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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24. 2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행복할 것이다.

2022년 9월 25일


어학원 새 학기가 시작되고 꽤 바빠졌지만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시댁에 잠깐 들렀다.


시아버지께서는 정원 둘레 여기저기에 덩굴을 치고 있는 포도를 수확하고 계셨다.


시댁에 올 때마다 한두 알씩 따먹곤 했는데 이제는 몽땅 수확할 시기가 된 것이다. 그야말로 유기농이다.

아버님께서 포도를 수확하고 계실 때 나는 무화과를 따왔다. 어머님께서는 통을 갖다 주시며 원하는 대로 과일을 담아가라고 하셨다.

제일 많이 담은 통은 내 거.
어머님은 옆집을 위해서 또 한통을 담으셨다. 네네... 저두 그분 잘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렴요...


"아, 혹시 무화과를 치즈랑 같이 먹어봤니? 진짜 맛있는데!"

"아니요, 저는 집에 체다랑 모차렐라뿐인데 혹시 치즈 있으세요?"

"있지 있지! 내가 빵도 한 장 구워줄 테니 먹어봐라!"

우리 시어머니 "싸바 에트흐 트헤 봉" (정말 맛있을 거야!)라는 말을 노래가사처럼 흥얼거리시며 부엌으로 곧장 달려가셨다.

에멍딸, 염소치즈 그리고 블루치즈 세 가지를 꺼내오셔서 무화과와 함께 조금씩 맛을 보았다. 염소치즈는 아직 나에겐 멀고 먼 당신이다. 에멍딸이 제일 맛있었다. 사실 토스트빵이랑 치즈만 먹어도 맛있는 조합이라 여기에 무화과의 풍부한 단맛이 가미되니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이스탄불은 요즘 기운이 없다. 모웬이 사라진 후부터 부쩍 변했다.

친구이자 형제인 모웬이 갑자기 사라져서 이스탄불도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시부모님께서는 중대결정을 하셨다.


모웬이 언젠간 돌아올 거라는 희망은 여전히 간직한 채로, 새 고양이를 들이기로 하신 것이다. 원래 아버님께서는 더 이상의 고양이 입양은 안된다고 고집해 오셨지만 (두 분 모두 연세가 있으셔서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실까 봐...) 어머님과 이스탄불을 위해서라도 그 결심을 바꾸신 것이다.


모웬이나 무스카델처럼 애교 많고 다정한 성격을 가진 셀커크렉스 막내가 생기게 된 것이다.


"모웬이 돌아오면 3형제 정신없겠네요! 괜찮으시겠어요?"


"오... 네 남편 같은 아들이라면 단 한 명도 힘들지만 우리 집 고양이들은 다 착해서 3마리가 아니라 13마리라도 전혀 힘들지 않을 거야."


"아... 제 남편에게 꼭 전하겠습니다."  


어머님의 목소리에 활기가 느껴졌다.


"아참, 이번에는 암컷이란다. 지금껏 내가 이 집의 여왕이었는데 공주가 생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더라고."


그렇게 우리 시부모님은 앞으로도 계속 행복하시기로 하셨다. 모웬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하겠지만 두 분께서 사랑으로 돌봐주실 공주(?)를 맞으신 준비가 되신 것이다.




모웬, 너 동생 생긴대... 빨리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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