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든든하게
어머니가 대상포진을 앓고 계신다. 이건 수두 바이러스라서 수두를 어렸을 적 앓았다면 사는 동안 다시 나타난다. 만약 너무 피곤했다면, 그러니까 면역체계가 바이러스를 방어도 하지 못할 만큼 약해지면 신경을 타고 나타나는 무지 아픈 병이다.
사람마다 다 하나씩 아픈 구석이 있다. 자신도 모르는 병 하나씩, 그림자 하나씩 몸에 품고 등에 메고 없는 꼬리를 만들어 달고 다닌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무섭게도 이런 속담을 만들었다. 사연 없는 무덤 없다.
그런 격언도 있다. 상대방이 되어보기 전에는 결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역지사지라는 말인데, 결국 모른다는 뜻 아닌가. 내가 어떻게 네가 되는가 말이다.
각자에게 아픈 것이 있듯이 각자에게 옳은 것들이 있다. 그것이 서로를 찌를 수도 있다. 아니 그것이 하필 서로에게 아플 수가 있다. 그러니 네가 되지 못하는 내가 너에게 아픈 것이겠지.
대상포진을 앓는 어머니의 몸을 보며 나의 나약한 마음과 비교한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누가 더 아픈 것인가, 하는 쪽팔린 저울질을 한다. 한참을 고민해서야 알 수 없음을 안다. 당신의 아픔은 오롯이 당신 것이다. 나의 옳음은 오롯이 나만의 옳음이다.
하지만 당신이 내 곁에 있어준다면, 당신이 아플 때 내가 있어준다면 나는 기뻐할 것이고 당신은 위로받을 것이라는 사실은 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빵을 사다 놓고 입맛에 맞지 않으신다는 병원밥을 내가 대신 먹는다. 심심한 반찬에 고소한 쌀밥이 내겐 딱 좋다. 어머니는 따뜻한 커피 한 잔에 페스츄리를 한 입 베어 드신다. 달달한 빵 냄새가 병실에 따뜻하게 퍼진다. 그렇게 우린 함께 있어준다.
그러니 우리 함께 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