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아침 수업 때까지 잘 수 있는 시간은 적은데 해가 뜨니 눈이 떠졌다. 너무 피곤했다. 몸이 땅 속으로 꺼지지 않는 게 용했다. 수업 전 겨우 다시 잠이 들어서 한 시간 정도 더 잘 수 있었다. 그래도 피로는 여전하다. 아니 애매하게 자다 깼더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자전거 타기는 포기하고 버스를 타기로 결심했다. 내가 탈 버스가 3분 뒤에 온다. 대체로 3분이라고 적혀 있으면 5분 뒤에 오더라. 잠시 편의점에 들러 갈증이나 숙취, 또는 피로를 해소할 음료를 살까 고민을 했다. 1분쯤 지났을 때 버스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 앱을 확인해 보니, 갑자기 17분 뒤로 바뀌어 있었다. 깜짝 놀라 숨을 들이켜고 밖을 나가니, 내가 탈 버스가 정류장을 떠나고 있었다. 아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나를 놀리려 하는 걸까. 나는 다른 버스를 타고 중간에 마을버스로 갈아타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자주 오던 다른 버스들도 내가 타려니 늦게 온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멍청함과 불운함은 이걸로 때웠으니 다행이다.
오늘도 사람이 많았다. 2분쯤 지나 입수했고 체조를 열심히 따라 했다. 킥판 잡고 발차기 연습 시작. 생각보다 많이 힘들지 않았다. 교통이 많이 정체된 탓에 천천히 나갈 수밖에 없어서 그런 것 치고는 정말 힘들지 않았다. 숙취에 수영은 어쩌면 운명 같은 만남이 아닐까? 어쩌면 아침에 마그네슘을 두 알이나 먹고 나와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내 속도가 부쩍 빨라진 것도 느껴졌다! 매일 조금씩 빨라지는 기분이다. 발차기 연습에 이어 킥판을 잡고 팔 돌리기를 연습했다. 어제보다 더 잘 되는 느낌! 매일매일 늘고 있다는 성취감! 두세 바퀴 다녀온 뒤에는 다른 잘하시는 분들이 나의 속도가 많이 빨라졌다고 말해주셨다. 네, 저도 느끼고 있어요! 겸손한 척이라도 할 줄 몰랐네. 그분들은 얼른 출발하라고 등 떠미셨지만 나는 다른 걸 들고 해보려고 한다고 먼저 가시라 말했다. 선생님이 앞에 가져다 놓으신 거북이 등과 8자 모양 오렌지를 들고 해 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알아서 가져다 연습하라고 챙겨주신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 선생님의 허락을 먼저 구하고 싶었다.
오, 그 전날보다 더 잘 되는 느낌이다. 물도 별로 마시지 않았다. 파-할 때 발차기를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하는지를 이제 명확하기 인지하고 있다 보니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몸이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도 줄어들었다.
오늘은 어떤 할머니와도 대화를 했는데, 가장 속도가 느리신 분이었다. 내가 새로 잡고 연습하는 8자 모양을 보고 자유형을 배울 때 연습하는 물건이냐고 물어보셨다. 그분은 작년 말부터 배우기 시작하셨는데 아직도 숨쉬기 연습을 한다고 하셨다. 매일 같은 것만 연습하고 새로운 걸 배우지는 못하는 상황이 너무 답답하실 것 같았다. 어쩔 때는 발차기를 연습하시고 어떨 때는 걷기를 연습하시는 듯했다. 누가 먼저 어떻게 출발해도 이 할머니로 인해 교통 정체가 심해졌다. 지난주에는 사람들이 모두 앞질러 가는 바람에 약간 엉망진창으로 순환이 되었는데 오늘은 사람들도 지쳤는지 적당히 기다리며 쉬어가는 눈치였다.
그러다 보니 전체 길이의 1/4은 걷기로 날려먹는 것 같았다. 나도 중간에 할머니를 앞지르려고 했지만, 하필 그 시점에 가운뎃길이 좁아서 팔 돌리기로 나가는 건 너무 위험해 보여서 걸어가 보려고 했다. 그런데 엄청난 수중 저항력에 하필 바닥이 너무 미끄러워서 도저히 나아가질 못했다.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는 기분이었는데 그 광경을 선생님에게 포착당해서 뭐 하는 거냐고 얼른 걸어 나가시라고 잔소리를 들었다. 한 보도 앞지르지 못하는 게 너무 웃겨서 막 웃었다. 누가 나를 밀어내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가다가 앞사람과 닿을 것 같은 일은 종종 일어났는데 한 번은 앞사람의 다리를 보자마자 당황해서 마구 멈췄더니 또 선생님에게 포착당했다. 갑자기 멈춰야 할 때는 팔다리를 뻗는 게 아니라 두 무릎을 가슴 앞으로 얼른 가져와야 한다고 말이다. 이미 알고 있는 착지법(?)이었지만 이 선생님에게는 처음 배우는 내용이었다. 알고 있는데 왜 안 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잔소리는 계속 들어야 고치고 발전하더라. 한 번만에 알면 그게 천재지, 그게 그렇게 잘 되는 사람이었다면 내가 이 나이에 수영을 처음 배울 만큼 운동을 멀리했을 리도 없다. 적어도 오늘 이 시점에 이 설명을 들은 뒤로는 계속 무릎 끌어안기로 멈춰 섰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설명이 끝나자마자 선생님은 갔다 와서는 손에 든 8자 없이 해보라며, 그래도 될 것 같다고 하셨다. 드디어 맨손으로 업그레이드한다! 사실 어제도 연습했던 거지만 기뻤다. 손을 포개서 한 팔을 돌리고 들어올 때마다 손등을 치면 된다고 하셨는데, 이건 또 처음 배우는 스킬이었다. 선생님은 손뼉 치듯 짝 소리가 나게 알려주셨는데 물의 저항력 때문에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맨손으로 팔 돌리기도 생각보다 잘 됐고 나 혼자 만족스러워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중간에 선생님은 몇 명을 지목해서 유아풀로 소환하셨는데, 나중에 한 분께 뭐 배우셨냐고 물었더니 배영을 배웠다고 한다. 아 부러워라! 나도 얼른 배영을 배우고 싶다!
생각보다 일기 쓰는 게 시간도 많이 걸린다. 그런데 그건 내가 한 시간짜리 일을 서너 시간처럼 길게 써서이기도 하다. 요즘 이 시간을 쓰는 것 때문에 하루 일과가 너무 빠듯해지는 일에 대해 고민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이거라도 쓰는 게 좋지만, 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 휴식이 엄청나게 많이 필요한 사람인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새로운 가설이 떠올랐다. 내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많이 쓰는 건 그만큼 온 신경을 곤두세워 예민하게 살고 있어서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쓰는 행위와는 무관하게. 그래서 더 남들보다 빨리 지치고 피곤한 게 아닌가 싶다. 그나마 위안인 건 완벽하게 쓰려고 노력하지 않아서 (엉망진창이긴 해도) 대충하고 있기에 피로감은 약간 덜었을 거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