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드모아젤 Feb 26. 2019

서른 하나, 유학을 시작하다.

프랑스 플로리스트 전문학교에 입학하다.

파리에 온 지 반년을 향해 간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인턴을 끝내고 여름 시즌에 맞춰 여행을 한 뒤, 다시 일본으로 귀국하는 일정이다.


물론 일본의 프랑스 대사관에서 받아온 1년짜리 비자가 있었지만 일본에 두고 온 살림살이며, 일본의 남은 비자 처리 관련해서 한 번은 일본에 입국해야 했기에 그전에 큰 결정을 해야 한다.




파리에서 인턴을 하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전문학교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정보들 중 유일하게 프랑스 꽃 유학, 일반 아카데미 수료가 아닌 전문학교에서 수학할 수 있는 정보는 바늘구멍이었다.


어머니 세대들의 일본, 미국, 독일 스타일의 꽃꽂이, 부케는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한국에서 프렌치 스타일이 유행이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파리 최대의 꽃시장. 헝지스 (Rungis) @2015

앞서 말했듯 옆 나라 일본만 해도 10여 년 전부터 꽃 업계에 프렌치 붐이 일어났다.

많은 프랑스 플로리스트들이 일본에 알려지고, 그들을 모셔오기에 바빴던 많은 일본인 플로리스트들이 자연스레 파리로 몰려들었다.


일본 꽃 잡지사들은 앞 다퉈 파리의 플로리스트 특집을 연재했고, 많은 꽃 관련 책이 발행되었다.

(실제 일본 서점에서는 파리뿐 아니라, 전 세계 꽃 관련 서적들을 우리나라보다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나 또한 다양한 정보들을 일본인 지인들을 통해서 얻었으니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습생 제도, 그게 뭐야?


프랑스는 손으로 하는 직업들 중심으로 (플로리스트, 엔지니어, 제빵, 헤어디자이너 등등) 각종 서비스 업계는 물론이고 비즈니스 스쿨까지 '수습생'이라는 제도를 지원한다.


정해진 기간 동안 (보통 1년에서 2년) 한 달에 일주일 혹은 이주일 정도 학교에서 이론을 배우고 기업에서 실기를 익히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기업에서는 나라에서 정해준 월급을 지급한다.


파리의 유일한 플로리스트 학교도 그 제도를 수용하고 있었다.

이론과 실기를 한 번에 시켜주는데 월급도 준다니!

다만 2년짜리 코스라는 게 조금 걸렸다.


2년이면.. 졸업 후 서른셋.

일본으로 돌아가는 시기를 늦추거나, 포기해야 한다.

100세 시대에 고작 2년 정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한들 큰 손해는 아닐 것 같다.

한발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큰 걸음으로 전진했다고 느껴질 순간이 분명 온다.


어떤 게 정답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많은 고민 끝에 파리에 조금 더 남기로 했다.

적어도 2년 더 말이다.


헝지스 꽃 시장에서의 야간 파티 @2015


그러나 공부도 시켜주고 월급도 주는 만큼 학교의 입학 조건은 까다로웠다.


1. 회사를 직접 내 힘으로 찾아야 하는 것.

2. 만 26세 이하만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것.

(마크롱 대통령이 당선된 후, 만 30세 이하로 법이 바뀌었지만 지역별로 또 나이 제한이 상이하다)


2번에서 좌절했지만, 만 30세 이상도 가능한 계약직 수습생 (Contrat Pro)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고, 그 계약을 받아 줄 샵을 찾기 시작했다.




인턴을 하고 있는 곳 사장님께도 내 계획을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사장님과 그의 파트너 일본인 마담은 열정적으로 꿈을 쫓아가는 나를 응원해주시기로 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샵을 찾았다는 기쁨과 함께 모든 게 순탄하게 진행이 되는 줄 알았다.


몇 개월 간의 인턴이 끝나고, 어학 공부를 하면서 원서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게 짜인 각본처럼 제 자리에서 잘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던 시점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사장님과 사모님, 그리고 담당 회계사를 만나 미팅을 진행하던 날, 사장님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리셨다.


계약취소.


만 26세 이상이 (그 당시의 법 기준 나이) 이용할 수 있는 제도인 'Contrat Pro' 계약서는 만 26세 이하의 학생보다 발생하는 월급과 그에 준하는 세금이 많이 든다는 이유였다.

거의 2배 이상의 지출이 든다니, 가게 입장에서는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럴 거면 학교에 가는 시간에 샵에 없는 나보다, 늘 상주할 수 있는 직원 하나를 뽑는 게 낫다는 계산인 거다.


꽃으로 봉사를 하는 단체가 아닌 이상 우리는 수지타산을 따져야 하니까.


헝지스 꽃 시장 마련되어 있는 '에꼴드 파리 플로리스트 학교' 부스 @2015


곧 바캉스가 시작되기에 파리의 다른 샵을 찾을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돌아올 대답은 뻔했기에, 계획을 바꾸었다.


두 번째 카드.

