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숲에서 마주친 빛
문득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있다. 한참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찰나를 붙잡을 수 있는 충분한 익숙함 말이다. 헌책방에 켜켜이 쌓인 먼지 냄새처럼, 나도 모르게 지들끼리 뭉치고는 멋대로 어느 순간 스스로를 드러내는 상념은 쉽게 넘겨짚을 만한 것이 아니다.
자신을 설명하는 일이란, 그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만이 가능하다. 공기마저 멈춘 듯 답답한, 발바닥을 지그시 누르는 중력처럼 지루한, 소수점의 속력으로 내뱉어진다. 그것은 시체의 부패와 다르다. 멈춰진 모든 것엔 죽음의 침묵만이 있을 뿐 살아가는 존재로서 '나'는, 시간축 위를 따라 회전하는 빛, 나의 영혼을 발견한다.
육신에 붙은 영혼으로서 그 의무와 가능성이 어디까지인지 파악하든 못하든, 어지러운 우울의 숲을 헤매다 마주친 발견은 실로 뜻밖이었다. 나는 이 세계에 어떻게든 발화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찌 되었든 나의 살아있음은 인생의 줄 위에 형형색색의 빛깔을 내건다.
그것, 곧 내가 누구인가에 관한 나름의 답은 직물의 조직보다 덩굴의 휘어짐에 더 가깝다. 비껴가거나 관통하거나 그것은 해체되고 뒤집어지며 '나됨'을 만든다. 곧아 보이는 길을 따라 걸었으나 나의 발걸음은 둥근 원의 호를 그렸음이 전혀 역설이 아닌 까닭이다.
어쩌면 인간은 자신이 나름대로 세운 곧은 법칙을 따라 살면서 그것이 별것이 아니었음을, 혹은 너무 별난 것이었음을 번갈아 알아보다가 자신에게로 다시 회귀하는 운명을 타고나지 않았나 싶다. 마음껏 상상하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꿈을 꾸지만 품은 꿈만으로도 행복한 존재가 사람이라면 별 수 없다. 좌절한 만큼 행복하게 도전하고, 실패한 만큼 당당해지는 것 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