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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리께 Aug 19. 2022

바다의 풍경

《Santander, SPAIN》







 9월의 어느 날, 스페인 북부의 산탄데르_Santander에 도착했을 때 예약한 숙소가 고속도로의 진입로 쪽에 있는 모텔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창 밖 풍경이라곤 달리는 차들 뿐이었고, 창을 열면 매캐한 연기가 안으로 들이찼다. 주변이랄 것도 없이 휑한 곳이어서 뭔가를 하려면 한참을 걸어 나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래도 배낭을 둘 곳이 있어 마음이 놓였다.

 낯선 곳에 도착하면 나는 숙소부터 잡았다. 숙소에 짐을 풀면 그다음 일들은 수월하게 진행됐다. 비록 숙소지만 며칠간 나의 집이나 다름없으니 밖에서 길을 잃어도 겁나지 않았다. 집으로 되돌아오면 되니까 말이다.

어릴 때 밖에서 큰일을 당하더라도 집에 오면 마음이 진정됐다. 터벅터벅 걸어오면 엄마와 누나들이 반갑게 나를 맞아줬다. 한 상 가득 차린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얘기하다 보면 낮에 있었던 큰일 따위는 금세 잊혔다. 모든 물건이 내 손에 닿고 내 예상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마음을 편하게 했다. 여러모로 집은 나에게 평화로운 곳이었다. 비슷한 이유로, 여행 중 불쑥 찾아오는 외로움이 '그럼에도 숙소에 돌아간다'라고 생각하면 많이 수그러들었다. 보잘것없는 숙소라도 나의 집과 같았다.




 차들이 쌩, 쌩 달리는 도로 가쪽에 붙어 한참을 걸었더니 엘 사르디네로_El Sardinero 해변이 나왔다. 예부터 왕족이 찾은 바다답게 물빛이 맑고 푸르다. 햇빛은 가득히 쏟아졌다. 반짝이는 모래 위에서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떠들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까지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 정겨운 풍경 사이에 누워 나는 일광욕을 즐겼다. 선글라스 아래로 집과 가족과 친구들을 떠올리다가 이따금 행복의 열기에 치여 몸이 뜨거워질라치면 바다로 풍덩 뛰어들었다.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깊이...

나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으니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도 괜찮겠지. 열기를 피해 나는 파란 바다 깊숙이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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