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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13. 2023

프랑스 장관을 만나게 되었다.

프랑스에 오니 재미있는 일이 참 많구나

며칠 전 아침 등굣길에 무지개를 마주쳤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저 무지개를 보고 감흥을 느끼는 사람은 나 한 사람뿐인 듯했다. 그럼 저 무지개는 오직 나를 위한 무지개인 것이다! 

무지개야, 오늘 나를 위해 좋은 소식을 들려줄 거니? 

과연 학교에 갔더니 소식이 하나 있긴 있었다. 

로렌지역을 방문 중인 프랑스 교육부 장관(정확히는 고등교육 담당관 이라던가?)이 이곳 낭시에 있는 로렌대학교에도 방문할 거라는 소식을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것이다. 

"외국인 학생들을 대표에서 두세 명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하는데, 우리 반에서 정하면 좋을 것 같아요. 누가 가면 좋을까요?" 

사실 우리 반 위에 최고 고급반이 있는데 웬일인지 우리 반에서 정하자고 하셨다. 내 친구 A가 제일 먼저 나섰고 다음 신청자가 없길래 그럼 내가 함께 가겠다고 말했다. 좋은 기회니까! 선생님께서는 나더러 잘 생각했다고 하셨다. 이번이 나에게는 두 번째 학기니까 들려줄 이야기도 더 많을 거라고 하시며. 


"그냥 느낀 점만 말하면 돼요. 프랑스에서 외국인학생으로서 어려웠던 점들이 있으면 말하고요." 




그날 시댁에 들렀다가 나는 시부모님께 이 사실을 자랑했다. 


"얼마 전에는 반대표로도 선출되더니 이제는 프랑스 장관도 만나는구나! 너 다음에는 프랑스 대통령에 출마해야겠다!" 

"그럼 프랑스 국적을 취득해야 될 것 같은데요. 대통령 전에 낭시 시장에 먼저 나가볼게요." 

"그래그래! 시장 먼저! 국적도 꼭 취득해야겠다!" 




그날이 왔다. 프랑스 장관을 만나는 날. 

친구 A와 함께 회의실이 있는 건물로 찾아갔더니 친절한 중년여성 한분이 우리를 맞아주시며 회의실까지 데려다주셨다. 회의실 앞에는 인상 좋은 청년이 우리보다 미리 와 있었다. 우리와 함께 회의에 참석하는 학생 중 한 명인가 보다. 


이 청년은 콜롬비아인인데 본국에서 공부를 하다가 로렌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고 한다. 현재는 학교 연관기관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고 내년에는 칠레로 근무지를 옮길 것 같다며 유창한 프랑스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잠시 후 우리를 안내해 주셨던 중년여성께서 또 다른 청년과 함께 나타나셨다. 그 청년은 방글라데시에서 왔는데 프랑스어는 못한다며 내내 영어로만 얘기했다. 로렌대학교에서 영어로 석사과정을 마쳤고, 현재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직장도 영어로만 소통하고 있다고 했다. 

중년여성께서는 우리에게 선물상자를 하나씩 나눠주셨다. 선물이다! 안에 무엇이 들었거나 간에 이 선물 상자하나로 나는 오늘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환영상자! 그 속에는 유용한 아이템들이 들어있었다. 텀블러, 컵, 우산, ubs 그리고 천가방.

그 중년여성은 나와 A에게 본인도 로렌대학교에서 어학연수를 했다고 말했다. 

"나이지리아에서 프랑스로 들어온 게 86년도였어요. 그때 나도 여러분처럼 여기서 프랑스어를 배웠지요. 그때 만났던 반친구들은 지금까지도 연락하며 지낸답니다!" 

와... 그 세월 동안 우정을 이어온 것도 대단하고, 그 세월 동안 프랑스에 완벽하게 적응하신 모습도 나에게는 인상적이었다. 



잠시 후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생각보다 회의실분위기가 너무나 무거워서 급 긴장되기 시작했다.

