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가장 즐거운 피크닉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핀란드 친구의 유년시절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by 혜연

2023년 5월 6일 토요일.


나는 오늘 우리 반 친구들과 페포니아 공원에서 피크닉을 하기 위해 모였다.


페피니에 공원은 스타니슬라스 광장 바로 옆에 붙어있는 큰 공원인데 작은 동물원과 어린이용 놀이기구들도 있어서 가족 단위로 많이 찾는 곳이다. 특히 이날처럼 주말이고 비가 오지 않는 날이라면 더더욱 인파로 붐빈다.


돗자리 생각은 아무도 못했는데 우크라이나 소녀가 너무도 예쁜 돗자리를 촤르륵 펼쳤다. 그리고 그 위로 마구 쏟아지는 음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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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에도 참치김밥을 싸왔고 중국인 친구는 만두 (슈퍼에서 샀다고 이실직고했다.) 그리고 이란 친구는 닭고기와 감자가 들어간 이란식 요리를 준비해 왔다. 그 외에도 음료수, 과자, 디저트, 과일 등등 다양한 음식들이 계속해서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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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더 많은 친구들이 모였다. 우리 반 친구 외에도 내가 초대한 영국인 소녀 외에도 미국인 친구가 그녀의 언니와 함께 와 주었는데 모두들 어색함 없이 즐겁게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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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내 참치김밥을 너무 좋아해 주었다. 종강파티 때도 김밥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에 기분이 내심 뿌듯했다. 나는 자칭 김밥 전문 가니까 문제없다.


잠시 후 우크라이나 소녀가 디저트를 만들어왔다며 은박용기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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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내가 직접 만든 치즈케이크이야. 1인당 두 개씩 넣었어."


언뜻 호떡같이 생겼는데, 막상 한입 베어무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속은 새하얗고, 식감은 꾸덕하고, 너무 맛있는 치즈 케이크이었던 것이다!

평소 반에서도 말수가 거의 없고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었는데, 돗자리와 정성스러운 디저트까지 준비해 와서 이렇게나 많이 웃고 함께 어울려주니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내가 초대한 영국인 친구도 디저트를 준비해 왔다. 마카롱과 작은 케이크들이었는데 역시나 정말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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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불리 먹고 난 우리는 우노게임을 했다. 웃긴 건 나라마다 룰이 조금씩 달라서 서로 우기는 모습이 정말 웃겼다. 마치 지역별로 고스톱 룰이 달라서 우기는 모습과 흡사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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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많은 인원이 다 함께 우노 게임을 하는데, 미국인과 콜롬비아 친구 두 명이 현란하게 카드 섞는 기술을 선보이고, 조용히 있던 중국인 친구와 세네갈 친구가 갑자기 게임 중에 흥분하는 모습도 너무 웃겼다. 일본인 친구는 소리 없이 강했고 그 옆자리 친구는 터가 안 좋다며 계속해서 자리를 바꿔줄 사람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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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쯤 다 되었을 때 레스토랑에서의 주말 근무를 마친 베네수엘라 커플이 예쁜 케이크를 소중히 들고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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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파티셰인 그들은 제대로 된 케이크를 만들어 왔다. 이거 만드는데 3시간이 걸렸다고 하길래, 일전에 홍콩 친구생일 때는 이틀이나 걸렸으면서 내 생일 케이크는 대충 만들었냐며 농담을 했다.


"아 그건 그녀가 피나콜라다를 좋아해서 재료를 신경 쓰느라 오래 걸렸어. 맛은 이게 더 좋을지도 몰라. 속에는 다크초콜릿이 흐르고 겉에는 화이트 초콜릿으로 장식했어."


오 진짜 전문가였구나.


이번에도 우리는 생일축하 노래를 각국의 언어로 여러 개 불렀다. 영어-프랑스어-중국어-포르투갈-한국어-이란. 이번에도 한국어로 노래를 부를 때는 여러 명이 같이 불러주었다. 한류의 힘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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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처럼 가운데를 먼저 동그랗게 자르는 베네수엘라 친구. 대신 이번에는 저 가운데 동그란 조각은 내 차지가 되었다. 왜 최고의 부위라고 하는지는 초콜릿이 촉촉하게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프랑스식 케이크만 먹다가 한국케이크와 비슷한 식감의 케이크를 오랜만에 먹으니 너무 좋았다. (마지막에 케이크 한 조각이 남길래 그건 내가 남편을 위해 싸왔다.)




