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냉철한 그리고 분노하는>, 자유정신사
독자는 책의 첫 장을 넘기며 <냉철한 그리고 분노하는>이라는 이름에서 받았던 첫인상을 잊어버린다. 선입견으로 받은 인상은 대부분 시간이 흐를수록 흐려지는데, 이 책은 다소 빠르게 사라진다.
아무래도 가독성이 조금 떨어지는 서문이 한몫을 톡톡히 한듯하다. 저자가 글을 쓴 의도와 그에 따라 소개된 글의 배열을 몇 차례 읽어보아야 파악하게 된다는 점은 분명 독서를 난해하게 한다. 만약 첫 지점에서 '냉철한'이라는 형용을 '머리를 부여잡는 복잡함'으로 표현하고 싶었다면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장점은 여기서 피어난다. 일이관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영역이 그러하듯이 인류가 쌓아 온 지성 또한 몇 가지 주제로 정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그러한 정돈이 가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불가능한 도전이어서가 아니라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거대한 지성사라는 영역에서 인류의 정신을 유의미한 주제로 묶어보려는 시도는 바다에 펼쳐진 군도 사이사이에 다리를 놓는 작업과 같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분명히 있다 믿지만 깊은 내용에 접근하기 어려운 개념을 꿰뚫는 시도를 한다.
정의, 분배, 의, 권력, 공평 등의 추상적인 개념을 관련된 주장을 했던 인물들 간의 대화로 풀어내는 형식도 주목할 만하다. 다만 간결해 보이는 대화체가 도리어 독자 친화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아쉽다. 참고한 문헌에 비해 생각보다 적은 분량을 봐도 친절한 설명문을 기대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