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초한지

by 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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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 멸망 이후 초나라와 한나라의 천하통일 쟁탈전


초한지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어릴 적 아버지가 장기를 가르쳐 주셨을 때다. 초록색 장기 말은 초(楚)나라를, 빨간색 장기 말은 한(漢)나라를 가리킨다고 알려주셨다. 그때부터 초한지는 삼국지 다음으로 가장 익숙한 역사 소설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정독한 적은 없었기에, 언젠가는 꼭 읽고 싶다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버킷리스트에 담아 두었던 책이다. 최근에서야 여유가 생겨 완독 하게 되었고, 읽는 내내 그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다.


초한지는 제목 그대로 초나라와 한나라가 진(秦)나라 이후 중국의 천하 패권을 두고 벌이는 치열한 전쟁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통일 제국을 이루기 위한 두 나라의 전쟁 이야기가 큰 틀을 이루고 있지만, 이야기 속 각 인물들이 펼치는 다양한 서사는 거대한 틀을 떠받치는 기둥이 된다. 각기 다른 인물들의 뚜렷한 성격과 독특한 성향을 살펴보는 것이 무척 재밌다.


#상반되는 리더: 항우 vs 유방


모든 이야기 속 라이벌의 대립은 무척 흥미로운 요소이다. 거기에 서로 다른 스타일의 캐릭터라면 이야기가 더 재밌다. 그렇기에 상반되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초나라 왕 항우 vs 한나라 왕 유방의 대립은 이야기 구성의 가장 큰 줄기다.


우선 항우는 무척 용맹하고 싸움에 능하다. 전쟁 시 가장 앞서서 달려 나가는 장수로서 모든 병졸이 그를 따르는데 자부심을 느낄만하다. 또한 강직하고 청렴하며 지조가 높아 성격이 올곧다. 하지만 항우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무척 잔혹하다.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모든 이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죽이거나 생매장시킨다. 자비란 그에게 없다. 자신에게 맞서면 오로지 죽음뿐이라는 '공포'를 심어주어 반란을 다스리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혹자들은 항우가 천하 민심을 거두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가장 큰 이유로 그의 이러한 잔혹함을 언급한다. 분열된 나라를 통합하는 데 가장 중요한 민심을 거두지 못하니 그의 몰락은 불 보듯 뻔했다.


또한 항우는 인색했다. 진나라를 평정하고 난 후, 반(反) 진나라 연합세력의 맹주로서 위엄을 떨치게 되었음에도 항우는 제후들에게 땅을 나눠주기를 아까워하여 제후의 인장이 닳을 데까지 주지 않았다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그의 인색함은 책 여러 곳에서 언급되는데, 이러한 성격으로 말미암아 많은 인재들이 그 곁에서 머물기 어려웠을 것이다. 천하통일의 과업을 위해서 유능한 인재가 절실할 텐데, 종국에는 걸출한 인재들이 떠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로 그의 인색함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반면 유방은 뛰어난 정치 감각을 가졌다. 바뀌는 상황에 맞춰 유연하면서도 굉장히 현실적이게 대처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나의 예시로, 유방항우와 전선에서 대치 중일 때 초나라 군사가 몰래 쏜 화살이 가슴에 꽂히는 일이 있었다.


"...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지려다가 갑자기 손을 내려 발목을 잡아 쥐었다. 그리고 짜낼 수 있는 힘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짜내 발을 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저 천한 종놈이 내 발가락을 맞추었구나!' " - 8권 p120-


전쟁 중인 상황에서 왕인 자신이 화살에 맞아 쓰러진다면, 전세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기울 것이라는 사실을 찰나의 순간 간파한 것이다. 그렇기에 가슴이 아닌 발가락을 움켜쥐며 쓰러진 그의 감각은 가히 감탄할 만다.


