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을리 Jan 03. 2022

피어난다



뜨거운 태양 아래 열정을 다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인가

가을의 끝을 달리는 입동 무렵 땅으로 쏟아져 거름이 되었던 낙엽들의 역할 때문인가

아니면 쌓이고 쌓인 뒤 녹아서 물이 되어버린 눈의 역할 때문인가


찬바람이 매섭게 불어오는 겨울이 지나면

나뭇가지에 맺힌 꽃망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봄이 왔음을 알린다.


생명은 그렇다.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처럼 느껴지나

피어나는 과정의 아름다움이 숨어있다.



길을 걷다

봄에 피어난 벚꽃나무를 볼 때

봄이 아닐 때는, 꽃 피우지 않을 때는

그 나무가 벚꽃나무인지 모르다가

봄이 오는 때에, 참 아름답게 꽃을 피울 때에

벚꽃나무임을 깨닫는다.




우리는 피어난다.

우리는 피어나는 존재이다.

아직 꽃을 피우지 않았다고 해서

꽃 피우는 존재임을 잊고 살아 선 안 된다.


뜨거운 여름 열정을 다해 뿌리를 내리게 해 준

가을의 끝을 달리는 입동 무렵 땅으로 쏟아져 거름이 되어준

아니면 쌓이고 쌓여 녹아 물이 되어준

이들의 도움과 희생을 기억하며




어느 봄날,

나뭇가지에 맺힌 꽃망울들은 언제 황량하여 메말랐냐는 듯이 꽃을 피우고 향을 뽐낸다.






작가의 이전글 느린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