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우울은 수용성, 물에 흘려보내요

by 속삭이는 물결

우울은 수용성이라 샤워로 목욕으로 씻겨서 흘려보내야 한다는 말. 어쩜 딱 맞는 말이다. 수영을 하면 좋은 점이자 나쁜 점이 잦은 샤워에 있다. 수영 전에 머리도 감고 몸도 구석구석 씻은 뒤, 락스 향이 풀풀 풍기는 물속에서 온갖 모양새로 버둥대다가, 수영이 끝나자마자 다시 꼼꼼하게 샴푸칠 비누칠을 해줘야 한다. 독한 약품에 이렇게나 자주 머리부터 발끝까지 노출시켜야 한다니. 수영이 끝나고 또 피곤한 일정을 보내고 나면 집에 돌아와 한 번 더 씻기도 한다.


자주 씻는 것이 피부에 좋지 않을 것 같아 걱정스러운 마음은 자주 들었지만, 그것이 내 마음에 끼치는 영향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돌이켜 보면 자주 씻은 덕분에 나의 상처는 조금 더 나를 모른 척해줬는지도 모른다. 씻고 수영하고 또 씻고, 간밤에 나를 괴롭히던 깊은 우울감은 아침 내내 물에 녹아 사라져 주었다.


토요일 수업 참여는 네 번째다. 딱 한 번 빠졌을 뿐인데 굉장히 드물게 찾아온 느낌이다. 무슨 일인지 초급반 출석률은 매우 저조했다. 네 명밖에 오질 않았는데, 그중 한 명은 몇 바퀴 돌자마자 중급반으로 월반하셨다. 지난주에 잠수복 차림으로 모두의 자세를 꼼꼼하게 봐준 선생님은 이날 물 밖에서 알려주셨다.


킥판 잡고 자유형 발차기 2바퀴. 쉬엄쉬엄 잘 다녀왔다. 이번에는 배영을 할 차례. 나는 내 순번을 뒤로 미루고는 선생님에게 그저께 배영을 처음 배웠지만 이 발차기 연습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선생님은 킥판 잡는 방식을 여러 가지 알려주시면서, 가장 좋은 방법은 킥판 끝을 잡고 안아 눕는 거라고 하셨다. 잘 뜨는 방법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해보고 물어보자 싶어 첫 시도에 돌입했다.


유튜브 강의 영상에서 본 대로 벽을 살짝 밀면서 누웠다. 웬걸, 내 몸은 생각보다 잘 떠올랐다. 몸이 뜨는 걸 느끼곤 발차기를 시작했다. 무서운 마음이 남아 있어 아주 천천히 한 발씩 띄웠다. 그저께 들은 허벅지를 쓰라는 이야기를 명심하면서 발차기를 했다. 혹시 또 고개가 물속으로 잠기지는 않을지 겁을 잔뜩 먹었는데 전혀 잠기지 않았다. 킥판의 면적이 더 큰 덕분일까. 여유로움을 찾자 나는 음-파-음-파- 호흡을 함께 연습하며 둥둥 나아갔다. 이제 고개가 잠시 물속으로 들어가더라도 이렇게 음-파-를 하면 되겠구나,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게 두 바퀴를 돌았는데, 정수리 위를 볼 수 없음에 나아가다 벽에 머리를 박는 사건은 있었어도 평화로운 항해였다.


이제 다시 자유형 팔 돌리기가 시작됐다. 킥판 잡고 두 바퀴를 돌고 나니 선생님이 땅콩볼을 가져다주셨다. 팔 돌리기에 대한 피드백은 없었다. 이제 이걸로 하다가 점점 없이도 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없이도 몇 번 해봤음을 알려드렸는데, 살짝 당황하셨는지 땅콩볼을 세로로 잡고 해 보라고 하셨다. 세로로 잡고 하는 건 처음이었다. 잡아야 하는 면적이 두툼한데 좁다 보니 낯섦이 있었다. 그래도 연습에 큰 차이는 없었다. 중간에 갑자기 고급반처럼 스트레칭과 걷기 시간이 주어졌다. 스트레칭을 할 정도로 피곤하진 않았는데, 열심히 따라 했다.


이번에는 거북이 등을 차고 해보는 시간. 이것도 이미 며칠 해본 연습이다. 갑자기 손에 잡는 게 사라지자 양 옆구리마저 자유로워진 느낌이다. 몸이 좌우로 흔들리긴 하지만 그게 신나게 느껴졌다. 나의 컨트롤 능력이 상승한 것 같다. 선생님은 이렇게 해보니 어떠시냐고 물었지만 나는 별로 시원찮은 대답을 해드렸다. 이미 몇 번 해봤다고 말이다. 아까도 말했는데.. 오히려 재밌다고 말씀드렸어야 했을까.


본격 배영을 해보는 시간. 선생님은 모두의 레벨을 아주 낮게 잡으시는 듯했다. 배영하는 시늉도 살짝 하시면서 팔 돌리기 배운 분들은 팔을 돌리시고 (나를 보며) 안 배우신 분들은 두 팔을 쭉 뻗어서 하라고 하셨다. 두 손을 겹쳐서 'ㅅ' 모양을 만드는 거구나, 설명은 못 들었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거북이 등은 등이 아닌 배 앞으로 차야 했다. 이번에도 떨렸다. 아까보다는 성공 확률이 조금 낮아서 더 허둥댔다. 심호흡을 하며 제대로 누워서 평화롭게 가기 위해 노력했다. 물도 조금 마신 것 같다. 내 몸이 나가는지 아닌지 느끼기가 쉽지 않았다.


매우 느리게 한 바퀴쯤 돌았을까, 선생님은 내가 팔을 너무 쭉 뻗을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선생님은 팔을 쭉 뻗으셨잖아요? 묻지는 않고 의문스러운 얼굴로 쳐다보니, 내가 손을 조금 더 물속으로 집어넣어야 한다며 손 모양을 보여주셨다.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시키는 대로 한 바퀴를 천천히 더 돌기로 했다. 반 정도 갔을 때 소리가 나서 슬쩍 보니 나머지 분들은 중간 스트레칭을 하고 계셨다. 내가 돌아오려면 한참 걸릴 테니 나를 빼놓고 하시는 듯했다. 시계를 보니 2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남은 거리도 열심히 배영을 연습하며 도착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이제 거북이 등을 달라고 하셨다. 갑자기 생명줄을 강탈당했다.. 선생님은 도토리를 찾는 다람쥐처럼, 거북이 등을 되찾는 데 매우 골몰해 보이셨다. 나의 소중한 거북이 등을 빼앗기자마자 마무리 체조가 시작되었다. 슬쩍 보니 선생님은 도구를 정리하고 어서 칼퇴하려는 모양이었다. 일찍 가야 하는 사정이 있으신가 보다. 조금 더 연습을 해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수영장을 떠나기 전에 조금 연습을 해봤다. 맨몸으로 누워보기! 몸이 마구마구 흔들리며 좌우로 기울었고 지난주에 그랬던 것처럼 획 하고 뒤집어졌다. 자유형 팔 돌리기를 처음 할 때 몸이 막 흔들렸던 것처럼, 배영도 처음 할 때는 몸이 흔들릴 수밖에 없나 보다. 결국 끝없는 연습을 통해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요령은 있어도 왕도는 없었다. Only practice makes perfect. That's all.


다른 날보다 여유로운 수업이다. 사람 수도 적은데 수업 진도도 느려서 토요일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즐거운 수영을 더 배우고 싶다. 아무래도 6월까지는 계속 수영을 다녀야겠다. 내 몸 속에 흐르는 우울감의 농도를 더 낮추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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