긴 시간이 걸리기도 하며 담당자 말을 듣고 처리한 일을 그 동료가 맡게 되면서 상황이 바뀌기도 한다.

거기다 프랑스인들의 못 말리는 바캉스 정신까지 얹어지면 '담당자는 지금 휴가 중입니다'로 일이 한참이 밀려 진행된다. 기대에 없던 인내심이 길러지는 순간을 행정처리부터 딱 맞딱들인다.


꼼꼼해서, 매뉴얼대로 해야 해서 일 처리가 늦어지기로는 일본도 만만치 않았다. 그 패턴에 꽤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유럽은 상상 이외 었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임을 입증하듯 난 어느새 프랑스의 싸데 뻥 문화에 익숙해졌다. 그 덕에 한국으로 바캉스를 갈 때면 내 나라지만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에 놀라곤 한다.


솔직한 게 뭐 어때서


이토록 감정에 충실하고 정직한 민족들을 본 적이 없었다. 프랑스로 넘어오기 전까지.

혁명의 후예들 아니랄까 봐, 프랑스 인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고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 거침이 없다.

프랑스 인들은 유년시절부터 한 인격으로 존중받으며 어떤 가치관으로 성장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교육을 받아온다.  

길을 가다가도 불합리한 상황을 마주하면 거침없이 참견하여 의견을 낸다. 대화 상대의 나이와 성별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든 철학과 예술, 문화 정치를 시작으로 어떠한 주제에 대한 본인의 의견과 감정을 전달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것이 내 존재를 각인시키는 방법이고 가장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임을 오랜 역사로부터 물려받았을 것이다. 이 감정선 뚜렷하고 남을 의식하지 않는 표현 방식은 눈치 문화에서 자라온 내게 또렷한 충격과 동시에 부러움을 주었다.


세상엔 다양한 가치관의 사람들이 있고 틀린 것은 없고 '다른 것'은 존재하듯 우린 다양성에서 함께 공존하며 존재할진대,  내가 자라온 문화는 개개인의 개성보다 전체의 조화를 중시하기도 하며 정답만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곳은 달랐다.

화를 내고 있다고 오해할 만큼 침 튀기게 의견을 토하던 동료는 그저 본인의 생각을 내게 논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했고, 내가 볼 때 떼를 쓴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사람들도 당당하게 본인의 의견에, 그리고 감정에 충실했다.


사소한 토론에서 시작하여 한두 명씩 모여든 술자리는 어느새 와인 한두 병을 비울만큼 큰 판이 되어 떠들다 결론이 나지 않아도 쿨하게 끝낸다. 그게 그들이 사는 방식이다.

생미셀에 위치한 셰익스피어 서점 앞 @2014


사계절, 사랑을 하고 싶게 만드는 도시


파리지앵에게 파리의 겨울은 지독하리만큼 우울한 것으로 유명하다. 서머타임이 해제되기 몇 주 전부터 하늘은 회색깔로 드리운다. 비가 추적추적 오거나, 비라도 오지 않으면 빛이 새어 나올 틈을 주지 않을 만큼 구름이 해를 다 가리며 그루미 한 계절 색을 시작한다.

그 색은 장작 반년 가량 지속되고, 간혹 쨍하게 해라도 뜨는 날이면 사람들은 앞 다퉈 테라스로, 공원으로, 그렇게 햇볕 속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우스갯소리로 이러다 해바라기 되겠다고 할 정도니까 해가 있음이 얼마나 축복할 일인 건지 몇 년간의 파리의 겨울에서 새삼 느낀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런 파리의 겨울도 낭만적인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다.

달달한 핫쵸코가, 뜨거운 뱅쇼를 부르는 계절, 회색빛 만연하지만 센강에 비쳐 반짝이는 노란 불빛의 야경은 영화 '미드나잇 파리'의 주인공 부럽지 않다.


해가 뜨면 뜨는 대로 모습을 감추면 감추는 대로 파리는 그 자체로 사랑을 부르는 옥시토신과 도파민을 뿜어 내는 것만 같다. 계절에 관계없이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은 카페에, 공원에 그렇게 거리 곳곳에 넘쳐난다. 사랑을 표현하는 일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인 것 마냥 이 도시는 사랑의 기운이 끊이질 않는다.


파리 퐁네프 다리와 몽마르트르 사랑의 벽에는 그들의 서약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새겨지고 사랑한다는 '쥬뗌므'라는 단어는 불어를 모르는 우리들도 기억해 마지않는다. 평생 사랑을 하며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는 게 당연한 프랑스인들에게 있어 사랑의 표현은 자연스러운 일과의 하나이며 '내'가 행복해야 내 가족도 행복하다는 소신 속에 시공간을 불문하고 사랑을 주고받는 것에 거침이 없다.

그렇게 파리는 그들이 모여 만든 낭만의 도시임을, 긴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이 가을에도 뚜렷이 느낄 수 있다.


이 계절, 당신은 (파리와 혹은 그 누군가와) 사랑하고 있나요?


웨딩 촬영을 하고 싶은 파리  @2014


5년이라는 시간을 파리와 마주하며 알게 된 진짜 모습을 이 한 장의 종이에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맑은 날이 지속되는 반년 간의 파리는 무척 아름다워 그 속에 사는 우리는 빛이 나는 것만 같다.

그러나 다른 반년의 회색빛 속에 살고 있노라면 오래된 연인과의 권태기에서 이 끈질긴 인연의 끈을 미처 놓지 못하고 애쓰는 모습 같다. 우리는 권태기가 오면 처음 내가 상대와 사랑에 빠졌던 때를 떠올리기도 하고, 사랑받았던 때를 떠 올려 보기도 한다. 


그렇게 파리는 내게, 그런 존재가 되었다.

사랑하지만 너무 사랑하기에 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보고 싶지 않았다가 금세 그리워지는 이 애증의 관계를 난 어쩌면 지독하게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파리, 내 사랑 @여행자였던 그 시절, 2014















이전 10화 나는, 파리의 플로리스트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