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으로 우울한 날이다. 주말에 싹 틔운 우려가 우울감으로 번지고 말았다. 그래도 나에겐 수영이 있으니까 수영을 할 때만큼은 그런 생각이 모두 사라지니까 정말 다행이다. 고난을 해치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일이다. 그러니까 오늘도 상처받은 마음 한가득 품고 물속으로 풍덩.
계획대로 자전거를 타고 갔더니 땀으로 흠뻑 젖었다. 엄청난 워밍업. 지난 한 달 동안에는 수영 자체가 워밍업이었는데, 하루의 워밍업! (오늘은 자전거를 타기 위해 훨씬 일찍 나왔음에도 타이어에 바람을 잘 넣지 못해 한참을 끙끙대느라 시간을 잡아먹어서 지각했다.) 사람은 많았고, 왕초보 분들은 체조가 끝나자마자 유아 풀로 향했다. 나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지난달 둘째 주에 시작해서 혼자 케어 받으며 집중해서 연습할 수 있었으니까.
음-파-음-파- 발차기 네 바퀴를 돌았다. 잘 되다가 말다가, 숨이 차다가 말다가. 뭔가 아슬아슬한 컨디션이었다. 아무튼 모두의 발차기 연습이 끝나자 선생님은 모두에게 자유형 두 바퀴를 돌라고 하셨다. 나는 이제 이 지시를 듣고 팔 돌리기를 할 줄 아는 멋쟁이 스위머가 됐다. 이미 팔 돌리기를 해야겠다 결심을 하던 차에 선생님은 나를 보고 팔 돌리는 시늉을 하셔서 확신을 가졌다.
킥판 잡고 팔 돌리기 두 바퀴. 인원이 워낙 많아서 계속 교통이 정체되었지만 이게 조금 장점이기도 했다. 그 핑계로 조금씩 쉬어갈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한 번은 출발하고 나서 파-를 할 때마다 선생님이 자신의 오른 다리를 가리키며 굽히는 시늉을 하셨다. 나는 왼다리를 더 세게 차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는데 그 증거로 몸이 계속 오른쪽으로 쏠리고 있었거든. 물속에서 말이 안 들릴 걸 아니까 이제 손짓으로 알려주시는구나. 그러니까 그게 왜 이렇게 잘 안 되는지 모르겠네. 체력이 달린다고 느낄 때는 심지어 다리가 개구리 모양이 돼서 마구마구 벌어졌다. 한숨 돌리고 다시 시작하니 원래 페이스대로 나아갈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오늘 컨디션이 최상은 아닌 듯했다. 그래도 어제나 그제에 비하면 훨씬 좋은데..
이제는 선생님 지시 없이도 스스로 땅콩 볼을 가져와서 팔 돌리기를 연습한다. 컨디션은 떨어져도.. 능동적인 학생이 되어가는 중이다. 선생님은 모든 수강생들에게 피드백을 주느라 바빠 보이셨지만 내게도 놓치지 않고 피드백을 주셨다. 근데 피드백은 안 들어도 오디오다(?). 분명 오른 다리가 약하다는 이야기겠지. 예상은 적중, 그런데 이번엔 피드백이 조금 더 있었다! 이제는 더 작은 걸 잡고 해도 될 것 같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더 작은 거요? 더 작은 게 뭐지? 선생님은 도구함을 가리키면서 더 작은 거 있어요, 라고 말했지만, 더 작은 건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이 가져다 주신 작은 건 수경 크기만 한, 모양도 수경 같은 오렌지색 손잡이였다. 이걸 잡는 건 처음이니까(?) 무서우니까(?)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것도 차고 하라며 거북이 등도 함께 가져다주셨다. 오렌지색 손잡이는 잡으나 마나 싶게 히마리가 없었다. 이걸로.. 뭘 지탱할 수 있을까?
그리고 지난주 화요일에 처음 느꼈던 약간의 악몽이 다시 재현됐다. 일단 한두 번씩은 음-파-음-파를 했지만, 몸이 기울고 코로 물이 들어오는 바람에 계속 멈춰 서야만 했다. 뭔가 이상한데.. 이상한 점이 너무나도 명확해서 나 스스로 고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게 잘 안 될 뿐. 오렌지색 손잡이를 잡고는 파-를 할 때 고개를 이전만큼 충분히 빠르게 들지 않았다. 아니, 팔이 허벅지 옆에 도착해서야 고개를 돌리기 시작하는 거였다. 아무래도 물이 무서워서 그런 것 같았다. 그렇게 아주 느리게 고개를 돌리고 나선 또 고개를 다시 원위치로 되돌릴 마음이 없어 보였다. 이건 분명 내 마음인데 내 마음이 아니고, 내 몸도 내 몸이 아니야. 의지대로 움직이지도 않고, 의지조차 내 의지대로 돌아가질 않아.
