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할 자유
사람은 선택하는 자유로운 존재인듯하지만 한정된 선택지에 묶이는 부자유한 존재이기도 하다. '생'의 시작마저도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는 현실은 인간의 실존이 자유와 그렇지 않은 상태 사이에서 어디에 더 가까운지 가늠하게 한다.
근대국가는 이러한 한계를 인정한 시대 이후에 시작되었다. 태어남, 그 사건 이후에 부여되는 존재의 자유를 보장하는 공동체를 세우고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거대하고도 잘 조직된 사회 시스템을 탄생시켰다. 이 의지는 인권이라는 응집된 표현으로 현대에 오기까지 자유를 수호하는 시민사회의 토대 중에 하나가 되었다.
개인의 선택권은 이렇듯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중요하다. 인간다움에 눈을 뜬 시민들의 눈이 향하는 곳은 이 권리가 지켜지는 공동체 이어서다. 즉 인권감수성이 높은 곳일수록 선택의 범위에 관하여 고민하고 합의하려 노력한다.
때문에 국가마저도 선택지에 포함될 수 있다는 일견이 등장한다. 아직 이른 예언인지 모르지만 가까운 미래에 국적마저도 상품으로 팔릴 수 있다는 의견은 타당성을 지닌다. 그리고 만약 국적에 따라 시민성의 질을 판단하는 때가 가까워졌다면 이 국가가 보장하는 공동체들은 위기의식을 느껴야 마땅하다.
유사 이래 공동체는 선택 불가능성이라는 도구로 권력을 세우려 했다(혈통, 빈부, 태어난 지역, 여러 가지 재해,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한 공포).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불가항력이 사람을 위아래로 구분할 근거가 아님을 알리는 시대에 산다. 그것이 자신을 규정할만한 절대적인 조건이 아니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사회는 그러한 사람들과 공진화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에겐 선택 불가능성이 개인의 삶을 위협하지 못하는 사회를 가꾸어 갈 책임이 주어졌는지 모른다. 태어나면서 정할 수 없었던 것들로 미래를 결정짓게 만드는 생각과 삶을 지탱하는 조건을 빌미로 구성원들에게 특정한 방향을 강제하는 모든 것들을 부정해야 한다. 그것이 만약 특정한 이들의 권력을 위한 종교나 왕정과 같은 모습을 띈다면 더욱이 그래야 한다.
(사족을 붙이자면 이 시대에 종교는 과학주의에서 파생된 물질 환원주의에 대항하여, 이념대결로 소외받는 약자들 사이에서 의미와 목적과 인간의 존엄성을 지속적으로 외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국가는 시민들이 선택하지 못하는 것들에 묶여 삶을 이어가지 못할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때에 맞추어 보호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