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란 것은, 이라는 바보스러운 생각
갑자기 닥쳐온다.
조심해.
왠지 기도하고 싶어 진다. 촛불을 켜놓고 가만히 응시하고 싶어 진다. 내 키를 훌쩍 뛰어넘는 수족관에 들어가 유리창 안쪽의 푸르게 빛나는 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다.
조심해. 곧 다가올 거야.
나의 몸은 신호를 보낸다. 배꼽 근처 깊숙한 곳의 통증으로, 한쪽 귀를 덮는 편두통으로. 이제 곧 나의 내면 어딘가에서 차곡차곡 쌓인 무엇인가가 무너질 것이다. 이 어그러짐과 함께 빠르게, 그러나 갈라지는 공기의 저항 없이 미끄지러듯 그 현장으로 달려간다.
손에 쥐었던 형광펜을 놓는다. 밑줄을 치려했던 문장을 몇 번이고 읽어도 뜻을 읽어내질 못한다.
읽던 책을 덮는다. 휴대폰을 쥐고 이어폰을 꽂아 무작정 노래를 듣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는 내 몸의 경고를 무시하는 마지막 발악이다.
예전에 화학제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일본인을 다큐로 본 적이 있다. 얼마나 예민한지 플라스틱 용기에 담겼던 음식도 먹질 못했다. 그녀는 조금의 매연조차도 없는 산 깊숙한 곳으로 대피해서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나와 같은 민감한, 타인보다 세계를 낯설게 이해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이 낯섦이 어쩌면 경고등일지도 모른다는 멍청한 생각을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널려있는 알 수 없는 어떤 위험을 경계하라는 경고. 그래서 쉽게 우울하고 더 무서워하고, 더 겁내 하는 거라고.
그렇게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보니 또 바보스럽게 뿌듯해진다. 내 몸은 경고등이야. 난 신호등이야. 위험하면 알려줄게, 걱정 마.
이런 낯선 세계
날 선 세계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에서 너무 민감한 나는 공기의 저항 없이 미끄러지듯 도착한 스러짐의 현장에서 하나씩 무너짐을 쌓아 올린다. 괜찮아. 방금 전의 산들바람은 나의 그림자였어. 오늘은 조금 해가 늦게 떴나 봐,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