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채우는 법

언어를 배우다

by 쓴쓴

나는 체질상 시간을 그냥 떠나보내질 못한다. 어떻게든 붙들어두어서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말아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는가. 살아간 날이 길수록 우리는 익숙한 것들에 젖어 들어 더욱 새로이 생각하지 못하고 내일을 살아간다.


글을 쓰는 일보다 상념에 빠지는 일이, 빠지기보다 음악을 들으며 흥얼거리는 것이, 흥얼거림보다 그저 걷는 것이, 그저 걷기보다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일이, 기다림보다 대형버스에 몸을 맡긴 채 선잠에 드는 일이 더 쉽다.


그런데도 나는 내 온몸을 다해 저항한다. 그냥 흘러가는, 흘려 '보내는' 시간을 잡아다가 붙잡아 두고 싶어서 강박적으로 시간에 무언가를 채운다.


그래서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중국어와 영어. 순서는 공부하기 시작한 순서다. 대학원생에게도 80%만 출석해도 수강료를 돌려주는 환급반을 열어주었길래 중국어는 초급반과 고급반을 모두 신청했다.


영어는 EBS 교재를 샀다. 라디오 재방을 들으면서 쓰기(작법)를 공부한다. 아무래도 말하기를 배울 만한 곳을 잘 찾기란 쉽지 않으므로 비슷한 유형인 쓰기를 배운다. 사실 비밀인데, 영어 듣기나 독해 속도가 나는 너무 느리다. 심지어 한국어도 느리다. 책을 읽어도 천천히 음미하고, 듣는 순간에도 바로 듣질 못하고 재차 물어본다. 좀 언어를 배우기엔 깝깝한 성격이긴 하다.


아무튼 언어를 배우는 일은 다른 나를 채우는 일이다. 나에겐 더욱 좋다. 우울을 잊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매우 적절하고 기분 좋은 선택이다. 우울 회로가 저절로 돌아가도록 장착된 내가 아닌, 세상을 표현하고 싶어 안달이 난 중국어권 유치원생, 영어권 초등생이 되는 기분이랄까.


시간을 보내버리기 싫다. 나의 우울만을 시간에 내보내고 싶지 않다. 오늘 배운 표현처럼 'Take control of my life(내 삶의 주도권을 잡고 싶다)' 하고 싶다. 그리고 난 我是每天下午学习汉语的。(난 매일 오후에 중국어를 공부한다)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