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지 말기

삶에도 달콤한 거품이 있답니다

by 쓴쓴

'않다'와 '말다'는 뜻이 다르다.




언젠가 우울의 상태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것은 이상하리만큼 안정하다고. 단지 우울과 절망이 세계에,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세계에 바람도 불지 않는 망망대해처럼 넘실댈 뿐이다.




<이상한 정상가족>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여성과 남성으로 이루어진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곧 통념상 '정상'이라 여겨져 온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사건들을 다룬다. 부모가 가하는 체벌을 폭력과 학대로 대하지 않는 관습에 관하여, 자녀를 방임하는 부모의 양육 때문에 버려진 아이와 다름없이 스스로 자라는 아이들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그런 방식으로 대한민국 사회에 발을 들일 준비를 한다. 어른이 돼야만 사회에 소속된다고 보긴 어렵다. 태어난 생명은 그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도 영향을 미치고 다시 그 사회에 물든다. 다만 어린이에게 사회는 부모라는 사실, 그러기에 어린이는 부모에게 물든다.

이상한 정상 가족

<당신의 부탁>이라는 영화는 그러한 '정상'의 모습이 없다. 대신 '비정상'이 '이상'하지 않다. 남편을 잃은 여자 주인공은 그의 아들을 5년만에 만난다. 이제 고1이 된 사춘기 아들을 키우게 되면서 역설적으로 그녀는 안정감을 찾아간다. 이 영화가 특별하다면 바로 다음과 같다. 임신부가 등장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도 없고, 중학생이이를 가졌지만 그 정을 설명하는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는 다만 그저 세상에 던져진 생명, 그리고 그 생명을 지키는 '가족'이라는 개념을 그려낸다. 일종의 도전이다. 생명이라는 존엄성에 대하여, 가족이라는 정의에 관하여.

당신의 부탁. 당신은 누구인 걸까.

때문에 생각이 많아질 것 같지만 도리어 갈무리가 되는 영화다. 가족이라는 사랑스러움, 생이라는 사랑스러움이라는 어쩌면 역설적인 이 표현이 어울리는 장면들이 많다. 나열된 이 표상들은 갓난아기를 처음 본 이가 아기를 사랑스럽다고 표현하는 것만큼 낯설다. 하지만 일상적인 찬란함, 역으로는 기적의 일상화를 표현한다. 갓난아기를 바라보다 낯선 시선을 느끼는 부부의 모습에서, 여자 주인공이 '피도 섞이지 않은' 아들과 짐을 나눠드는 모습에서 필자는 그 자체를 발견했다.


탄생이라는 경외감, 그것으로 시작되는 삶의 역설,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생이라는 찬란함을 우린 목격한다. 그러나 전혀 눈부시지 않은 감독의 시선이다. 도리어 따뜻한 봄날이라 해야 맞다. 땅에 잠시 그려진 구름의 그림자 안에서 아지랑이가 오르는의 풍경을 감상하는 느낌이다. 그러다 잠시 넋이 나가 온 세상이 기지개를 켜는 모습을 관찰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기괴할 만큼 굉장히 안정한 우울의 정체를 내가 알아차린 것처럼, 그것이 나의 시선이고 앞으로 이 영화를 감상할 관객의 시선이라 믿고 싶었다.

혼영. 정말 아무도 없었다. 야호! 전세 냈다.




스캇 펙은 자신의 책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사랑을 주제로 다룰 때, 사랑은 어쩔 수 없는 복합적인 행동이라고 논했다. 자신에게 친절치 못했던 부모와는 달라야 된다는 강박관념은 오히려 사랑 표현을 딱딱하게 만든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도리어 학대에 굴종하는 모습을 사랑으로 해석하려는 사람들에게 충고를 더하며 사회적 관계에서 나타나는 마조히즘, 곧 자기희생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나친 자기희생적인 행동은 자신을 사랑의 화신으로 왜곡하려는 어색한 시도다. 스캇 펙의 말처럼 사랑은 분명 변화를 이끌어내지만 희생보다는 자기 확대다. 순수한 사랑은 자기를 채워나가며, 나와 상대의 성장에 목적을 둔다. 이기적인가 아닌가, 가 사랑의 구별선이 아니라 행동의 목적이 사랑과 아닌 것을 구별한다.




너무도 생생한 꿈을 꾸었다. 어느 교실이었다. 나는 얼굴은 알아챌 정도로 익숙해진 사람들과 아직 어색한 사람들 사이에 앉아있었다. 내 삶의 여러 시간대의 사람들이 섞여있는 학급이었지만, 꿈이라서 그런지 이상할 거 없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중에 한 안건이 나왔다. 너무 터무니가 없는 말도 나왔고 나를 배제하는 자의적인 주장만을 내세우는 사람에게 반박하며 맞섰다.


그때 분란이 일어났다. 힘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과 고성으로 제압하려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대화로는 이겨낼 수 있었지만 육체적인 힘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웬일인지 용기가 났고 완력으로 위협하는 사람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를 자유롭게 때릴 순 있겠지만 나의 존엄은 밟지 못할 거라고, 말이다. 너는 나의 마음을 짓밟을 수 없을 거라고 당당히 소리쳤다.


허리에서 풀었던 자신의 벨트로 몇 차례 위협하던 그가 내 말을 듣더니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나는 다시 소리쳤다. 너희들은 나에게 아무 일도 저지를 수 없어. 나의 존엄을 빼앗을 수 없어! 그렇게 외치다가 잠에서 깼다.




'다'와 '말다'는 뜻이 다르다. '다'는 발화 시점 이전에 관련한 행동을 안 한다. '말다'는 이미 하고 있는 일을 중단하라는 요청이다.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하고 있다. 걷지 않는다면 그냥 서 있거나 뛰거나 누워있다. 깨어 있지 않다면 잠을 자 것이고, 잠이 들지 않았다면 깨어있 것이다. 그러기에 하지 않기 보다 말라는 표현이 더 명령조에 가까우나 현실에는 부합한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다만 그때를 모를 뿐이지. 묶을 때가 있고 풀 때가 있으며, 잡아야 할 때가 있고 지나쳐야 할 때가 있다. 심지어는 이룰 때가 있고, 공든 탑이 무너질 때가 있다. 성서의 전도서라는 잠언집은, 인생이 반영하는 천박한 허상, 그러나 비약이 없는 냉혹한 현실을 그렇게 논했다. 그러니 서두르지 말자는 나의 말은, 당신의 삶이 진행될 때 서두르지 말아야 할 때를 잘 찾아보자는 권유다. 당신의 삶이 거품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을 때에도 그것이 소중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너무 많은 잠, 이루지 못한 꿈, 반복되는 악몽, 육체의 아픔, 또한 아픈 기억, 트라우마, 상처, 외로움과 자괴감의 경험, 나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가족. 이처럼 없었으면 조금 바뀌었으면 하는 요소들이 있어도 신은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그것은 언젠가 다 날아갈 거품이니 무시하겠다고? 그딴 거품은 그냥 눈 감고 모른 채 하겠다고? 잠시 후면 즐기지 못할 뽀얀 공기방울의 그 달달함을 무시하다니. 당신은 맥주의 거품을 싫어하는 편인가 보다, 그렇다면.


거품이 달 때도 있다. 우울한 상황이 당신을 성숙하게 할 수도 있다. 어리석은 행동이 더 현명한 길로 인도하고, 잘못 열었던 문에서 시원한 바람을 마주할 수도 있다. 그러니 가끔은 서두르지 말자. 당신이 무엇을 겪었든, 무엇을 선택하든, 무엇을 겪게 되든.


아직 살아있다면 할 일이 남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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