Ministère de l'Enseignement Supérieur라고 소개받으신 분은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중년남성이셨다. 프랑스에 유학 오는 외국인 학생들 관련 업무도 담당하시는 듯했다. 

잘생긴 장관님 옆에는 인턴이라고 소개받은 청년이 회의 내내 컴퓨터에 회의내용을 받아 적고 있었고, 로렌대학교 외국인 학생들을 담당하는 듯한 여성 두 분도 와계셨다. 

우리는 무거운 분위기에서 각자 자기소개를 했고, 회의가 시작되었다. 

근데 그 분위기 속에서 방글라데시 청년은 "죄송한데요? 제가 못 알아들으니 영어로 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라고 당당하게 발언해서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대단하다... 

그 청년은 초반부터 (아직 아무도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외국인 학생들이 초반에 겪는 어려움들을 줄줄 읊었다. 

"처음 휴대폰 심카드를 구매하는 것도 은행계좌를 오픈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에요. 전화번호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말이에요!" 

"하지만 학교 측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잖아요. 특정 은행을 지정해 주는 것도 안될 일이고요." 

학교 측의 방어적인 답변을 듣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준비해 온 유학생들의 어려움들을 오늘 모두 전달하기는 힘들겠다는 사실을. 그래도 여러 학생들이 꼭 말해달라는 부탁했던 비싼 외국인 학생들의 학비 얘기는 전달했다. (현지인들은 거의 공짜로 다니지만 외국인학생들의 학비는 너무 비싸다.) 하지만 학교 측은 "프랑스 다른 대학교들에 비하면 저렴하답니다."라고 답변을 일축했다. 

방글라데시 청년은 여전히 유학생들의 초기 어려움을 설명했다. 

"저는 다행히 프랑스인 남자친구가 있어서 그가 모두 도와주었어요.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저처럼 현지인의 밀착된 도움을 받질 못하지요. 제 파트너를 공유할 수도 없잖아요." 

"어우 당신의 남자친구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 큰일 나지요!" 

이 부분에서 다들 크게 웃는 바람에 무겁던 회의실 분위기가 꽤 가벼워졌다. 

학교에 대한 좋은 이미지만 장관에게 보여주겠다는 학교 측의 강한 의지가 틈틈이 느껴졌다. 그러한 의지로 그들은 철저히 학교편인(?) 콜롬비아 청년을 미리 섭외했던 모양이다.

"너 장관님께 그때 그거 말씀드려."라고 부추기며 콜롬비아 청년 혼자서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게 만들었다. 

"재작년에 큰 교통사고를 겪었거든요. 그때 마침 코로나 봉쇄기간이었고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많았어요. 학교 측에서 도와주신 덕분에 무사히 치료도 받고 콜롬비아에 계신 부모님도 프랑스에 오실 수 있으셨어요. 정말 로렌대학교에 얼마나 감사하는지 모른답니다." 

콜롬비아 청년은 처음 프랑스에 왔을 때 학생들이 하루 8시간씩 가만히 앉아서 주입식 수업을 듣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살짝 내 집중이 흐트러지고 있을 때였는데, 장관께서 나를 보시면서 갑자기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셨나요?"라고 돌발질문을 하셔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국도 그런데요... 더한 것 같기도 하고요..." 

"한국은 더하다고요?" 

"제가 고등학생일 때는 밤 10시까지 의무적으로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해야 했어요. 요즘은 바뀌었지만요." 

내 말에 회의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내가 괜한 소릴했나... 우리나라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를 심어준 것 같아 좀 후회가 된다. 


회의가 모두 끝난 후 우리는 (남편이 미리 예언한 대로) 단체사진을 찍었고 장관님은 파리로 돌아가는 기차가 기다리고 있다고 하시며 급하게 떠나셨다.


회의 자체도 흥미로운 경험이었고 손에 묵직한 선물상자 때문에 기분이 더 좋았다. 

프랑스에 오니 재미있는 일이 참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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