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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당당하고 유쾌하신 우리 시어머니

저 웃겨서 숨넘어가요!

by 혜연

전날 열심히 다녔으니 오늘 오전은 호텔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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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뜨자마자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발코니 전망.

아... 나 여기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 여보 나 안 돌아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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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때마다 느낌이 다른 저 뒷산.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까까머리산을 보면서 오늘은 가본 적도 없는 마추픽추를 떠올려보았다.


아하! 신나는 조식시간이 왔구나!


옆방에 계신 시부모님께 [저 준비 완료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시부모님께서 잠시 후 내 방문을 노크하셨다. 매일 이런 식으로 우리는 함께 레스토랑으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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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과일 한 접시를 담아왔더니 어머님께서 놀래셨다.


"너 오늘 그거만 먹을 거니?"


"설마요..."


나는 곧 두 번째, 세 번째 접시도 날아왔다. 골고루 먹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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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과 함께 있던 추로스가 먹음직스러워서 내가 하나 먹으려고 했더니 어머님께서 이런 거(?)는 먹지 말라고 하셨다. 밖에서 갓 튀긴 맛있는 걸 사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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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수영복 미리 챙겨 왔어요. 수영장에 자리 맡아놓고 기다릴 테니 두 분은 천천히 내려오세요."


식사 후 나는 느긋하게 수영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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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월을 세 개 받아와서 해가 잘 드는 자리에 썬배드 3개를 맡아놓고 가운데자리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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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좋구나... 배경도 예쁘고 물빛도 좋고... 그런데 왜 아무도 안 내려오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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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이 지나서야 내려오신 시어머니의 표정이 너무 시무룩하셨다.


"나... 수영복 아랫도리를 못 찾았어... 안 가져왔나 봐.... 그래서 윗도리만 입고 왔어."


아...


시무룩한 표정으로 썬배드에 누우시는 시어머니의 복장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나는 숨이 넘어갈 듯이 웃어버렸다. 수영복 상의만 입으신 채 밑에는 어머님이 애정하시는 고무줄바지를 당당히 입고 오신 것이다. (그동안 나는 저 수영복이 원피스라고 생각했는데 위아래 분리된 투피스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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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친 듯이 까르르 웃으니 시엄니께서는 같이 좀 웃으시다가 나더러 메샹이라고 하셨다.

근데 웃음이 멈추질 않는걸요... 시무룩하신 표정과, 수영복 상의와 함께 밑에는 저 바지까지... 아이고 배야!


"저 사진 한 장만 찍게 해 주세요."


"뭐 하려고?"


"남편한테 보내게요!"


나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이미 찍어서 보내고 있었다. 사진을 본 남편도 웃겨 죽는다.


"걔가 뭐라고 하디?"


"어머님 수영하실 때 쉽지 않겠대요."


"나 수영장은 안 들어갈 거야."


말씀은 그렇게 하시면서 선크림은 왜 그리 듬뿍 바르시나요. 선크림을 꼼꼼히 바르신 어머님은 썬배드에 도로 누우시면서 말씀하셨다.


"이따 나가서 수영복 사러 가자."


"밑에만도 파나요?"


또 웃음이 터졌다.


"검은색 팬티만 사도 되고... 감쪽같을 거야."


아 저 숨넘어가요 어머님!


어머님께서는 잠시 후 그 복장으로 잠이 드셨고, 나는 고개를 돌릴 때마다 잠든 시어머니의 표정이 시무룩해 보이셔서 계속 웃었다. 어머님을 배경으로 셀카도 여러 장 찍어서 남편에게 보냈다. (나중에 그 사진들을 보신 어머님께서도 엄청 웃으셨다.)


그나저나, 나는 오랜만에 수영을 했더니 숨이 어찌나 차던지, 체력이 많이 떨어졌나 보다. 금방 지쳐서 물밖로 나와야만 했다.


"저 열 바퀴가 목표였는데 네 바퀴밖에 못 돌았어요. 너무 힘들어요. 에고고..."


"잘했다. 오늘 네 바퀴 돌고 내일은 두 바퀴 그리고 모레 또 두 바퀴 돌면 되겠네."


"그럼 되겠네요! 솔로몬이셔요!"


잠시 후 아버님께서도 내려오셨는데, 야자수 그늘이 드리운 자리에 기대앉아 한참 동안 노트북을 보고 계셨다. 아버님? 어머님 복장 보셨나요?


이날 어머님 덕분에 내가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이번 여행을 통틀어서 가장 많이 웃은 날이다.


아! 참고로 어머님께서는 다음날 수영복 아랫도리를 찾으셨다며 매우 기뻐하셨다! 역시 행운의 여신이 그녀와 함께 하는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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