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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13. 2023

이번에는 모로코 친구가 만들어준 원조 쿠스쿠스!

맛과 영양 그리고 비주얼까지 완벽했다!

2022년 12월. 

프랑스어 델프시험을 치른 바로 다음날 모로코 친구는 우리 반 친구들을 점심식사에 초대해 주었다. 


보통 친구집에 식사초대를 받으면 와인이나 샴페인등을 가져가곤 했는데, 이 친구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으니 고민이 되었다.  


[갈 때 나 뭐 가져갈까?]


[아무것도. 단 한 가지 준비물은 텅 빈 위장! 쿠스쿠스 엄청 많이 만들고 있으니까 와서 다 먹어야 돼.]


[그래, 나는 그럼 텅 빈 위장만 가져갈게!]


그렇게 말해놓고 나서 나는 얼른 나가서 사온 화분을 하나 사 왔다. Grande étoile de Noël, 즉 크리스마스의 큰 별이라는 이름의 식물인데 새 빨간 잎이 크리스마스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렸다. 


친구네 집 도착! 


나는 도착하자마자 그녀의 새를 가장 먼저 찾았다. 친구가 종종 남기는 음성메시지에는 항상 이 녀석이 꽥꽥거리며 소리를 지르고 있어서 한 번쯤 꼭 만나보고 싶었다. 이 녀석은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내내 시끄럽게 우리를 방해했다. 

뒤늦게 도착한 카자흐스탄 친구가 살벌한 새소리를 듣더니 벌떡 일어나서 새장으로 달려갔다.  


"가서 목 조르는 거 아니겠지?"


"어디 테이프 같은 걸로 입을 잠깐 붙여놓으면 안 되나?" 


"나 여기 끈 있어! 이거라도 가져가볼까?"


우리 농담을 들은 모로코 친구는 자기는 새소리에 하도 익숙해져서 평소에 아무것도 안 들린다고 했다. 


그게 가능한가?


"근데... 네 남편 힘들겠다.


"맞아, 안 그래도 네가 말이 많아서 두통약까지 먹는다며... 새까지 저러면 어째...


스므살의 그녀는 2년 전 모로코에 여행 온 프랑스인 남편을 처음 만나 6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고 그 후 남편을 따라 프랑스로 왔다고 한다. 평소에도 말이 엄청 많고 흥이 넘쳐서 가끔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는 "나 말 많지. 우리 남편도 맨날 나 때문에 두통약을 먹을 정도야."라고 말하곤 했다. 말이 많기는 하지만 사랑스러운 그녀의 매력은 누구도 거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잠시 후 그녀는 커다란 접시에 담긴 모로코식 쿠스쿠스를 내왔다. 

  

"모로코에서는 쿠스쿠스를 먹을 때 항상 요거트를 함께 마셔."

 

우리는 각자 요거트를 한잔 가득씩 따르고 차례로 접시에 쿠스쿠스를 덜었다. 그러고 나서 소고기와 야채를 삶은 육수 쿠스쿠스 위에 한국자씩 뿌려서 촉촉하게 먹었다.

소고기가 얼마나 연하고 쫀득한지 환상적이었다. 쿠스쿠스는 요거트와 정말 잘 맞았고 푸익힌 당근, 주키니, 가지도 모두 환상적이었다. 맛과 영양 그리고 비주얼까지 완벽했다!



그녀는 우리가 커다란 접시에 있던 쿠스쿠스를 다 비웠을 때 부엌에서 또 한차례 가져와서 더 먹으라며 무섭게 말했다. 우리는 결국 그녀가 무서워서 또 먹었다. 


"사실 모로코에서는 식구들이랑 먹을 때 그냥 다 같이 이렇게 손으로 먹어." 


그녀는 마지막에 직접 손으로 먹는 시범까지 보여주었다. 


우리를 배불리 먹이는 데 성공한 친구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이번에는 흥겨운 아랍음악을 틀었고 다들 홀린 듯이 일어나서 그녀를 따라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야야 왜 이래 갑자기...


다들 맨 정신에 춤을 잘도 춘다. 

재미있는 점은 국적별로 춤사위가 다 다르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아랍계 친구들은 엉덩이가 왜 이리 예쁜지!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 씰룩여봐도 내 엉덩이는 상대적으로 초라하다.


"이래서 우리 남편이 같이 옷 사러 갈 때마다 나더러 맨날 엉덩이를 집에 놓고 왔냐고 하는 거였어..."


내 말에 친구들이 포복절도를 했다. 



필리핀 친구가 가져온 사과타르트를 차와 함께 후식으로 먹으며 우리는 그녀의 결혼식 사진들을 감상했다.


"이렇게나 예쁜데... 히잡을 안 한 사진이라 벽에 걸 수도 없는 거지? 남자방문객들이 보면 안 되니까?" 


히잡을 안 쓴 사진은 여자친구들이나 가족들만 볼 수 있다고 한다. 시리아 친구 말로는 그런 이유로 침실에만 결혼사진을 은밀하게(?) 걸어두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평소에도 프랑스어로 대화하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항상 습관적으로 모로코 친구에게 물어본다. 원래 말하는 걸 좋아하는 그녀인지라 설명을 참 잘해주는데 내가 배운 걸 금방 써먹는 모습을 보면 흐뭇한 표정으로 "Voila!" 하면서 웃는다. 


"난 네 덕분에 Voila라는 표현이 익숙해졌어. 나도 이제는 부알라!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아, 나는 너한테 en revanche라는 표현을 처음 배워서 아직도 안 까먹고 써먹고 있잖아." 


우리는 결국 서로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며 한 학기 동안 함께 성장했다.


"아 오늘 모임 너무 훈훈하고 유익해." 


"웃기기는 얼마나 웃기고!" 


"그리고 또 정말 맛있게 먹었지!"


"응, 쟤가 하도 무서운 얼굴로 협박해서 결국 과식했지만..."


이 좋은 친구들과의 귀한 인연이 오래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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