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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24. 2023

시댁에 가면 맛있는 냄새가 난다.

2022년 10월 3일


오전 수업만 하는 날이었는데 어머님께서 줄게 있다고 하셔서 시댁에 잠깐 들렀다.

바로 난을 만드는 밀가루가 세일 중이라서 나를 위해 두 개나 사 오신 것이다.

"점심 먹고 갈래?"


"아니요. 그냥 어머님이랑 콜라만 한잔 같이 마실게요."


그렇게 우리는 이스탄불이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테라스로 나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새로운 반친구들은 어떠니?"

"총 11명인데 이번에도 국적이 다 달라요. 안타깝게도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에스빠뇰은 없네요."

"저런 저런... 나는 에스빠뇰이 좋은데... 실은 내가 꽤 오래 만난 남자가 있었단다. 스페인 남자들 특유의 마초 기질은 있었지만 귀여운 마초였지. 한때 나는 그 남자랑 결혼할 줄 알았는데..."

시어머니의 눈빛이 아련해지실 무렵 시아버지께서 우리 앞으로 지나가고 계셨고, 어머님께서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셨다.


"우리 미슈(시아버지 애칭)를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버님이 사라지셨을 때 어머님께서는 다시 한번 눈빛이 아련해지셨다.


"그는 참 재미있는 사람이었어...."






"어? 맛있는 냄새가 나요! 한국요리 비슷한 냄새가 나는데요?"

된장찌개처럼 구수한 냄새가 테라스까지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호호호 어때? 점심 먹고 가고 싶어 졌지?"

"무슨 요리하시는데요?"

"샷불라(köttbullar)라는 스웨덴식 미트볼이야. 자, 이리 와서 보렴. 이걸 보고 나면 먹고 싶어 질 거다."

어머님께서는 부엌으로 나를 데려가시더니 에어프라이어에서 익어가는 요리를 꺼내서 보여주셨다.

"어때? 먹고 갈 거지?"

"... 네. 먹고 갈게요."

"호호 일부러 그럴 줄 알고 3인분으로 넉넉히 요리했단다!"


요용 오늘도 밥 먹고 갈 거냐?


샷불라를 감자와 쥬키니와 함께 에어프라이어에 구우셨는데, 익어가는 냄새가 내 코에는 꼭 된장찌개 비슷한 냄새로 느껴졌던 것이다. 이미 그 맛있는 냄새 때문에 입맛이 한껏 돌아서 안 먹고 갈 수가 없었다.

어머님께서는 내 접시에 샷불라를 제일 많이 담아주셨고 상대적으로 시아버지의 접시에는 빨간색(토마토)이 더 많이 보였다. 갑자기 아버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아버님, 제가 갑자기 점심 먹고 간다고 해서 아버님이 드실 음식이 줄어든 것 같아요. 죄송해요."

내 말에 아버님께서는 웃으시며 양이 충분하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잠시 후 부엌에 가셔서 빵과 치즈를 잔뜩 들고 오셨다.)

내가 아주 맛있게 먹고 있었더니 어머님께서는 내 크리스마스 선물로 에어프라이어를 사주겠다고 하셨다.

후식으로 내 주신 포도까지 알차게 해치운 후 부른 배를 두드리면서 집으로 느지막이 돌아왔다.

이쯤 되면 나는 집이 두 군데인가 싶은 기분도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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