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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24. 2023

부르주식 감자갈레트와 시어머니


2020년 6월 30일


시부모님께서 부르주에서 있었던 장례식에 다녀오시면서 감자 갈레트(galette de pomme de terre)를 사 오셨다.

감자 갈레트는 이 부르주에서만 판매되는 요리라고 하셨는데 특이하게도 부르주 내 세 군데의 서로 다른 가게에서 2조각씩을 사 오셨다는 점이다.


어머님께서는 갈레트를 오븐에 데워서 모두 두 조각씩으로 나눈 다음 접시마다 해당 가게의 이름표를 붙이셨다. 우리 네 식구는 저녁식사로 각 갈레트들을 맛보았는데 서로 어떤 가게가 가장 맛있는지를 평가했다. (사진이라도 찍어둘 것을, 당시에는 뭘 하는지 영문도 모르고 먹었던 것이다.)


모두의 의견이 일치했다. 전반적으로 모든 갈레트들이 건조한 느낌이었고, 그나마 1번 가게가 가장 나았다.


"이제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맛있는 감자 갈레트는 마리엘의 갈레트밖에 없구나.."


어머님께서 스스로 본인의 갈레트가 세상에서 최고라는 사실을 공표하신 것이다.




며칠 후 시어머니께서는 직접 부르주식 감자 갈레트를 만들어 주셨다.

생각보다 과정이 복잡하고 기술이 요구되는 음식이었다. 감자가 들어간 반죽을 냉장고에 뒀다가 그 반죽만큼 차가운 버터를 반죽에 감싼 후 접어서 반듯하게 밀고 또 접어서 다시 반듯하게 미는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반죽과 버터의 얇은 층이 켜켜이 쌓이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그날 시어머니표, 자칭, 세상에 마지막 남은 맛있는 부르주식 감자 갈레트를 맛보았다.



이렇게 층층이 살아 있어야 진정 감자 갈레트라고 하셨다.


시어머니께서는 갑자기 허공을 향해 외치셨다.


"베르나르, 보고 있나요? 고마워요, 당신 덕분이에요!"


"베르나르요? 시아버지 친구분 말씀하시는 거 아니죠?"


"오, 이 베르나르는 나에게 이 음식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이란다. 우리 아버지의 파티세리에서 일하던 사람이지."


"앗! 자서방의 할아버지께서 파티세리를 운영하셨다고요?"

 

"응 부르주에서. 가게를 두 곳을 운영하셨지. 하나는 케이크종류를 판매하는 파티세리, 또 하나는 과자와 초콜릿을 판매하는 콩피세리."


왜 난 이걸 처음 듣는 거지?


시어머니의 아버지는 부르주에서 파티세리와 콩피세리를 함께 운영하셨다고 한다. 우리나라였다면 두 가지를 합쳐서 간단하게 제과점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프랑스에서 콩피세리는 과자, 초콜릿, 사탕을 전문적으로 만들어서 판매하는 곳이라 한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셨을 것 같아서 나는 두 손을 가지런지 잡고 말했다.


"그럼 어릴 적에 맛있는 거 엄청 많이 드셨겠어요!"


"아니, 나는 초콜릿이나 사탕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 대신에 매일 아침 우리 가족은 갓 구운 따끈따끈한 크루아상을 먹었지. 그건 지금 생각해도 너무 행복한 기억이란다."


"빵도 사 드실 일이 없었겠네요?"


"파티세리는 바게트 같은 정통 빵은 만들지 않는단다. 케이크이나 디저트종류들이지. 크루아상이나 키슈도 있었어. 베르나르의 키슈는 정말 최고였어!"      


자서방이 옆에서 휴대폰으로 콩피세리 한 곳을 구글로 검색해서 보여주었다.

너무나 예쁜 사탕가게다!



내가 예쁜 가게의 사진을 보고 놀라자 자서방이 말했다.


"바로 이곳이 실제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던 그 가게야. 그 할아버지의 아버지부터."


와...


사진 맨 아래 forestines라고 이름 붙은 파스텔톤의 사탕이 부르주의 특산품 중 하나인 유명한 사탕이라고 한다. 사탕은 프랑스어로 봉봉- 참 귀여운 발음이다. 봉봉 가게 소녀는 봉봉도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좋았겠다... 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 소녀는 봉봉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 가게는 몇 해 전 큰 불이 났다고 한다.

시어머니께서는 식사를 마친 후 위층에서 포토북을 가지고 내려오셨다. 불이 났을 당시에 너무 안타까워서 뉴스 기사에 나온 사진들을 스크랩하신 것이었다.



"1층에는 콩피세리가 있었고, 길 건너 맞은편에 파티세리가 있었지. 나랑 우리 언니 그리고 아빠는 3층에서 살았어. 그리고 2층에는 삼촌네 부부가 살았지. 아빠네 가게에서 같이 일하고 있었거든. 4층은 창고였어."


이 말씀을 하시는 시어머니의 표정이 아련해 보였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시는 모습이 그렇게 행복한 기억을 말씀하시는 것 같지만은 않았다.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자식들을 위한 미래가 전혀 준비가 안 돼있었어... "


알고 보니 새엄마라고 몇 해 같이 살았던 여자가 가게를 삼촌에게 팔고 그 돈을 챙겨서 떠나버렸다고 한다.


".... 우리 삼촌까지 돌아가시고 나서는 지금 숙모와 그의 자식들이 지금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 아, 파티세리는 지금 사라졌고 콩피세리만 운영되고 있지."


행복하셨을 것만 같아서 여쭤보았는데 생각지 못한 상처가 있으셔서 놀랐고 마음이 아팠다.


"돈이 문제가 아니야. 다들 돈돈하고 살지만 나는 평생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어."


"지금은 훨씬 더 좋은 가족이 있으시잖아요!"


"그럼 그럼."


우리는 앞으로 더 행복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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