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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23. 2023

갈레트 데 루아, 오늘도 내가 왕이다.

2022년 1월 8일 


시동생 커플이 스웨덴으로 돌아가기 전날, 우리 부부는 시댁으로 가서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오늘도 푸아그라로 식사가 시작되었다.

푸아그라 두 조각을 다 먹고 났을 때 시어머니께서는 오븐에 구운 커다란 닭과 고구마 퓌레를 내 오셨다.

닭이 커서 오늘 나는 다리 대신에 튼실한 허벅다리를 골랐다. 자서방은 내 접시에 있는 퓌레에 나이프로 구멍을 내주면서 말했다.


"볼컹(볼케이노)를 만들어줄게. 잠깐 있어봐. 브루노, 여기 볼컹에 닭육수 좀 부어봐."

시동생은 스푼으로 고이 육수를 두 숟가락 떠주었다. 내 퓌레 한가운데에 닭즙 볼케이노가 만들어진 것이다.
시어머니께서는 우물이라고 하셨는데 형제들은 볼케이노라고 표현했다. 어릴 때 퓌레를 먹을 때마다 이렇게 육수를 부어서 먹곤 했다고 한다. 

그때 나는 보았다. 저쪽에 계신 시아버지께서 말없이 본인 접시 위에 볼케이노를 만들고 계시는 것을.


식사가 모두 끝난 후에 시어머니께서는 밤크림을 넣은 배 타르트와 함께 [갈레트 데 호아]를 후식으로 내오셨다.

갈레트데호아를 먹느라 타르트는 맛을 보지 못했다. 배가 너무 불러서 들다는 못 먹겠어요... 

갈레트데 호아는 쉽게 말하면 왕게임 갈레트이다. 

작은 도자기 인형(fève)을 넣어서 구운 건데 내 접시에서 그 페브조각이 발견되면 내가 왕(roi)이다. 자서방은 이걸 먹을 때마다 하는 얘기가 있는데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동생에게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을 신나게 들려주고 있었다.

"몇 년 전에 엄마 친구들이 오셨을 때 아빠가 이걸 사 오셨거든. 요용이 거실로 내려오기 전에 우리끼리 짜고 페브가 들어있는 갈레트 조각을 요용한테 줬지. 그리고는 다들 안 보는 척하면서 요용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는데, 얘가 갑자기 말없이 접시를 들고 부엌으로 가더라? 내가 따라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나더러 하는 말이 '어머니께서 구우실 때 실수로 이걸 빠트리셨나 봐...' 이러는 거야."

자서방은 몇 년째 그 일을 두고두고 우려먹고 있다. 내 표정까지 흉내 내면서 말이다. 그게 그렇게 웃겼나 보다.

"난 그때 어머님이 직접 구우신건 줄 알고, 이 물질이 들어간 줄로만 알았지. 그래서 손님들이 보기 전에 얼른 들고 나와서 확인한 건데... 이 물질이 예쁘더라고...?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어."

당시에도 손님들과 참 많이 웃었었는데 여전히 온 가족들을 웃게 하는 에피소드로 박제되었다. 

이번에 왕조각은 시어머니께서 갈레트를 자르는 도중에 발견되었는데 어머님께서는 내 접시에 올려주시며 내가 오늘도 왕이라고 모두에게 선포하셨다. 

왕관까지 씌워주시며 사진을 몇 장이나 찍어주셨다. 내친김에 나는 왕관 쓰고 단체사진까지 찍었다.

그리고 오늘 새로 획득한 왕은 깨끗이 씻어서 다른 왕들 옆에 같이 두었다. 시어머니께서 매년 나만 왕을 시켜주셔서 벌써 3개나 모았다.


오늘도 맛있는 음식들에다 왕까지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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