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선택] 나의 추구미는 성장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초등학교 운동장.
아이들은 저마다의 표정으로
가볍게 폴짝폴짝 뛰며 리듬감 있게 줄을 넘는다.
남들은 쉽게 줄을 잘도 넘어가는데
나는 왜 그렇게 힘든 것일까?
몸 따로 줄 따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헉헉 대고만 있다.
운동에 영 소질이 없어서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반에서 줄넘기 실력은 꼴찌를 할 정도로
해도 해도 너~무 못했다.
실기 평가와 함께 줄넘기 대회를
2주일 앞두고 있었다.
"내 실력이 형편없구나"
포기하는 게 더 빠를 수도 있지만
친구들의 놀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갑자기 생긴 욕심이었을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수업이 끝난 후,
운동장에 홀로 남아 줄넘기 연습을 시작했고
집에 돌아온 뒤에는
좁은 골목길을 연습장 삼아 뛰고 또 뛰었다.
“한 번만 넘을 때까지 해보자”
줄넘기의 줄이 내 발등을 세차게 스치고
지나가면서 걸려서 넘어졌다.
아픈 것보다 또 실패했다는 게 더 속상했다.
왈칵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참으며
줄넘기와 팽팽한 싸움을 이어갔다.
며칠 동안 연습한 덕에 박자감이 생기고
자세가 잡혀가면서 줄을 넘는 횟수가 늘고,
속도 또한 빨라졌다.
막막하고 높아 보였던 처음이라는
장벽을 넘는 게 두려웠던 거지
그다음은 조금 수월했다.
이단 뛰기, 엑스자 돌리기까지 가능해졌고
줄넘기 꼴찌에서 벗어나 실기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것은 물론 줄넘기 대회에서도 입상했다.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알게 된
인내의 열매는 침이 고이게 새콤하면서 달았다.
버티고 꾸준히 하면 성장할 수 있다는 이치였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 '인내'를 대입해 보려고
하니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지 않는다.
회사 일에 치여 시간이 없다는 핑계,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변명.
테이프를 뜯다가 눌어붙은 흔적처럼
이런 것들이 한 발짝 나아가려는
내 발걸음을 구질구질하게 붙잡는다.
인내의 결과를 조바심 내는 나에게 쓰는 명약이 있다!
'프로듀스 101'(보이즈 플래닛)이나 '스트릿 우먼 파이터'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이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한 트럭씩
출연하기 때문에 미소 지으며 넋이
빠져라 보는 힐링 프로그램이기도 하지만
좀 다른 의미도 갖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꼭 질질 짜게 된다.
‘어디서 눈물을 흘리는 포인트가 있냐’라고
당황하며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데뷔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실력의
출연자들이 심사자들의 혹독한 평가에
두들겨 맞는다. 뼈 맞아서 순살이 된 그들은 자기 객관화의 시간을 갖고 변명과 핑계 없이
연습을 거듭하며 눈물겹게 버텨낸다.
잘하고 싶어 같은 동작을 수 천 번 연습하는
간절함에,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져
마지막 오디션이 된 출연자의 애처로움에,
다쳐도 내색하지 않고 팀을 위해 춤을 추는 멋짐에....
'쟤네들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난 뭐 하고 있나?'
그들이 써 내려가는 성장 드라마가
내 것인 것 마냥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내 안에서 희미해져 버린 '성장'이 선명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성장하려면 인내해야
한다는 것도 수면 위로 올라온다.
그들의 멈추지 않는 도전은 어딘가 박혀서
움직이지 않았던 내 발걸음을 조금은
가볍게 해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