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난 고무줄 묶기
아픔이 몸을 덮치면 어느새 세상과 단절되었다는 느낌을 인정해야만 한다. 끝없는 심연이라고 표현하는 이도 있었지만, 나에겐 그것은 팽팽하게 늘어난 고무줄과 같았다. 끊어져 쓸모 없어지거나, 아니면 어디로 갈지 모르게 곧 튕겨져 나가거나.
단절은 타의도 자의도 아니다. 그저 그렇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난 보았다. 내가 노력해도 이어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아프기에 계획할 수 없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고 그려낼 수가 없다. 무기력은 무책임으로 드러나고 얼굴에 비친 그림자는 사람과의 관계에도 짙게 드리워진다.
내가 무엇을 사랑했든 그것을 버려야 할 때가 온다. 하지만 작별의 애도도 할 수 없을 만큼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헤어짐은 어떻게 받아들야야 하는지 아직 나는 모른다. 그저 그것을 무시하는 것, 그리고 가끔은 신물처럼 올라오는 기억을 몇 번 반추하다가 뱉지 못하고 삼켜내는 것, 그리고 그것이 다시 올라올지 몰라 두려워하는 것이 내가 지금까지 깨달은 방법이다.
이 와중에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면 정말 행운이다. 그러므로 나는 아픈 이들에게 더 사람을 만나라고 추천하고 싶다. 나도 안다. 아프면 저절로 세상이 나에게서 멀어지는 것만 같고, 앓는 만큼 사람을 멀리하게 된다. 그러나 그럴수록 사람을 찾아야 한다. 내게 좋은 사람을 찾으러 나가야 최소한 확률이라도 생긴다.
멀어진 만큼 삶을 걸지 않아도 된다. 생각보다 지척에 나의 사람들이 있다. 물론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아픔에 무표정으로 대응하는 이들을 주의해야 한다고 충고하겠다. 그들은 나의 '지금'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저 괜찮다고만 말하는 이들은 아픔에 반응하는 그만큼 나의 회복에도 시큰둥할 이들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좋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돌려 말하지 않고 어떠냐고 물어보는 이들이 도리어 반갑다. 내 말이 끝나기 전까지 경청해주는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들은 순리라고 여겨지는 고통의 단절을 헤쳐 나와 역행의 용기를 내는 중이다. 내민 손을 쳐내지 않고 두 손으로 감싸 불쾌한 감정과 불편한 시간을 끌어안는다.
그들 모두에게 감사하다. 그냥 나를 있는 그대로, 지금 이 순간마다 존재하는 방식 그대로 나와 그대를 연결해 준 이름을 밝히지 못할 그대들에게 재차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이는 쉽지 않은 일이기에, 고요함과 질서의 유리창 너머로 관망하지 않고 나와 함께 담소를 나눠주었기에.
나는 오늘도 내 안의 아픔과 싸울 수 있다. 좋은 사람들 덕분에 세상과 단절되지 않고 단단히 묶여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