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시간에 있어
몸은 날렵한데
머리는 둔하다.
약속시간
몇십 분 전
닥쳐서 준비하는 편이다.
그래서
둔한 머리는
차분하라는데
날렵한 몸은
늘 바삐 움직인다.
제주살이를 할 때의 일이다.
어느 때와 같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버스정류장을 지나치는데
달팽이 한 마리가
천천히 유리벽을 기고 있었다.
나는
잠시 멈춰 달팽이를 보았다.
초겨울인지라
날씨가 추워 유리벽에 서리가 꼈고
달팽이가 지나간
자리에 자국이 남았다.
그 기어간 자국은
마치 편지 같았다.
느리게 쓴 편지
달팽이의 여정은
느리게 적혔고
그 적힌 편지의
착신자는 나였다.
깨달음을 주는
느린 편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