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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23. 2023

시어머니의 배 타르트와 함께 한 2021년 마지막 밤

2021년 12월 31일 


우리 부부는 2021년의 마지막 저녁을 시댁에서 보냈다.

시어머니께서는 따로 요리하신 건 없다고 하시며 가볍게 샴페인과 안주를 즐기자고 하셨다. 그거면 충분합니다요! 

자서방은 맥주를 마시고 시동생을 포함한 우리 넷만 샴페인을 마셨다. (동서는 친정오빠네서 식사를 하고 온다고 했다.) 그리고 시어머니께서는 푸아그라와 함께 바삭하게 구워진 토스트를 내오셨다. 

푸아그라맛을 느끼는 데는 이런 얇은 빵이 제격인 것 같다.

문득, 샴페인과 푸아그라에 행복해하는 내 모습을 보니 프랑스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모웬은 이 무릎 저 무릎, 자기를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지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반면 이스탄불은 그저 얌전히 앉아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누군가가 먼저 쓰다듬어주길 소심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시어머니께서는 뚜르뜨 (Tourte: 프랑스어 발음으로 뚝뜨에 가까운 것 같다.)와 하몬(Jamon)을 내 오셨다. 푸아그라부터 오늘은 죄다 자서방이 좋아하는 음식들 뿐이네. 남편의 크리스마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나 보다.

하몬은 시부모님께서 세비야 여행 중에 많이 사 오신 거라고 하셨다. 

나는 하이라고 불렀는데 다들 하이라고 발음했다. 자서방 말로는 그냥 프랑스에서 말하는 잠봉 (jambon)이랑 똑같은 건데 스페인에서는 하몬이라고 부를 뿐이라고 알려주었다. 프랑스식, 스페인식 발음에 한국식 발음까지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 되는 중이다. 

우리가 샴페인 한 병을 비웠을 때 자서방이 레드와인을 가져와서 오픈했다.

샴페인을 좋아하시는 시어머니께서는 시동생에게 샴페인을 한병 더 가져오라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프랑스에서는 샴페인을 즐길 줄 알아야 해." 


"자서방은 샴페인 안 마시는데요?" 


내가 시어머니께 말대꾸를 하고 있을 때 시아버지와 시동생 역시 샴페인보다는 자서방이 가져온 레드와인에 시선이 쏠려있었다. 

 

샤또 라뚜르 까르네 Château La tour Carnet- Grand gru classé

자서방은 우리들의 표정이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끄덕끄덕했고 우리는 레드와인 잔을 가져와서 자서방에게 차례로 배급을 받았다. 다 함께 와인을 한입 머금은 후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보르도와인을 유독 좋아하는 자서방 말로는 그랑크뤼 클라세라고 써져 있으면 맛있는 와인일 확률이 높다고 한다.

고양이들이 벽난로 앞에서 노곤하게 녹아내리고 있을 무렵 시어머니께서는 직접 구우신 배 타르트를 자르기 시작하셨다.

우와 이 비주얼은 무엇인가요! 나는 직접 구우신 게 맞냐고 두 번이나 여쭈었다.

"그럼, 당연히 내가 구웠지! 배랑 밤크림을 넣었단다. 분명 모두들 좋아할 거야."

구운 배의 식감이 상상이 안 가서 긴가민가했는데 한입 먹어보니 부드러운 밤크림과 아주 잘 어울렸다. (유럽의 배는 한국배처럼 아삭거리지 않는다.)


배와 밤이 만나서 이런 맛이 나올 줄이야! 배가 불러서 디저트는 별 생각이 없다던 자서방은 심지어 큼직하게 한 조각을 더 잘라와서 먹기도 했다. 


식사를 모두 끝낸 우리는 티브이 앞에 둘러앉아 새해 카운트다운하는 장면을 함께 시청했다. 그냥 시댁에서 자고 갈까 하고 자서방과 잠시 갈등했지만 결국 우리는 무거운 배를 부여잡고서 시댁을 나섰다.


"본 아네, 본 성떼!" 하고 서로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는데 직역하면 좋은 해좋은 건강이라는 말이다.

자서방과 손잡고 집으로 돌아오며 2021년의 마지막 밤공기를 기억 속에 꼭꼭 저장했다. 좋은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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