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인가

책: <아몬드>, 손원평, 창비

by 쓴쓴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P.J 놀란(미국작가/사형수), <아몬드>에서 발췌.


책은 독자에게 종종 질문을 던진다.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인물의 과거사로, 인물들 간의 감정 다툼으로, 이렇다 하기 쉽지 않은 난해한 상황과 같은 것으로 말이다.


생각의 꼬리를 끊어내지 않고 의문형만을 떠오르게 하는 이야기는 대체로 독자를 불편하게 하지만 간혹 그런 당혹감도 잊게 만드는 줄거리가 있다. 밀린 질문들 마저 기꺼이 찾아내어 이해해보고 싶은,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낀다.


필자는 그런 소설을 만났다고 본다. 흥미로운 내용에 빠져 빠르게 책장을 넘기다가 어느새 답하지 못한 질문들 사이에 갇히는 경험을 했다. 덕분에 어떠한 답도 얻지 못하고 잃어버린 질문을 찾겠다는 핑계로 글 내내 질문을 던져보려 한다.




사람에게서 감정을 지운다면 사람일 수 있을까. 혹은 사람답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감정을 가질 수 없다 해도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까.


이 책의 독자는 감정이 없는 주인공을 만난다. 무서움을 못 느껴 자동차가 달려와도 피하지 않는 아이. 공감을 할 수 없어 넘어져 다친 친구를 쳐다보기만 하는 아이. 세상을 무덤덤하게 관찰하듯 생각하는 아이. 머릿속 아몬드 만한 편도체에 문제가 있는 이 아이는 생각에 어떠한 감정도 묻어있지 않다. 상대와 나누는 대화에서도 그저 파악한 세계를 서술할 뿐이다.


윤재는 그런 이유 때문에 자주 질문하는 듯하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영혼은 표현되는 감정도 읽지 못한다. 왜 그 표정을 짓고, 그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하다. 그의 질문에는 나쁜 의도가 없다. '정상'적인 삶을 고민하는 윤재에게 '나'와 다른 사람을 배우고 이해하려는 최선의 행동은 질문이다.


그런 윤재는 책을 좋아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자간과 행간의 여백을 상상으로 채워 넣기를 좋아한다고 말이다. 지은이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윤재는 그러한 책의 성질을 닮았다. 백지처럼 비워진 감정의 공백을 스스로 채워간다.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듯이, 직접 살아봐야만 안다는 듯이 덤덤하게 서술하는 그의 모습에서 독자는 마치 선문답을 하는 느낌을 받는다.


독자는 이 부분에서 동시에 당혹감과도 마주한다. 감정이 없는 인물이 고민하는 질문들이 자신들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다. 심지어 마음을 꿰뚫어 보는듯한 느낌을 받는 이유는 '돌직구' 화법 덕분이다. 윤재의 말은 어떠한 미사여구도 없이 당연스럽게 흘러갈 만한 것들을 향해 날아가 이 순간에 붙잡아 둔다.




주인공은 자신만의 화법으로 '사람은 무엇일까' 하고 질문한다. 내가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나는 어떻게 그들을 이해해야 할까.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위험이 닥쳐도 피하지 못하고 위험에 닥친 이를 보아도 공감할 수 없는 '나'는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이 글 가장 앞부분에서 발췌하기도 한 '놀란'의 말은, 윤재가 인용한 것으로 그의 고민이 담겨있다. 놀란은 의붓딸을 살해했다는 무고한 혐의로 사형을 당했지만 과거 그가 '담담히' 저질렀던 무거운 전과들 때문에 논란만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무죄를 선고받았어도 결국 또 다른 범죄를 저질렀을 거라 했다.


윤재는 자신과 다른 방식, 곧 문제아로 '낙인' 찍힌 친구 곤이를 떠올렸다. 수도 없이 말썽을 부리던 전과를 지닌 친구가 그 사형수와 더 닮았을까. 아니면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내가 담담히 범죄를 저지르는 그를 닮았을까.




만약 어떤 미지의 정체를 사람이라 밝혀줄 요소들을 선정하는 모임을 연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그 모임에서 최댓값을 구해야 할까 최솟값을 구해야 할까. 이 정도가 '되어야' 사람인가, 이 정도'면' 사람인가.


우리가 보통사람, 즉 '사람답다'라 여기는 기댓값은 어디에 있는 걸까. 우리가 사람에게 기대하는 방법은 타당한가. 만약 기댓값에서 벗어난다면 사람으로 보지 않아도 되는 걸까. 독자는 자연스레 다수의 '우리'에게 낯설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소수의 '개인'들을 인식의 울타리 밖으로 쫓아낼 권리를 획득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이른다.




윤재의 인용구를 생각한다. 우리는 상대를 구할 수 있을까. 구한다면 무엇으로부터 구하는 것일까. 놀란은 자신이 다른 이들과 무언가 다르다는 사실을 느꼈을까. 그것 때문에 자신을 구해달라 요청했던 걸까. 무엇도 쉽게 장담하거나 답을 내릴 수 없다. 그것은 소개하지 않은 윤재의 주변 인물들을 탐색해 볼 각 독자에게 주어진 숙제로 남겨두려 한다. 다만 필자는 윤재가 던진 질문을 고민한 끝에 '사람은 무엇인가'에 관한 실마리를 희미하게나마 찾았다고 느꼈다. 그것을 윤재가 보여준, 선문답과 같은 이질감의 문체로 적어본다.


- 사람은 무엇인가? 질문하는 사람은 사람을 배운다.

- 사람은 변할 수 있는가? 당신은 타인을 변화시킬 수 없다. 다만 당신은 타인 덕분에 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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