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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양 Dec 31. 2019

열등감, 완치가 아닌 조절.

열등감은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염증은 완치될 수 없다

  

   나는 알레르기성 염증이 많다. 유독 눈이 건조하고 이물질도 많이 생긴다. 그래서 렌즈도 일주일에 2회 이상 끼지 못한다. 하루는 증상이 너무 심해서 결국 안과를 갔다.



    "환자분은 알레르기성 염증이 심하니깐 술 자제하고, 렌즈 끼지 말고, 먼지 많은 곳은 피하세요."

    "그러면 약을 얼마나 먹어야 낫나요?"

    "이거는 낫는다, 안 낫는다 개념이 아니라 계속 신경 써서 관리해줘야 하는 거예요."

    "아.. 아??...!!, 이게 완치가 안 되는 거예요?"

    "이건 염증이라서 심해지지 않게 유지시켜줘야 하는 거지, 아예 없애거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처음 알았다. 완치할 수 없다니. 그래서 꾸준히 관리를 해야 한다는 데, 이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술도 잘 못 마시고 맨날 걸리적거리는 안경도 써야 하고.


  그 이후, 약을 먹고 술도 자세하고 렌즈도 한 달간 멀리하자 눈은 좋아졌다. 그러나 다시 관리가 소홀해지자 다시 나빠졌다. 매일 아침이면 눈을 모래에 처박고 잔 것 같았다. 결국 6개월 만에 다시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았다.



#열등감도 완치될 수 없다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서 열등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열등감을 완전히 치유하거나 극복해야 한다지만 그게 가능한 것일까? 정말 완전히 없앨 수 있을까?


   나는 열등감이 굉장히 크다. 잘나고 멋진 사람들, 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서 나 자신이 너무 못나보여 우울한 마음이 든다. 더구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타인과 비교될 땐 열등감에 사로 잡힌다. 그때는 못난 내 자신이 너무 밉고, 더 잘하지 못하는 나를 향해 화가 난다.


   특히 '잘한다'는 것에 열등감이 크다. 똑똑하고 센스도 좋아서 훌륭한 성과를 내는 사람들.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남들을 보면서, 내 스스로를 비교한다. 결국 속상해진다. 아무것도 잘하지 않는 나를 쓸모없는 놈이라고 비난한다. (나를 사랑하지는 못할망정...)


   어느 날,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무척 놀랐다. 열등감으로 가득 차 일그러진 얼굴은 너무 흉했다. 무능함에 대한 분노로 무서워 보였고, 실패에 대한 좌절감으로 슬퍼 보였다. 이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내 표정은 안쓰러움 그 자체였으며, 정말 흉했다.


   그날 집에 와서 그동안의 내 모습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열등감은 나를 부정적인 사람으로, 피해의식이 있는 사람으로, 자신감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작은 거에 불같이 화를 내고, 부정적인 태도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다. 이런 모습으로 몇몇 친구들은 나와 만나기를 피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도 나는 열등감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운동을 하고, 심리학 책을 읽고, 여행을 가고, 여유를 가지면서 내 자신을 알아갔다. 그러면서 열등감을 조절해갔다. 그렇게 5년째 열등감을 관리하고 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본 그날과 비교하면 많이 건강해지고 좋아졌다. 부족한 내 모습을 이해하게 되었고, 잘못해도 다음에 더 잘하자고 스스로 다독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웃긴 게 다시 바빠지고 안 좋은 일이 많아지면, 열등감이 다시 올라온다. 여유로웠을 때는 그냥 넘겼을 일들이, 왜 그렇게 화가 나고 원망스러운지 모르겠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 술이라도 마시면 내 열등감은 폭주한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는 내 하소연으로 인해 거의 초상집 분위기가 된다. 내가 상처 받은 것들, 화가 났던 일들을 다 쏟아낸다. 민폐 중에도 이런 민폐가 없다.


   이런 술자리 다음 날 아침이면 난 또 후회한다. 친구들한테 쏟아냈던 하소연으로 분위기를 망치고 피해를 준 게 미안하고,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한 내 자신에게 다시 실망한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열등감, 또 다른 힘


   열등감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비교'라고 한다. 타인과 나를 비교하면서 나의 부족한 부분은 크게 보고, 타인의 장점은 크게 보면서 극대화된다. 그래서 비교하지 말고 자신에게만 집중하라고 한다. 하지만 이게 정말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타인과 완전히 비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람이라면 당연히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게 된다. 결국 열등감은 뿌리 뽑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열등감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대로 둬야 할까?

아니다. 대신 조절해야 한다. 열등감도 건강하게 잘 조절하면 충분히 좋은 자극제가 된다. 그래서 나의 열등감은 내 원동력이. 비교를 통해 모자란 부분을 인식하고 채워나가는 힘이 된다. "더 열심히 해야지! 두고 봐!" 이런 의지는 나를 성장시키는 근원이 된다.


   실제로 대학교 때, 전공수업에서 더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똑똑해지고 싶은 마음에 매일 아침 신문을 읽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신문 덕분에,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또 영어를 못하는 게 창피해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더구나 열등감은 완벽해 보이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게 해서 나는 영작문, 미국식 발음과 억양, 제스처까지 공부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영어공부를 하루 종일 해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잡다한 것까지 공부할 필요는 없지만 완벽한 모습을 상상하면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도 나는 열등감을 바탕으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실력을 쌓고 있다. 열등감은 내게 동기부여가 된다. 물론 가끔씩 터져 나오는 열등감은 여전히 감당하기 어렵다. 괜찮았다가도 어느 순간 나를 구렁텅이에 빠트린다. 그럼에도 항상 좋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도 하면서 끊임없이 관리하고 있다. 그래서 내게 열등감은 염증과도 같다. 없앨 수 없기에 항상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다.


   완벽하게 열등감을 없앨 수 없다면, 심해지지 않게 관리하면서 자신의 원동력으로 삼았으면 한다. 그리고 솔직히 열등감을 완전히 극복해서 결함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니 실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좀 더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열등감, 충분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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