프랑스에 오기 전에 염두에 두었던 플로리스트 전문학교 '피베르디 (Piverdiere)'로의 입학.

학비가 들지만 2년짜리 과정을 단기간으로 1년 안에 끝낼 수 있고(실습과 병행하는 시간을 없애므로) 짧은 인턴을 두어 번 정도 해야 하니 실습에서 충당하지 못하는 경험들을 나름 채워 넣을 수 있다.


그러나, 지방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그것도 파리를 떠나 작은 마을로.


나름 일본과 한국에 분교를 둔 꽃 전문학교로 외국인들도 많이 배출 해 낸 학교였지만 '위치'가 마음에 걸렸다.

또 이사라니.  


처음부터 파리를 오지 않았다면 우선순위가 되었을 학교, 그렇게 피베르디가 위치한 도시 앙제(Angers)로 이사를 하기로 한다.

바캉스 시작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서둘러 입학 처리를 하고, 동시에 집을 찾으며 짧지만 정들었던 파리와 잠시 안녕할 준비를 시작한다.


크리스마스 마켓 @프랑스 앙제. Angers 2015



그렇게 파리에 여행을 온 2014년 10월을 기점으로 반년 만에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파리의 유학생이 되었고, 인턴을 시작하면서 더 큰 꿈을 고민하며 진짜 유학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기에 두렵고 설레던 시간들을 겪으며 그렇게 앙제로 이사를 했다.


사서 하는 고생


그리고 그 후 약 6개월 동안 스파르타식의 수업을 감행했다.

프랑스 플로리스트라면 누구나 기본으로 갖춰야 할 CAP(Certificat d'aptitude professionnelle) 국가시험을 위한 준비는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어쩌면 프랑스인이었다면 조금 더 수월했을 과정이었지만, 그중에서도 낙오자는 발생했다.

그리고 몇 안 되는 한국 유학생들 사이에서도 디플롬을 포기하거나, 디플롬은 가져가되 국가시험은 포기하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생겨났고, 우리의 이 고생들은 아름답게만 포장될 수 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제라는 작은 마을은 하나의 쉼표가 되어 주었다.


프랑스 플로리스트 수업은 원예학을 비롯 화훼의 기본부터 배운다.

일단 파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노숙자, 소매치기가 없었다.

그리고 마을이 작아 우리는 늘 걸어 다니거나 버스를 타고 다니며 아늑한 마을 곳곳을 우리의 발로 누비고 다녔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마을은 늘 고요하고 평화로웠으며 사람들은 더 느린 리듬으로 생활했고 얼굴에는 조금 더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은 무엇보다 친절했다.


외국인이 많이 없는 곳이라, 더 우리를 잘 도와주었다.

그리고 파리에서 제일 힘들었던 기다림과 오류의 연속이던 행정처리가 이곳에서는 걱정 없이 진행되었다.


피베르디에서 배웠던 플로리스트 기본들 @앙제 Angers. 2015


지금도 그곳을 생각하면 내 마음이 고요해 질만큼 내 인생의 평화로운 순간들이 가득했다.


북적거리던 파리가 그리워지기 시작한 건 공부가 끝나갈 때 즈음, 파리에서의 다음 공부를 계획하면서였다.

내가 배웠던 CAP코스의 다음 과정을 밟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지만, 그때 계약을 따지 못했던 아쉬움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다. 다시 한번 다음 코스를 향해 부딪혀 보고 싶었다.


그다음 단계인 BP(Brevet professionnel) 코스는 앙제의 학교에서도 가능했지만, 이곳에서의 경험은 6개월로 충분했다. 함께 공부했던 프랑스 친구들도 유학생도, 스파르타식 공부에 질렸던 지라 다음 코스를 밟으려는 친구들이 많이 없었다.


어디서 내게 이런 긍정 에너지가 나오는지 몰랐지만 이대로 만족하기에는 아쉬운 것들이 많았다.


디플롬을 받고, 국가 자격증을 따서 한국으로 귀국해 경험을 쌓고 자그마한 나만의 플라워 샵을 꾸려 행복을 찾아가도 될 노릇이었는데,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한 거다.


그러니까, 그때 하지 못했던 계약.

잠을 줄여가며 수험생처럼 노력했던 덕에 함께 졸업했던 한국인 유학생 중 유일하게 CAP 코스 디플롬과 국가 자격증을 동시에 손에 넣었다.


정보도 경험도, 자격증도 없던 그때와는 다른  자신감에 왠지 파리에서 BP 코스를 위한 계약에 도전해보고 싶어 졌다. 설사 계약을 못한다 하더라도 괜찮다.


아쉽지 않을 선까지 최선을 다하면 된다.

훗날 최선을 다 하지 못하고 타협했던 순간들이 가슴에 남아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그렇게 나는 학기 중의 두 번의 인턴을 굳이 파리에서 하며 다시 '파리 플로리스트 학교 입학'을 위한 이력서를 돌리기 시작한다.






이전 07화 파리에서 꽃 하는 사람은 처음 봐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