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이는 먹었지만 성장은 하고 싶어

[오늘의 선택] 나의 추구미는 성장

by 이너프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초등학교 운동장.

아이들은 저마다의 표정으로

가볍게 폴짝폴짝 뛰며 리듬감 있게 줄을 넘는다.

남들은 쉽게 줄을 잘도 넘어가는데

나는 왜 그렇게 힘든 것일까?

몸 따로 줄 따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헉헉 대고만 있다.

운동에 영 소질이 없어서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반에서 줄넘기 실력은 꼴찌를 할 정도로

해도 해도 너~무 못했다.

실기 평가와 함께 줄넘기 대회를

2주일 앞두고 있었다.


"내 실력이 형편없구나"


포기하는 게 더 빠를 수도 있지만

친구들의 놀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갑자기 생긴 욕심이었을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수업이 끝난 후,

운동장에 홀로 남아 줄넘기 연습을 시작했고

집에 돌아온 뒤에는

좁은 골목길을 연습장 삼아 뛰고 또 뛰었다.

“한 번만 넘을 때까지 해보자”


줄넘기의 줄이 내 발등을 세차게 스치고

지나가면서 걸려서 넘어졌다.

아픈 것보다 또 실패했다는 게 더 속상했다.

왈칵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참으며

줄넘기와 팽팽한 싸움을 이어갔다.

며칠 동안 연습한 덕에 박자감이 생기고

자세가 잡혀가면서 줄을 넘는 횟수가 늘고,

속도 또한 빨라졌다.


막막하고 높아 보였던 처음이라는
장벽을 넘는 게 두려웠던 거지
그다음은 조금 수월했다.

이단 뛰기, 엑스자 돌리기까지 가능해졌고

줄넘기 꼴찌에서 벗어나 실기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것은 물론 줄넘기 대회에서도 입상했다.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알게 된

인내의 열매는 침이 고이게 새콤하면서 달았다.

버티고 꾸준히 하면 성장할 수 있다는 이치였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 '인내'를 대입해 보려고

하니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지 않는다.

회사 일에 치여 시간이 없다는 핑계,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변명.

테이프를 뜯다가 눌어붙은 흔적처럼

이런 것들이 한 발짝 나아가려는

내 발걸음을 구질구질하게 붙잡는다.

인내의 결과를 조바심 내는 나에게 쓰는 명약이 있다!


'프로듀스 101'(보이즈 플래닛)이나 '스트릿 우먼 파이터'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이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한 트럭씩

출연하기 때문에 미소 지으며 넋이

빠져라 보는 힐링 프로그램이기도 하지만

좀 다른 의미도 갖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꼭 질질 짜게 된다.

‘어디서 눈물을 흘리는 포인트가 있냐’라고

당황하며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데뷔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실력의

출연자들이 심사자들의 혹독한 평가에

두들겨 맞는다. 뼈 맞아서 순살이 된 그들은 자기 객관화의 시간을 갖고 변명과 핑계 없이

연습을 거듭하며 눈물겹게 버텨낸다.


잘하고 싶어 같은 동작을 수 천 번 연습하는

간절함에,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져

마지막 오디션이 된 출연자의 애처로움에,

다쳐도 내색하지 않고 팀을 위해 춤을 추는 멋짐에....


'쟤네들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난 뭐 하고 있나?'


그들이 써 내려가는 성장 드라마가

내 것인 것 마냥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내 안에서 희미해져 버린 '성장'이 선명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성장하려면 인내해야

한다는 것도 수면 위로 올라온다.

그들의 멈추지 않는 도전은 어딘가 박혀서

움직이지 않았던 내 발걸음을 조금은

가볍게 해주기도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데드라인의 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