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언제나 필요하지만, 그것이 자리 잡아야 할 곳에 대신 환상을 놓아선 안 된다. 그러나 공평하지 않은 개인들의 경험을 감히 추정해보면서 나는 공정한 세상 가설을 재차 떠올린다. 그것은 어리석은 게 아니라 매우 당연한 귀결이라고 여기면서.
공정한 세상 가설은 너무도 단순해서 소름이 끼친다. 나의 노력만큼 세상이 보상해줄 거라는 신념. 그렇다. 미안하지만 마른땅을 열심히 파 보아도 우물 하나 못 세울 수 있고, 먹기 좋게 잘라봐도 내 몫이 안 돌아올 수 있다. 세상이 당신의 불행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당신이 거기 있는지 몰라서다.
이 가설의 제안점이 그런 희망 빼앗기라면 나는 이 사회심리학에 저항했을지도 모른다. 실은 이 현실의 방점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찍힌다. 당신이, 혹은 누군가가 처한 상황이 공정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라는 요청이다.
사회 구조에 의문을 품지 말라는 의미도 아니고,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지 말라는 뜻도 아니다. 이 가설은 오히려 반대 방향을 가리켜서 각자의 소유와 결핍이 당연하거나 공정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게 한다.
그러니 막연한 환상보다는 구체적인 희망을 떠올리는 게 더 이롭다. 자신과 다른 존재의 필요에 의아해하는 데서 시작하여 없음이 도리어 기득권이자 특권이 될 수도 있다는 역설을 기억하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