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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19. 2023

말릴 수 없는 우리 시어머니의 행복

2021년 3월 13일


동네 리들에 수비드 포장 비닐을 사러 갔다. 3개를 사면 하면 하나를 더 주는 행사였는데 워낙 세일이 흔치 않은 품목이라 시어머니를 위해서 4개를 더 담았다. 시댁에서도 수비드는 자주 해 드시니까 분명 필요하실 것이다. 비록 대단한 건 아니지만 뭔가를 해 드릴 수 있다는 게 기쁘다.



집에 돌아와서 시어머니께 바로 메시지를 드렸다. 혹시라도 리들에 가셔서 수비드 포장비닐을 또 사러 가실까 봐 내가 시어머니 것도 샀으니 갖다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매우 고마워하셨다. 그리고 1킬로짜리 돼지 필레를 사 온 것도 어머님께 반을 나눠드리기 위해 잘라서 담았다. 쌍쌍바처럼 친절하게 반씩 나누어 포장이 되어 있으니 나눠먹어야지. 


그리고 나는 꽃이 다 져버린 히아신스 화분들도 챙겼다. 시아버지께서 시댁 히아신스들을 정원에 심으시는 걸 봤는데 이것도 같이 심어달라고 미리 말씀드려 놓았던 것이다.



평소에는 시댁에 갈 때 빈손으로 가거나 고작 빈접시나 그릇들을 가져가는 게 보통인데 오늘은 이것저것 담으니 짐이 커졌다. 사실 히아신스 화분들도 시어머니께서 사주셨던 것들인데 꽃이 다 져서 되돌려 드리는 거니 빈그릇들과 신세가 그리 다르지는 않다. 오히려 일거리를 더 드리는 거구나. 해맑게 갖다 드려야겠다...



시댁 가는 길에 하늘에 새들이 그룹 지어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보기 좋았다. 


시댁에 갔더니 모웬의 표정이 마치 '쓸모없는 것들을 다 들고 왔네...'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녹차를 가지고 거실 테이블로 돌아왔더니 시부모님께서 테이블 위에 돈을 올려두신 게 보였다. 수비드 포장비닐값인가 보다. 그리고 돈 아래 작은 상자는 자서방이 좋아하는 미트파이 (pâté à la viande)가 놓여 있었다. 시아버지께서 아침에 나가셨다가 내가 온다는 말을 듣고 우리를 위해 사 오신 것이다. 


돈은 안 가져갈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시어머니께서는 그럼 돼지고기 필레를 도로 가져가라고 하셨다. 그래서 일단은 아무 말하지 않고 녹차를 마셨다.  


어머님께서는 지하실에서 볼로네제소스와 토마토소스를 갖다 주셨다. 그러고 나서도 부족하셨는지 부엌 찬장을 활짝 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자... 또 뭘 줄까..."



결국 피자소스와 고등어캔도 얻었다. 



커피캡슐은 우리도 최근에 많이 주문했다고 말씀드렸지만 그냥 주고 싶어서 주시는 거라고 하셨다.


"요용 넌 왜 맨날 여기 와서 장 보고 가냥..."



차를 다 마신 후 봉지에 담아주신 것들을 묵직하게들고 시댁을 나서는데 눈치 빠르신 시어머니께서 거실로 가셨다가 돈이 그대로 있는 걸 확인하셨다. 일부러 내가 의자 위에 숨겨놨던 건데! 어머님은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슬쩍 내 주머니에 돈을 넣으셨는데 나는 알고도 모른 척을 했다. 현관을 나가면서 나는 그 돈을 꺼내 신발장위에 올려놓고 잽싸게 빠져나왔다. 성공한 줄 알았는데 대문을 열고 나오다 보니 봉지 안에 돈이 어느새 들어있네? 어떻게 하신 거지? 대문 밖에서 내가 황당한 표정으로 돌아보니 현관에 서계시던 시어머니께서 큰소리로 웃고 계셨다.


"전 받기 싫어요. 맨날 이렇게 받기만 하는데 저는 왜 못 드리나요." 

내가 살짝 볼멘소리로 말씀드리자 시어머니께서는 손키스를 날리시며 애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외치셨다.

 "마 셰리(Ma cherie), 이러는 게 나에게는 행복이란다. 날 그냥 행복하게 해 다오!" 

그 말을 들은 나는 그저 감사의 인사와 함께 손을 힘차게 흔들어 드렸다. 묵직한 봉지 속에 시어머니의 묵직한 애정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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