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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리께 Aug 19. 2022

정면을 비켜선 생활들

《London, UK》







 우선, 나의 런던 달방을 소개한다. 방 하나 나 혼자 오롯이 사용하고 주방과 화장실은 여럿이 쓰는 형태. 침대와 책상 사이를 간신히 지나다니는 넓이의 방은 서울이라면 작은 방 두 개를 얻었을 돈을 월세로 지불한다. 그 외에 단칸 옷장이 있고 바닥엔 회색빛 카펫이 깔려 있어 맨발로 생활이 가능하다. 난방은 라디에이터로 작동되며 속옷이나 양말은 밤에 손빨래를 한 후 여기에 얹어놓으면 다음날 입을 수 있다. 달방에는 큰 창이 있고, 창 너머에 작은 나무가 있는데 아무래도 그곳은 새들이 모이는 장소였는지 아침마다 새소리가 요란하다. 알람보다 정확한 시각에 시작되는 그 소리에 나는 새들을 욕하며 눈을 뜨곤 했지만 때때로 비가 내리는 아침에는 새들이 없어서 조용함을 누릴 수 있었다. 새소리도 아침마다 들으니 소음이고 곤욕이다. 기존 생활을 크게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가끔의 행복'이 딱 좋은 것 같다. 나는 당분간 런던_London에서 '생활'이라는 것을 할 것이다.




 살면서 나에게는 몇 번의 '생활'이 펼쳐졌다. 직전에 살았던 광고인으로서의 생활은 척박했다. 야근은 당연했고 새벽과 주말에도 쉼 없이 일을 했다. 아이디어를 제때, 그것도 많이 내야 하는 카피라이터는 퇴근 후에도 프로젝트를 잊지 않고 붙들고 있어야 했다.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로 간신히 붙잡았던 밤은 참으로 길었고 약속을 취소하는 일도 잦다 보니 친구들과의 사이도 소원해졌다. 변변찮은 월급이지만 통장에 쌓이는 돈을 보며 모든 직장인들의 생활이 이런가 보다 하며, 잔말 없이 생활 속에 나를 욱여넣었다.

 런던은 외식비가 비싼 반면 식재료는 저렴한 편이어서 웬만하면 만들어 먹는다. 내 몇 번의 '생활' 중에는 고등학교 때부터 해온 자취생활이 있다. 나는 돈 없던 청년시절을 나 스스로 먹이며 지내온 생계형 요리사다. 어쩐지 '요리'라 부르기 민망한 것이, 내 음식의 맛은 재료의 종류나 조리의 형태에 구분 없이 늘 비슷했다. 집에 구비된 고만고만한 양념들을 사용하는 까닭이다. 한 번은 집에 놀러 온 친구가 여러 음식을 뚝딱 만들어내는 나를 보고 신기해했지만 막상 음식을 먹어보고선, 영혼 없는 맛이라며 놀린 적이 있었다. 달리 생계형 조리가 아니다.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맛만 있어도 충분한 생활이었다.

 하지만 런던 생활에서는 '요리'를 한다. 나는 매일 아침 양파를 깠다. 까면서 매워서 울었다. 요리의 단맛을 내기 위해 양파는 어떤 요리를 하든 필요하다. 껍질을 깔 때 온 신경이 손과 눈으로 집중되는데 감각이 바빠질수록 몸과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져서 요리하며 나는 정서적인 위안을 얻는다. 재료를 다듬고 조리하는 과정을 통해 생활에 애착이 생기고 내 손으로 나를 살뜰히 먹여 살린다는 뿌듯함이 생기기 때문에 런던 생활에서는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들어 먹을 생각이다.




 낮에는 해가 났다. 공기는 습하지 않고 금세 뽀송뽀송해졌다. 런던의 4,5월은 누구나 시인으로 만들만한 날씨가 이어진다. 잔뜩 흐려진 마음도 밖을 거닐면 금세 뽀송뽀송해진다. 밥을 먹고 나는 달방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공원, 햄스테드 히스_Hampstead Heath로 산책을 나가본다. 연못 주변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고 그중에는 물속에서 헤엄을 치는 학생들도 보인다. 아무리 볕 좋은 5월이라도 물은 차가울 텐데 어린 친구들은 일광욕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여름이 되면 나도 저 틈에 끼어 연못에 몸을 담가봐야겠다. 물론 담수엔 몸이 뜨지 않으므로, 튜브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곳의 속도는 서울의 그것과 다름을 느낀다. 구름의 속도로 사물이 움직이고, 잔디가 자라는 속도로 사람들은 살아간다. 아이스크림의 토핑으로 딸기를 주문했지만 석류가 얹어져 나오거나(Strawberry Pomegranate 어째서 다르게 들릴  있는지 아직도 의문이긴 하지만) 플랫화이트의 F와 WH의 발음을 제대로 못해 커피 한잔 사 먹지 못하는 때보다 내가 정말 다른 생활권 속에 살고 있구나,라고 실감하는 순간은 그들과 비교해 내 생활의 속도가 빠름을 느낄 때다. 등짝에 땀이 흐르는 속도로 걷는 나는 걸음을 오로지 이동의 수단으로 여길뿐, 길 양쪽으로 무슨 꽃이 피었고 어떤 가게가 새로 들어섰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탓에 무심한 편이란 얘기를 자주 들었다. 비슷한 경우로, 누군가와 함께 걸을 때면 속도를 맞춰 좀 천천히 걸을 수 없냐는 원망을 듣기도 했다. 옆을 둘러볼 틈을 만들지 않았던, 딱 그만큼의 속도가 어쩌면 타인과 나 사이 채워지지 않았던 마음의 간극이었던 것 같다. 새소리나 한 줌의 바람처럼, 가끔의 행복이 내 생활에도 생길 수 있도록 여기서만큼은 다른 속도로 살아보고 싶다. 우리의 생활은 정면으로만 놓여있는 게 아닐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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