그리고 유방은 사람을 받아들이고 사용함에 있어서 무척 실리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가장 특이한 점은 그가 거만하면서도 타인의 조언을 곧잘 듣는 편이라는 것이다. 보통은 거만한 사람은 다른 이의 조언은 귀담아듣지 않는다. 반면에 다른 이의 조언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은 성품이 겸손한 경우가 많다. 그는 거만한 성품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참모들의 조언을 귀담아듣는 편이다. 이는 그가 ‘실리’를 최우선으로 여겼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자신에게 유익하다면 사람이든 조언이든 곧잘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괄시하고 깔보는 것이라고 생각될 뿐이다.


이런 유방에게도 아쉬운 점이라고 하다면 호색하다는 것이다. 무척이나 나의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왠지 천하 통일의 영웅이라고 하면 뛰어난 도덕성을 가졌다면 더 멋있게 생각되겠지만 아쉽게도 유방은 그런 인물은 아니다. 전시 상황에서도 늘 그의 잠자리에는 꼭 시중을 드는 여성이 있었다고 하며, 그의 호색함을 두고 비난하는 대목이 이야기 곳곳에서 보인다. 다만 그의 주변에 뛰어난 참모들이 있어서 색(色)에 빠져 국사를 망칠 수 있을 그의 기질이 그나마 통제된 것은 아닐까 싶다.



#서로 다른 스타일의 참모: 장량 vs 진평


유방의 위대한 업적을 이룬 세 명의 인물을 일컬어서 서한삼걸(소하, 장량, 한신)이라고 평하는 데, 그중 한 명이 바로 장량이다.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 삼국지의 제갈량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장량은 빼어난 지략으로 유방의 천하통일 달성에 큰 기여를 한다. 장량은 사리에 밝고 군세를 읽는 데 탁월한 식견을 지닌 인물이다. 그의 계책은 대체로 정공법에 가까우며, 명분과 체면을 지키면서도 원하는 바를 이뤄내는 뛰어난 재주를 보여준다.


반면, 진평은 매우 현실적이고 실리를 중시하는 인물이다. 개인적으로는 장량보다 진평에게 더 관심이 갔다. 그는 이상보다는 현실에 기반한 계책을 즐겨 쓰는 전략가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는 황금을 이용해 초나라 군사 일부를 매수하고, 이를 통해 초나라 진영 내부에 이간질을 퍼뜨려 항우와 그의 책사인 범증 사이를 갈라놓았다. 이 같은 행동은 진평의 전략이 얼마나 냉철하고 실용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처럼 진평은 간계(奸計)에 가까운 계책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다. 이 점에서 그는 장량과 뚜렷이 대비되는 전략적 성향을 지닌다.


장량진평은 늘 유방 곁에서 그의 위기를 해결하며 뛰어난 책사로서의 존재감을 입증했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유방을 보좌했지만, 각기 다른 전략적 색채를 드러내며 상반된 지략을 펼쳤다. 그렇기에 이들의 차이를 지켜보며, 만약 오늘날 같은 시대에 존재했다면 어떤 방식으로 활약했을지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생긴다.



#초한지의 교훈


항우와 유방, 장량과 진평 외에도 한신처럼 워낙 매력적이고 개성이 강한 인물들이 많다. 하지만 초한지에서 천하통일이라는 거대한 흐름과 각각의 인물들의 난세를 살아가는 처신을 보면서 초한지의 교훈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시대의 흐름을 빠르게 읽고 현명하게 처신해야 한다는 점이다.


당연하게도, 혼란한 시대에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든, 최소한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든 시대의 흐름을 읽고 현명하게 처신하는 자질은 필수적이다. 항우를 비롯해 한신, 팽월 등 수많은 영웅과 제후, 그리고 공신들조차도 시대의 흐름을 꿰뚫지 못하거나 적절히 처신하지 못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이 교훈은 2200여 년 전의 이야기로만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 우리는 시대의 흐름을 더욱 민감하게 읽고, 더욱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있다. 과연 어떻게 해야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을까? 무엇이 현명한 처신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더 많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에 통용되는 절대적인 법칙은 없으며, 100% 정답이 되는 처신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이것은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끊임없이 고민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야 할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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