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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녹 May 22. 2023

러시아 서민의 정서, 보드카 (feat. водка)

모스크바 인턴의 추억 2

러시아 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불곰국, 푸틴, 효돌, 시베리아, 스킨헤드..?


많은 것이 있지만 무엇보다 빠질 수 없는 것은 바로 보드카다.


사실 보드카는 러시아가 기원이 아니라고 한다.(팩트체크는 해보지 않음)

북유럽 일대 국가(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와 중앙아시아(~스탄 계열), 그리고 동유럽 국가들이 이 모두 보드카를 즐겨 마시는데, 러시아도 그중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러시아 사람들의 보드카에 대한 사랑은 누구보다도 진심이다.

진심 정도가 아니라 전세계 1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보드카 하면 우리는 러시아를 먼저 떠올리는 것 같다.


러시아 말로 물은 Voda(보-다)이다. 왠지 Vodka와 비슷하지 않은가.

이 어원으로 인해 보드카라는 말이 생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물처럼 귀한 어떤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여튼 이들의 보드카 사랑은 엄청나다.

마치 우리의 소주에 대한 진심과 같다.

이들은 일단 매 끼니 보드카가 빠지면 섭하다.

우리가 국밥에 쏘주 한잔 때리는 것을 국룰로 삼듯이

러시아 인들은 무언가 식사를 하며 보드카 한잔 때리는 것을 국룰로 여긴다.

심지어 점심에도.. 수차례 경험했다.


이노무 보드카는 무색무취를 특징으로 한다.

즉 투명하며 냄새가 나지 않는다.

소주는 소주 특유의 향이라도 있지 않은가.

보드카는 냄새만 맡으면 거의 아무 향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에선 주로 앱솔루트 피치 같은 것을 마셔서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들은 이 보드카를 스트레이트로 마신다.

only 스트레이트다.

우리처럼 섞어마시고, 칵테일 만들어 마시고, 물에 타 마시고, 이런거 없다.


그 쓴 술을 어떻게 스트레이트로 마시냐고?

러시아에서 보드카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나온다.

러시아 식당에서 보드카를 주문하면, 그야말로 병째 깡깡 얼어있는 보드카 한 병이 수건에 둘러싸여 나온다.

아마도 냉동실 같은 곳에 보드카를 보관해두고 주문이 들어오면 나오는 방식인 것 같다.

재밌는 점은 그렇게 깡깡 얼어있는 보드카 병 안에 들은 보드카는

전혀 얼어있지 않아 극도의 차가운 상태로 마실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보드카의 쓴 맛, 알콜 섞인 맛을 크게 느끼지 않고 오로지 시원함과 청량감만으로 보드카를 마실 수 있게 된다.


이 점이 바로 맹점이다.

말 그대로 '물 같은 술'과 같은 깡깡 얼어버린 보드카는,

훅훅 마시기 딱 좋다.

마셔도 우리 쏘주 마시듯이 그 쓴 맛에 '키야~' 하지 않는다.

다만 뭔가 목구멍을 지나 내장을 타고 흐르는 느낌은 강하게 든다.

그것이 묘한 쾌감을 준다.

그렇게 한잔 두잔, 타격없이 마셔댄 보드카는 우리 몸의 온기를 통해 본격적으로 데워지면서 순식간에 우리를 취하게 만든다.


이들은 이 보드카를 우리의 쏘주처럼, 3병이고 4병이고 마신다.

보통 한 병에 500ml라 생각하면..

엄청난 양이다.


쏘주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는 무엇인가?

참이슬, 처음처럼, 요즘은 진로? 내 고향 부산에서는 시워이~(C1)다.

그럼 러시아 보드카 국민 브랜드는 무엇인가?

바로 '루스키 스탠다르뜨'이다. 즉 'Russian Standard'.

이름부터 이미 국민 보드카의 자격이 있다.

뭔가 찐 국민 보드카 같아서 그 이름부터 참 마음에 들었다.

최소한 내가 식당에서 경험한 99%의 러시아 보드카는 이 술이었다.

2012년 당시 보통 마트에서 4~500루블(7~8천원)이면 구입할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이 보드카가 가끔 생각나기도 했는데,

2010년대 중반에 이 보드카가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유통되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이 보드카를 아는 나로서는 너무나도 반가워서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는 했지만

마케팅이 약했던 것인지 언젠가부터 다시 볼 수 없었다.

당시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보드카 유통이 많아져 각축전을 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외에도 벨루가 라는 고급 라인의 보드카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로 치면 지금의 '화요' 같은 느낌?

한국 귀국하던 날 지사장님이 아버님 갖다 드리라며 조오은 벨루가 하나를 선물해 주신 기억이 난다.


아,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는데

한국에서 유명한 스미노프(Smirnoff)는 사실 러시아 보드카가 아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기원은 러시아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1930년대에 미국 회사로 인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러시아에서는 한번도 스미노르프를 본 적이 없다.


여하튼 나는 지금은 술을 그다지 즐기진 않는다.

내 닉네임도 에녹 아닌가.

닉값은 해야지..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추억 러시아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몇 가지 중 하나는 단연 보드카가 아닐 수 없다.

보드카를 생각하면,

수건에 싸여 나온 차디찬 보드카 병이 떠오르고,

보드카를 설명하며 자부심을 느끼던 러시아 인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떠오르고,

시원한 한잔으로 하루 노고를 털어버리던 그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보드카 앞에서 해맑게 웃던 그들의 표정이 가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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