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은 존경심에서 발원하기도 한다. 갑자기 주어진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강한 부정을 내뿜는다. 결코 자책이 아닌 이유는 가득한 것을 다 내뱉지 못하는, 겸양조차 꾸미지 못하는 겸손이기 때문이다. 본인은 그것에 다가갈 수 없다 믿기에 부디 그 무거운 짐이 주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니 책임은 반드시 자리 지킴을 수반하진 않는다. 역으로 도망을 종용하기도 하는 그 모든 것이다.
자발은 곧잘 거역에서 출발한다. 아니, 로 시작한 사견이 그 주인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만든다. 절대적인 것 같았던 그것이 진리이므로 흔들리지 않았던 게 아니라 단순히 혹은 꾸준히, 근처에와 도처에 있었기에 익숙하거나 친숙했던 것뿐이라고. 해서 자발에 속하지 못하면 그저 반복 혹은 비슷한 복제품이라는 생각을 줄곧 한다.
어쩌면 이와 같이 확정된 마음은 꾸준히 구겨질 삶을 더욱 조심스러운 곳으로 바라보게 내버려둘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음의 소유자는 어느새 자신의 걸음이 한 없는 물러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다.
'나'의 선택은 조금의 유보도 없는 단 회의 도전이 아니라 한 없는 탐험이기에 그렇다. 끊임없는 주저함과 두려움을 지닌 인간의 멈추지 않는 푸념에는 영원토록 꺼지지 않을 기다림이 마저 담겨있다. 신을 향해 변론을 요청하는 유약한 '나'의 외침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본다. 그리고 마침내 그렇게 심긴 작은 씨앗에서 일렁이는 가지에 달릴 열매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