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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을리 Jan 03. 2022

느린 편지


난 시간에 있어

몸은 날렵한데

머리는 둔하다.


약속시간

몇십 분 전

닥쳐서 준비하는 편이다.


그래서


둔한 머리는

차분하라는데


날렵한 몸은

늘 바삐 움직인다.




제주살이를 할 때의 일이다.



어느 때와 같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버스정류장을 지나치는데

달팽이 한 마리가

천천히 유리벽을 기고 있었다.


나는

잠시 멈춰 달팽이를 보았다.


초겨울인지라

날씨가 추워 유리벽에 서리가 꼈고

달팽이가 지나간

자리에 자국이 남았다.




그 기어간 자국은

마치 편지 같았다.




느리게 쓴 편지




달팽이의 여정은

느리게 적혔고

그 적힌 편지의

착신자는 나였다.






깨달음을 주는

느린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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