그러는 사이에 교통 정체가 다시 심해져서 제대로 된 연습을 하기도 힘들었다. 아니, 사실은 그게 오히려 더 좋은 기회였는데.. 이미 10분도 안 남은 상황이어서.. 별 수 없었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지난주 화요일에 맨손으로 할 때보단 쬐끔 나아진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천천히 의식도 하게 됐고 말이다. 그 짧은 시간에 다행히도 선생님의 피드백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파-를 한 뒤에 빨리 들어오지 않는다는 거였다. 이제 내가 말로 하는 설명을 단번에 알아듣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선생님은 바로 시늉으로 설명을 해주신다. 근데 오늘은 잘 알아들었어요. 지난번에도 해주신 말씀이라..
오늘은 나 혼자 기특해 한 발전이 있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수심이 깊은 곳에서 새롭게 글라이딩하는 걸 전혀 못해서 벽에 붙어선 기어 다녔다. 그런데 오늘은 물의 저항을 뚫고 바닥까지 내려가 점프를 할 수 있게 됐다! 지난주까진 왜 수심을 밀어내지 못하고 허우적댔는지.. 고민해보면 역시나 물에 대한 두려움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수영에서 뭐가 잘 안 되는 건, 지인 말마따나 물이 무서워서가 가장 큰 것 같다. 그럼에도 물에 대한 두려움을 인지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도약을 한 게 아닐까? 앞으로도 크고 작은 두려움을 마주하게 되겠지만 말이다.
이 교훈을 내 인생에도 적응해 보면 좋겠지. 그렇다면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아니 깨달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내가 싫어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꿈꾸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지, 내가 무서워하는 것에 대해선 관심을 둔 적이 없다. 두려워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무서우니까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주는 두려움에 대해 차근히 생각해 봐야겠다.
몸이 마구 흔들리는 건 절대로 코어 근육이 없어서가 아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코어 근육을 이미 적당히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서 있거나 걸어 다니거나 이런저런 활동을 할 수 있는 거다. 다만 그 근육을 어떻게 세밀하게 제어해야 제대로 된 중심을 잡는지 아직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덴 어떤 거대한 힘이 필요한 게 아니라, 작디작은 요령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주 실용적인 요령.
수업이 끝나자마자 샤워장으로 향했다. 샤워장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지난번에 어떤 할머니가 알려주신 대로 자리를 맡아두기도 뻘쭘해서 한참을 중앙에 서 있었다. 어차피 난 시간이 많은 걸요. 그랬더니 어떤 젊은 분이 "줄 서 계신 거예요?" "이런 곳에선 한 줄 서기를 하면 절대 자리를 못 잡아요. 한 군데를 찜해놓고 기다려야 해요."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나는 이미 알고 있지만 어떤 것도 하지 못했다. 너무 맞는 말인 것이, 내가 그렇게 멀뚱히 서 있는 동안 네다섯이나 되는 할머니가 앞질러 가서 저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어차피 수업이 끝나서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내가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면서도 가만히 눈치만 보고 있자 그분도 나서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민폐를 끼치고 있구나. 다행히 구석이라 불편하지만 한 군데 자리가 났고 나는 그곳으로 가서 씻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게 된 자리는 늘 수압이 약하다. 이제는 왜 할머니들이 특정한 자리를 선호하는지 알게 됐다. 수압이 어디는 세고 어디는 약하다. 수압이 약한 곳에서 씻으면 씻은 것 같지도 않고 괜히 더 피곤함만 느껴진다. 수압이 센 곳에 서 있으면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
아참,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서 움직이기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오른쪽 견갑골이 결렸다. 견갑골의 뻐근함 때문에 컨디션이 안 좋았을 거라는 나의 확신에 찬 가정을.. 여태껏 깜빡하고 있었네. 사람의 기억이란 사람의 기록이란 이렇게나 불완전하다. 견갑골이 아픈 것은 아무래도 무릎의 통증과 허벅지의 피로와 연관되는 것이 아닌지, 생각했다. 하루 종일 미묘한 불편감을 느끼고서도 글을 쓰는 동안엔 그 중요한 오늘의 사실을 깜빡해버렸다. 하.. 산만한 나 자신..
수영이 끝나고도 길고 긴 여정이 계속되었지만, 수영 일기에선 과감히 생략하겠다. 오늘은 내가 말이 참 많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