"한국에서 먹는 음식 중에 가장 기괴한 게 뭐야? 베네수엘라에서는 개미로 이런 소스도 만들어. 병에 담아서 슈퍼에서도 흔하게 파는데, 톡 쏘는 맛이 일품이지."


나는 지지 않겠다는 의지로 한국의 번데기와 산 낙지를 알려주었다.


"산 낙지는 통으로는 절대 먹지 않아. 잘게 잘라서 먹지. 절대 오해하면 안 돼."


서로 돌아가면서 각국의 신기한 식재료들을 소개했는데, 핀란드와 영국 이중국적을 가진 내 친구가 말을 시작했을 때는 모두들 압도되고 말았다.


"음... 핀란드에서는 곰을 먹어."


뭐시라?


그녀는 웃는 얼굴로 계속해서 놀라운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이어갔고 우리 모두는 입을 벌린 채로 그녀가 하는 말에 빠져들었다.


"나는 핀란드에 살 때, 멀지 않은 곳을 갈 때는 주로 내 말을 타고 나가는데..."


"잠깐만, '내 말'이 있다고?"


"응, 우리 집에 농장이 있거든. 핀란드에서는 전혀 특별한 게 아니야. 아무튼 나는 내 말과 함께 숲에 나갔다가 곰과 대화도 해봤어."


"...... 곰이 뭐래?"


"대화가 확실해? 말의 의견도 궁금한데..."


감탄과 웃음이 뒤섞였다.


그녀는 영국인 아버지와 핀란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핀란드 대자연에서 유년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어린 나이(21살)와 어울리지 않게 성숙하고 친절하다. 말을 타고 숲을 달렸을 그녀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니 부럽기도 하다.


"곰과 오래 대화하지는 못했어. 왜냐면 그때 다른 사람들 소리가 나서 곰이 가 버렸어. 위협적인 모습이 아니라서 전혀 무섭지는 않았어."


"그래서 그 곰을 먹었다고?"


"하하하 그 곰이 아니라, 다른 곰. 핀란드에서는 이웃에서 누군가가 곰을 한번 사냥하면, 곰이 엄청 크잖아, 절대 혼자 못 먹고 다 같이 나눠먹거든. 바비큐 해서 먹기도 하고 뭐 레시피는 다양해. 마트에 가도 곰고기 팔아."


와... 어나더레벨이다.


"핀란드에서는 곰말고도 무스도 먹어. 몸집 정말 거대하고 뿔도 이만한 사슴종류 알지?"


"산타랑 일하는 애?"


"아니, 루돌프 말고. 겨울왕국에 나오는 애 있잖아. 안나 남자 친구랑 다니는 애."


"아니 그걸 먹는다니! 유튜브에서 봤는데 엄청 거대하던데!"


"맞아, 그건 정말 위험해서 한두 명의 사냥꾼으로는 절대 못 잡아."


들으면 들을수록 재미있는 핀란드이야기였다.


"나 사촌이랑 둘이서 어릴 적에 숲 근처에 갔다가 엄청 큰 무스랑 맞닥뜨린 적이 있었어. 다행히 우리를 못 보고 우리 앞을 지나가는 줄 알았거든? 사촌동생이랑 숨소리도 못 내고 가만히 서있었는데, 얘가 지나가면서 눈을 천천히 우리 쪽으로 돌리는 거야!"


"끼약!!"


"다행히 그때 차소리가 나서, 도망가더라. 진짜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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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먹고 마시고 게임하고 과자 먹고 케이크 먹고 수다 떨고 웃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 벌써 6시간 넘게 앉아있었다.


내 생애 최고의 피크닉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많이 먹고도, 웃느라 소화를 금방금방 시킨 기분이랄까. 평소 반에서 소극적이던 친구들까지 모두 적극적으로 어울려서 더 특별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내가 찍은 사진들을 단톡방에 공유했는데, 오늘 너무 즐거웠다는 친구들의 메시지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역시 다들 나만큼 즐거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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